[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일어나'
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먼저 식사를 끝마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공동체의 아침식사 시간은 늘 조금 부족하다. 공동체 수녀님들이 이런 저런 영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오늘 있게 될 사목터의 일들도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면, 늘 만남이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 오늘 행사가 있어서 먼저 갈께요. ...저녁때 만나요.”

그래서 일어날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일어나>라는 노래. 오래된 핸드폰에 입력되어 정확한 시간에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우린 모두 시계를 본다. 서둘러 각자의 사목터로 가라는 초대이자 재촉인 노래, ‘일어나’.

앞 부분만 녹음이 되어 있어 한 번도 끝까지 듣지를 못하다가, 문득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일어나’인지 궁금해 오늘 찬찬히 가사를 들여다 본다.

그리고 그 첫 소절부터 마음이 짠하게 생각되어지며,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알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오죽했으면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고 했을까?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는다고 했을까?

그 절망 속에서 외치는 소리.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아마도 가수 자신이 ‘일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정말 일어났는가?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노래가 힘든 이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변두리에 있는 이들이, 힘없는 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일어나면 좋겠다.

특히 젊은이들이 일어나면 좋겠다. 무엇이 그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을까? 말을 하면 결코 지지 않는데 왜 삶에선 뒤에 있을 수밖에 없을까? 이루겠다고 하면서 왜 이루겠다는 의지가 없을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왜 자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까?

일어나라.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여! 여러분은 아직 젊고, 그 젊음이 가장 큰 힘이니, 지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일어서야 우리도 힘을 얻습니다. 지금 일자리가 없더라도, 부모님의 뒷받침 없이 홀로 서기가 힘들더라도, 여러분의 꿈을 잃지 마십시오.


일어나

- 김광석

... 생략 ....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 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있는 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 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 처럼.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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