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운동과 천주교 홍콩 교구

천주교 홍콩교구는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민생 개선 활동에 여러 차원에서 적극 참여해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현장의 느낌을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홍콩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웡익칭 간사에게 글을 부탁했다. 아래는 오늘자로 보내온 웡 간사의 글이다.

우산 운동

먼저 나는 한국인들이 홍콩인의 민주화 투쟁을 지원하고 관심을 가져 주는 데 감사한다. 한 달 전쯤 나는 한 친구에게서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기도 운동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받았다. 여기 홍콩에서 노란 리본은 우리의 민주주의 요구를 상징한다. 이 리본을 달고 나는 우리 홍콩인과 한국인이 생명과 정의를 존중하는 사회를 바라고 분투하는 면에서 아주 많이 연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또한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하기 위해 국제 언론들이 “우산 혁명”이라는 말을 쓴 데 대해서도 감사한다. 여기 우리들은 “우산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더 원하지만 말이다. 내가 보기에 우산은 우리의 소박한 요구를 보여준다. 보통선거권, 그리고 후보를 선출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 등이다. 이는 모든 홍콩인이 정치 참여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본토 대륙의 눈으로 보자면, 우산은 무기이며 보통선거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다.

2014년 9월 26일자 <빈과일보>를 통해 한 12살 학생은 시진핑 주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학생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은 당신이 생각을 바꾸기를 바라면서 거리에 나서야 합니다.”

홍콩 중심가를 가득 메운 시위대. 사진 출처 = www.flickr.com
이 시민불복종 운동은 2013년 초에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사랑과 평화로 센트럴을 점령하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2013년과 2014년 내내 시민의 의식 각성을 위해 여러 토론회와 주민투표 같은 활동이 이어졌다. 올해 8월말에는 본토의 중앙정부가 오는 2017년에 홍콩의 행정수반인 행정장관을 우리가 평등하게 선거할 권리를 부인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국경일인 10월 1일 저녁에 점거 행동이 계획됐다. 9월 22일부터 1주일 간 진행된 동맹 휴학이 있었고 9월 26일 저녁에 학생 단체들이 정부청사 앞의 공민 광장을 재점거하려 시도하면서 점거 행동은 원래 일정을 앞당겨 애드미럴티에 있는 정부 청사에서 시작됐다.

일정만 바뀐 것이 아니라 그 규모와 충격도 우리의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의 예상도 뛰어넘는 것이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나 자신은 세 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공민광장이 난입당한 뒤 17살의 학생으로 운동 지도자로 급부상한 웡치풍 군이 체포된 것이다. 둘째는 일요일 오후에 경찰이 평화 시위를 벌이던 이들에게 87통의 최루가스를 던진 일이다. 셋째는 시위 반대자들과 일부 깡패들이 시민 점거 지역 가운데 한 군데에 잔인한 공격을 한 일이다. 이들은 돈을 받고 그런 짓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해산시키기보다는 각계각층에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자극했다. 우리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가 서로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또 우리는 비폭력 정신을 발휘하여 어떠한 폭력도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도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최루탄을 겁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우리는 겁났지만, 앞으로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에 우리는 하나가 됐고 굳건히 일어섰다.

“하느님의 집에서, 나는 특별한 따뜻함을 느낍니다.” 한 젊은 예비신자는 시위대를 위해 개방된 한 성당에서 잠시 쉬면서 이렇게 페이스북에 썼다. 이런 상황을 맞아 홍콩교구 교구장인 통혼 추기경은 9월 29일 긴급 호소문을 내고 걱정했다. 몇몇 가톨릭인들은 경찰이 평화 시위대에 가한 권력 남용과 폭력을 단죄함이 없이 추기경이 부드러운 어조였다고 실망하기도 했다.

시민불복종 운동이 제안된 뒤, 홍콩교구는 2013년 7월에 “책임 있는 행동과 성실한 대화를 위한 긴급 호소”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정부의 지도자들과 대표 선택에 의미 있는 정치 참여에서 불의하게 배제하는 것은 중대한 불의이며 더 이상 지체 없이 교정돼야 할 기본권의 침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 성명에서는 시민불복종 운동에 대해 가톨릭 신자 각자가 양심에 따라 제각기 행동을 선택할 여지를 뒀지만, 홍콩교구는 정부와 시민사회 간에 대화의 필요성을 더 강조하는 입장을 여러 번 밝혔다.

반면에 올해 82살로 전임 교구장인 젠 제키운 추기경은 민주주의를 향한 자신의 의지를 더욱 크고 또렷하게 밝혀 왔다. 그는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명망가들 가운데 한 명이며, 체포되거나 투옥될 각오가 되어 있다. 점거 행동이 시작된 뒤로 그는 현장인 정부청사 지역을 오가며 학생 등 시위대와 여러 날을 보냈다.

근래 나 또한 본당이나 개인 차원에서 보인 반응들에 감명 받았다. 여러 대학 캠퍼스나 사회복지 센터, 그리고 개신교단과 더불어 시위 지역 근처의 가톨릭 본당들은 성당 문을 열어 누구나 들어와 쉴 수 있게 제공하였다. 이처럼 긴장된 상황에서도 이런 본당은 우리가 육체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쉼터일 뿐 아니라 우리의 내적 평화를 회복하는 쉼터이기도 하다. 몇몇 본당에서는 누구나 참여해 함께 관심사를 나누는 철야기도회를 마련했다.

교구 청소년위원회 직원들은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정부청사 구역에서 매일 오후에 십자가의 길 전례를 했다. 이 자리에는 신앙을 가진 시위대들이 모여 잠시 성찰과 기도의 시간을 갖고 우리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수난 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향해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떼어 놓으려 애쓰실 때, 나는 서로 다른 세대의 홍콩인들이 남긴 발자취가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리고 조금씩 또 조금씩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함께 열어나가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이 투쟁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전진의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중에, 이 운동은 또 다른 어려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대학생 그룹(홍콩 학생회 총연합회)은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와 대화를 준비하고 있다. 점거 행동을 계속할지 끝낼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다. 운동 지도자와 활동가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날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간에 우리의 배낭에는 우산 하나와 비옷, 고글, 마스크, 수건, 그리고 물 한 병이 “잘 장비되어” 있으며, 내 친구들 가운데는 묵주기도서를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마주치고 있는 무기는 더 이상 최루탄이 아니라 우리를 분열시키려는 여러 소문과 시도들이다. 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이 지혜로 우리가 이러한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쏟아 넣고 있는 노력들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이 운동의 의미를 이렇게 본다. 본토 중앙정부가 본모습을 드러냈다고. 중앙정부는 독재정치라는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 때 명확히 드러났던 그 잔인한 면모를 상기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우리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가치를 지키기 위해 참여하게 된 것이다.

나는 변화들이 우리 내부에서 그리고 대중 안에서 일어나 왔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분노와 열정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고 이 운동에서 공유된 정신을 우리의 일상생활 안으로 불러들이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10월 4일 저녁에 있었던 젠 추기경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전히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진정한 보통선거권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단은 평화이고, 우리의 모든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우리의 부모를 사랑하고 우리의 도시를 사랑하고 우리의 모국을 사랑합시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귀중히 하고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귀중히 여깁니다. 즉 진리, 정의,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입니다! 이런 가치들을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노예의 처지를 감수하지 않습니다! 침착함을 유지하며, 끝까지 투쟁합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