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손을 가진 성모

En Cristo

먼저 이콘을 바라 보자!
<세 개의 손을 가진 성모>다. 처음 이 이콘을 보았을 때 어떤 전승이 있을까 궁금하였다. 누가 보아도 하나 더 있는 손이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8세기 시리아에서 성화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던 다마스크의 성 요한은 누명을 쓰고 오른손이 잘리는 형벌을 받았는데 성모 이콘 앞에서 하느님께 자신은 무죄이며 자신의 문필로 성화 공경을 위하여 계속 투쟁할 수 있도록 잘린 손을 다시 돌려주도록 기도 드렸다.

꿈에서 성모님은 “너의 손은 치유되었다. 이제 네가 약속한 일을 행하여라.”
그러자 실제 그의 잘린 손이 팔에 다시 붙었고 그의 팔목에는 빨간선의 흔적만이 남게 되었단다. 요한은 감사의 표시로 은으로 만든 손을 자신이 기도하였던 이콘 앞에 봉헌하였는데 이후 이 성모님을 그릴 땐 팔을 하나 더 그리게 되었다.

성모님께서 베푸신 치유의 기적은 바로 성화공경을 위한 보살핌이였고 감사의 봉헌이 이 이콘의 참 의미일 것이다.

외국의 여러 성지를 가보면 성상 주위에 조그만 모양의 다리나 손 등 다양한 인체 부분의 모양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멕시코에선 알려진 성당 내의 성상이나 성화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그 성인에게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거나 이루어 진 것을 표시 겸 봉헌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받은 은혜를 순간은 감사하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기가 다반사다. 나 또한 참 많은 사랑을 받은 것에 비해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하고 지낸 시간들이 더 많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소식에 TV를 볼 때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주위가 아플 정도였는데, 정작 장례가 끝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때 막내에게서 걸려온 전화 “교회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 마음으로 다 정리됐지? 다 울었으면 이제 우리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것 같아.” 평소와는 다르게 침착하게 말할 때는 가족 중의 누군가가 아플 때인데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며칠째 계신다는 것이다. 수도생활이나 잘 하라고 아주 큰 일이 아니면 알려 주지도 않는 가족들인데,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만나는게 좋겠다는 내용이였다.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아버지 주위로 알수 없는 기계들이 즐비하고 온몸엔 무엇을 위해 꽂혀있는지도 모르는 그 무엇들이 힘없이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더욱 나약한 자로 보이게 하였다. 우리 가족은 30분의 면회시간 동안 “사랑해. 아버지!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조금만 더 우리와 함께 있어야 해. 우리 아버지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데... ” 그 말만 하였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는 아버지의 손에 묵주를 쥐어 드리며 우리를 생각해서 힘내시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 나왔다.

사랑의 힘이 이런 것인가! 다음 날 뵙었을 땐 간호사들이 놀랄 정도로 많이 좋아 지셨단다. 병자성사를 받으시고 더욱 편안해지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 회복하시겠다’ 라는 희망을 보았다. 돌아오는 발걸음도 한층 가벼웠다.

고속버스 안에서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소중히 감사해야 할 것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 부모님이었다. 그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에 쉽게 그 기회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다. 그래서 그 귀한 분들이 세상을 하직하시면 모든 자녀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나 보다.

이 이콘을 바라보는 한 주간은 계획하지 않은 마음의 요동이 심하였다. 연수에다 추기경님의 선종소식, 아버지의 병환 등....

선물 받은 도자기에 그려진 이 이콘 앞에 작은 촛불 하나 밝히고 흔들리는 빛을 쫒아 오랜만에 고요하게 바라 보았다. 하느님의 마음에 작은 배를 띄어 그 중심에 흐르는 잔잔한 침묵을 듣는다. 그분의 고요 속에 머물면서 이미 마련해 주시는 사랑을 이 이콘을 통하여 느끼는 시간.

어수선함의 모든 것 안에도 주님의 은총을 담으며....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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