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막지 못하지만 계속 싸우겠다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가 활동 3주년을 맞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앞으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9월 29일 오후 4시 강정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제주교구 총대리 김창훈 신부의 주례로 봉헌된 미사에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200여 명이 참석했다.

▲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 3주년 미사가 29일 오후 4시 해군기지 사업장 앞 천막에서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우리가 보아야 할 실재는 4.3의 비극, 강정 해군기지와 같은 사건의 배후에 있는 지배 권력을 탐하는 소수의 폐쇄적 지배 집단입니다. 이들의 최대의 적은 바로 ‘평화’입니다. 왜냐하면 평화는 사랑과 정의의 결실이기에 그 어떤 지배와 억압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날 미사의 강론을 맡은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는 제주 강정 해군기지는 재물과 권력을 탐하는 세력들이 손잡은 결과이며, 이러한 현상에서 성찰해야 할 것이 정치 공동체, 즉 국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면서, 우리의 정치 공동체는 인간의 존엄함과 공동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과 권력에 대한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의 우선성과 그 역할을 강조한 박동호 신부는 “정치 공동체 이전에 시민사회가 있었고, 교회는 시민사회의 우선성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형제애를 바탕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실종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동선에 헌신하는 ‘연대’의 상실도 함께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경찰은 미사 도중임에도 불구하고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사제와 수도자들을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정현진 기자

“주민들과 지킴이들 8년여 동안 상당히 지쳐 있다.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달라”

미사에 참여한 고권일 부위원장(강정해군기지반대대책위)은 “단 일 분, 한 시간 만이라도 공사 차량을 막기 위해 숱한 노력을 하던 시간이 있었지만, 현재는 많이 지쳤고, 부당한 공사를 멈추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 미사에 참석한 고권일 대책위 부위원장은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해군기지의 부당함을 외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정현진 기자
그는 “그동안 매일 현장 앞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지만 공사 차량이 서슴없이 오가고 공사가 진행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나오지 못했다”면서 “오늘 미사로 한 시간 가까이 공사 차량이 멈춘 것을 보니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고 부위원장은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사를 늦추느냐, 못 늦추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당한 일에 시민들이 모여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라면서 천주교 연대를 향해 “주민들이 절망하고 쓰러지지 않도록 힘을 달라, 이 공사가 완공 되더라도 끝까지 외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당부했다.

여자수도자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김영미 수녀는 “오랫동안 고생한 많은 이들이 많이 지친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수도자들은 끝까지 기도하며 연대할 것”이라며 주민들을 응원했다.

미사 끝무렵에는 출범 3주년에 즈음한 성명서가 발표됐다. 참가자들은 “평화가 요원하게 느껴지는 시절이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통스럽고 지칠 때는 복음이 우리와 함께 걸으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강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정부에 “불법과 비민주적 절차에 대한 사과, 즉각적인 공사 중단과 대화, 예산 편성과 집행 중단, 공권력 남용에 대한 사죄, 파괴된 자연 환경 복원”등을 촉구했다.

▲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 3주년에 즈음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 선언. ⓒ정현진 기자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활동에 교회 차원의 연대를 표명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는 2011년 10월 10일,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이하 정평위)와 수도회, 평신도 단체 등이 참여해 출범했다. 이들은 각 교구 정평위와 수도회, 강정 현장팀을 중심으로 강정에서 매일 생명평화 미사를 봉헌하며, 강정 해군기지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한편 이날 미사 뒤 6시에는 ‘강정 생명평화 사목센터’ 기공식이 진행됐다. 이 센터는 강정 주민과 지킴이들을 위한 위로와 치유의 공간, 생명과 평화를 위한 사목 공간으로 마련된다. 

▲ 미사 시간을 보장해달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사 차량 출입과 미사 참여자 밀어붙이기가 계속 되자, 문정현 신부가 항의하며 공사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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