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세화 방침에 "협상 지레 포기" 반발

주말인 27일 오후 서울광장. 약 3000명이 참여한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2차 범국민대회’에서는 “쌀 전면 개방 반대”, “식량주권 실현하자” 등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토요일을 맞아 서울시청 주변을 방문한 시민들은 멈춰 서서 집회를 지켜보거나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자녀들과 함께 서울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집회 참석자들과 떨어져 앉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난감 블록을 갖고 아이와 놀아 주고 있던 황익수(33) 씨는 이날 농민 집회가 열릴 예정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쌀 관세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질문에 그는 “(농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듣기로는 (쌀 개방을) 안 하면 오히려 의무수입 물량이 늘어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고 말했다.

▲ 27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봉헌된 ‘지속가능한 한국농업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시국미사’에 참여한 사람들 곁에 볏단이 놓여 있다. ⓒ강한 기자

서울광장을 가로질러 바쁘게 걷고 있던 연 바울라 씨는 “쌀 개방으로 인해 농민들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개방의 이득도 있다”면서, 집회를 열고 있는 농민들에 대해서는 무척 미안하다고 말했다.

광장 구석에 쌓인 나무 자재 위에 앉아 집회를 지켜보던 김영민(59) 씨는 “쌀 개방을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협상은 최대한 버티는 것이지, 항복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이렇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정부의 쌀 개방 방침을 비판했다.

이날 농민 집회 참가자들은 행사를 마치며 낭독한 결의문에서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쌀 전면 개방을 위한 통보를 지금이라도 즉각 중단하고 쌀 농업 보호와 식량주권 실현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쌀 개방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인 것이다.

▲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농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한 기자

한편 집회에 앞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봉헌된 ‘지속가능한 한국농업과 식량주권 실현을 위한 시국미사’에는 가톨릭농민회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시국미사 참가자들은 미사를 마치며 발표한 성명에서 쌀 전면 개방 등 “정부의 대책 없는 개방농정”이 무분별한 농축산물 수입과 국내 농축산물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도 쌀 전면 개방을 위한 WTO 통보 중단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다른 농민 단체들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8일 쌀 관세율을 WTO 협정에 근거해 513퍼센트로 결정해 발표했다. 정부는 9월말까지 WTO에 관세율 등을 통보하고, WTO 검증 절차와 국내 법령 개정 등을 거쳐 2015년부터 관세화를 시행할 계획이다.

오늘 국회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려 현안 보고를 받는다. 오후 3시 열리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회의에서는 쌀 관세화 유예 종료 대응 경과 및 추진 계획 보고가 있을 예정이다.

▲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2차 범국민대회’에 참여한 농민들이 볏단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강한 기자

쌀 시장 개방에 대해 비교적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는 정부가 쌀 시장 전면 개방 입장을 공식 발표하기 하루 전인 7월 17일 사회동향연구소가 했다. 이 조사에서는 ‘식량주권의 문제이므로 전면 개방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56.3퍼센트로 ‘더 이상 피할 수 없으므로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응답(31.5퍼센트)보다 많았다. 이 조사는 전국 성인남녀 878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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