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평화회의, 근본을 묻다

제주 강정에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첫 번째 ‘강정 평화 컨퍼런스와 평화대회’가 열렸다.

‘2014 강정 평화 컨퍼런스와 평화대회’는 동북아시아의 군축과 평화를 중심으로 특별히 국제적 시각에서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살피고, 신앙인으로서 평화운동을 성찰하며, 공동체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비전을 살피는 국제대회로 마련됐다. 제주교구와 예수회 한국관구가 주최했다.

먼저 26일 서귀포 성당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동북아 군축평화 - 신학적 성찰과 상황 분석’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강우일 주교가 기조 강연을 맡았으며, 미국의 평화운동 활동가 미셀 나-오벳(Michele Naar-Obed)이 ‘신앙에 바탕을 둔 실천행동’, 일본 가톨릭교회 전 정평위원장이자 현재 오키나와 평화 활동가인 다니 다이지 주교가 일본 평화 헌법과 오키나와의 현실에 대해 발표했다.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라는 말을 그토록 많이 했던 것은 우리에게 잘못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 그것에서 해방시켜 주시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강우일 주교는 ‘복음과 국가’라는 주제의 기조 강연에서 국가와 통치 권력, 영토 문제를 통해 국가가 휘두르는 절대 권력이 얼마나 허상 위에 세워진 것인지, 영토라는 땅은 어떤 국가나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것임을 역설하면서 신앙인들은 국가의 권력과 영토를 초월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기조강연을 하고 있는 강우일 주교. ⓒ정현진 기자

우선 ‘국가와 통치 권력’에 대해 전쟁과 국가 폭력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된 사례를 들고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국가 권력에 대한 신화를 지적했다. “국가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마음대로 조정할 권위를 아무에게서도 받은 적이 없다”는 강 주교는 “국가가 항상 무조건 추종하거나 순종해야 할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대단히 많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강우일 주교는 국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해방될 사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고 역설하면서 “지상의 평화를 쌓아 올리려면 모두가 국가라는 신화화된 존재 그 위에 올라서야 한다. 권력자들조차 신격화된 국가에서 해방될 때 국가를 초월한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경의 전통에서 땅은 본디 어떤 특정한 인간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위기에서 보면 땅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이 잠정적으로 인간에게 관리를 위탁한 하느님의 소유이지 인간이 이를 영구히 자기 것으로 만들 자격은 없습니다.”

강우일 주교는 국가가 일으키는 문제 중 하나를 영토를 둘러싼 갈등과 분쟁으로 보고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살 소명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의 행동은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희망, 믿음에 기반한 것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의 평화활동가 미셸 나-오베드 씨는 핵무기 철폐를 위한 비폭력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운동은 오랜 성찰을 통해 시작된 것이며, 성령을 통한 성령에 의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두 번째로 주제발표를 맡은 미셸 나-오베드 씨는 미국에서 펼치고 있는 비폭력 평화운동을 소개하고 자신의 체험을 나눴다.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 노동자 운동 회원이기도 한 미셸 씨는 신앙을 기반으로 한 실천 행동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지향하는 비폭력 평화 운동은 끊임없이 성령을 초대하고 성령 안에서 마련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플라우셰어(보습) 운동’을 소개했다. “성령의 이끄심을 통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는 이사야의 비전을 봤다”는 미셸 씨는 “실제적인 행위로 그 시대의 ‘칼’을 쳐서 생명을 주는 무기철폐 활동을 시작했지만, 미국 정부의 핵무기 정책은 계속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플라우셰어 운동이 순진하고 효과가 없으며 바보 같이 보이고, 미국의 핵정책을 바꾸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핵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 또는 부패와 권력의 어두움에 빛을 비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이는 궁극적으로 무기 철폐를 위한 마음과 정신의 비무장이며, 이 힘들고 오랜 일을 위해 성령을 초대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미셸 씨는 무기와 전쟁을 반대하면서 겪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지 묻고 “평화란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며, 갈등은 항상 지고가야 할 짐이다. 다만 갈등에 대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극심한 분쟁지역에서 문화와 종교의 차이, 목숨을 잃는 위험을 겪으면서도 이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한 것은 “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말하고 알리는 것”이었다면서, “그 결과로 사람들은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진실을 조금씩 알게 되고 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믿음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가장 절박하고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미국이라는 제국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지만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무너진 그 자리에 무엇이 세워질 것인지 질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이라는 세상의 한 쪽에서 핵무기 반대 운동을 하는 것은 제주 강정의 투쟁에도 함께 하는 것임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오키나와에서 일어나는 일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전 일본 천주교 주교회의 정평위원장 다니 다이지 주교는 현재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를 위한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오키나와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두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타니 다이다니 다이지 주교는 미군기지에 대항하는 오키나와 평화운동 활동가로서 오키나와의 현실과 평화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전체 면적의 0.3퍼센트인 가장 작은 지역으로 이 중 18.4퍼센트가 미군 기지며, 이는 일본 전체 미군기지의 74퍼센트다. 다이지 주교는 오키나와는 미군의 치외법권지역과 같으며 미군에 의한 민간인들의 희생과 비행기 추락 사고, 환경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주민 모두가 반대하는 기지 이전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오키나와 지역의 헤노코와 다카에 신기지 반대 운동을 설명하면서, 신기지 반대운동의 의미는 “오키나와 지역에 대한 식민 지배와 구조적 차별에 대한 투쟁, 미국 식민 지배로부터의 탈피, 평화 헌법 수호, 안보조약과 미-일 지배협정에 의한 미국의 일본 식민 지배를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본 평화헌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다니 다이지 주교는 일본 평화헌법의 의미는 일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전쟁을 포기하도록 하며 국민에게 주권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미-일 지위협정과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일본헌법의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평화 헌법이 무너지면 무엇보다 집단적 자위권 발동으로 일본은 미국과 한편에서 전쟁을 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다니 다이지 주교는 오키나와와 강정의 문제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실 것이다. 강정과 오키나와는 함께 싸워야 한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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