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평창수련원에서의 연수를 끝내고 원주로 돌아오는 길은 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함께 한 선생님이 여유가 있자 찬찬히 산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천천히 가기는 처음이네. 이렇게 보니, 산들이 참 아름답네요. 석양도 참 곱고....”

강원도 토박이들이라 강원도 산수의 아름다움이 몸에 익어 강원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이들이다. 아니 어쩜 모든 곳이 강원도 같은 줄 알고 사는 이들이다. 오히려 막혀 있는 산이 답답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난 가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저 산 꼭대기까지 나무가 빼곡해. 나무들이 서 있는 게 다 보여.”
“산 뒤에 산이 계속 있어. 정말 장관이야, 장관.”
“대관령은 안개가 자욱해서 신성한 게 느껴져.”
“여행에서 돌아올 때 난 강원도를 느껴. 자꾸 산이 많아지고 멀리 산들이 겹쳐오는 걸 보면 강원도가 가까워진 걸 알게 돼.”
“동해바다 만큼 아름다운 파란색은 없을 거야. 여기서부터 바다 시작! 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백사장도 없이 해변도 없이 바다가 바로 시작되고 있어.”

그들은 씩 웃을 뿐 말이 없다. 아마도 그 웃음의 뜻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느긋함은 아닐까?

그렇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금씩 어두워 가는, 아직 채 고개를 숙이지 못한 벼들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린 참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조금씩 어둠이 날아오는 소리와 여기 저기 불 켜진 집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갑자기 가물가물 내 마음속에 들어온 노래 하나.

오래 전 수녀원에 처음 입회하던 날, 그날 저녁식사 후에 동료 수녀들이 입회를 하면 노래 한곡 부르는 거라며 박수로 날 일으켜 세워 놓았다.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 “등불”.

사진출처 = '등불'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 노래를 부르면 뭔가 가슴 뭉클하니 내가 해야 할 사명이 자꾸 기억나고, 예수님의 빛이 되라는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등불’이라는 노래가 있다면 듣고 싶다고 했고, 드디어는 선생님을 통해 핸드폰으로 ‘등불’을 검색하게 하고 말았다. 아니 날 위해 기꺼이 부탁하기도 전에 검색해 주었다.

누구 노래인지도 가물가물하던 내게, 노래를 부르던 주인공들인 ‘사월과 오월’의 노래냐는 질문이 있었고, 이어서 ‘등불’은 밤을 재촉하듯 은은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조금은 오래된 듯 버걱거리는 음향이 나만의 느낌인진 몰라도 그것만으로도 세월의 흐름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등불’은 내겐 성가 같은 곡이었다.

그 노래를 부르면 마치 내가 등불이 된 것처럼 부끄러움과 각오가 생겨나고, 주님께서 빛이 되어 나를 이끌어 주심이 느껴지고, 내 친구가 되어 나와 함께 걸어주시는 주님이 내 곁에 계시는 것처럼 생각된다.

“옛날 유행가는 노랫말이 다 이렇게 의미가 깊어.”
내가 노랫말을 붙인 것도 아닌데, 그 시대의 노래가 다 내 것인 양 자랑까지 한다.

그 시절 우리는 정말 ‘등불’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인생의 어두움을 걷어가려면 스승이 필요했던 것 같다. 서 로를 축복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려 노력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등불’이 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가족 모임이 왕성하고 가족계획 없이 하느님께서 주신 대로 받아들이며 누나가 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형이 동생들을 건사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아버지 생신이면 모든 동네집을 돌며 아침식사 하러 오시라고 초대하고 다녔던 시절. 동네 어르신들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저 멀리 고갯마루에서부터 나를 알아보던 시절. 지금 돌아보니, 그 시절이 그립다.

오늘은 어떨까?
오늘의 등불은 혹시 TV가 아닐까? 스타들이 아닐까?
그래서 모두 가수가 되고 싶고,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가 준 얼굴을 성형하려고 돈을 모으고, 예쁘면 다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일순간 빛나는 가짜별이다. 영원히 빛나는 별은 아니다.

‘등불’은 높은 데에 두어야 한다.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오늘의 ‘등불’은 타올라야 한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일깨워주는 빛!
모두가 그 빛을 보면 큰바위 얼굴처럼 기다리게 되는 빛!
그런 ‘등불’을 우리가 켜자. 시간이 걸리면 어떠냐. 빛이 작아도 괜찮다. 서로 어깨를 겯고 한 걸음씩 평화를 심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등불

- 사월과 오월

비오는 저녁 홀로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 사이로 푸른빛을 보이는
내 하나밖에 없는 등불을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 받게 하소서.
희망의 빛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게 행운을 내리소서.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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