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 사회적 합의 일방 파기 기업주 고발 - 기륭전자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운동을 벌이며 고발인 서명을 받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민들의 연대로 이뤄낸 ‘사회적 합의’를 어기고 본사를 비밀리에 옮긴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는 논의 결과다. 노조가 기업주를 배임이나 횡령으로 고발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사회적 합의 파기’에 대해 사기죄로 고발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현재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온라인과 직접 서명으로 고발인단을 모으고 있으며, 오는 9월 27일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기륭전자가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문자 메시지로 해고한 뒤, 노동자들은 1895일 동안 공장 점거, 고공 농성, 94일 간의 단식 등으로 복직 투쟁을 이어갔다. 그리고 6년 만인 지난 2010년 11월 1일, 국회의원과 종교인,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측은 ‘직접고용 절대 불가’를 철회하고, 노조는 회사의 경영사정을 고려해 고용 시점을 2년 6개월 늦추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당일, “노사상생의 길을 가겠다”며 약속한 최동열 회장은 2013년 5월 1일자로 복직한 노동자들에게 어떤 업무도 주지 않고, 임금도 체불했으며, 급기야 12월 30일 비밀리에 본사를 옮기고 기륭전자를 상장폐기 했다. 또 직원들도 모르게 회사를 이전한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최 회장은 “그들은 한 번도 우리 회사 직원인 적이 없다”고 발언했다.

▲ 2010년 11월 1일 합의안 조인식.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앞줄 가운데에서 왼쪽), 당시 박유기 금속노조 위원장(앞줄 가운데 오른쪽)이 합의서에 서명했다. (사진제공/기륭전자 공대위)

“사회적 합의 파기는 명백한 범죄”

고발운동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 유흥희 씨는 “기륭전자가 이룬 사회적 합의는 정의와 연대가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면서, “최동열 회장은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약속을 저버린 것이고, 이것은 사회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강제성이 없지만, 시민들 앞에서 한 약속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노동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업장에서 또 다른 갈등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는 노사간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울 때, 정치적인 조율로 화해를 모색하는 것이지만,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 이 때문에 합의 자체가 무산되거나, 이행한 후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진중공업과 기륭전자다. 기업 경영상태와 상관없이 복직을 의도적으로 늦추거나 복직한 후에도 노동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든다.

유흥희 씨는 이런 맥락에서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당위를 확인하려는 것”이라면서, “사회적 책임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진중공업이 희망버스 이후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지만,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과정에서 2명의 노동자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일벌백계로 처벌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발운동의 목적은 비상식적 상황을 상식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것

현재 고발운동 법률단을 맡고 있는 송영섭 변호사는 고발운동은 대사회적인 약속을 어기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무엇이 상식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사회적 합의’가 당장의 위기 모면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가 너무 쉽게 휴지조각이 되는 현실에서 노사간 분쟁의 진정한 종식은 없다”고 우려하면서, “노사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 그 후의 새로운 관계를 마련한다는 것이 모두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영섭 변호사는 “사기죄 고발 형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또 다른 법적 처벌 조항이나 제도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적 처벌 장치를 만드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비상식적 상황을 인식하고 지적할 수 있는 시민의식, 여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영섭 변호사는 고발장이 접수되면 양 측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지만, 단순히 법적 차원의 해결보다는 ‘사회적 합의 불이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시민사회 안에서 논의하고, 의견을 모으는 운동 차원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고발 운동은 온라인 페이지(www.kiryung.org)와 직접 참여 방법으로 진행된다.

▲ 2010년 10월 고공농성 중인 김소연 분회장. ⓒ한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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