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탐구생활 - 15]

앞집 한평 할머니는 허구한 날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집에 찾아오신다. “이 집은 뭐한디야?” 하면서 문을 쓱 열고 들어와 우편물을 들이밀며 뭐가 왔는지 읽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시고, 애기 옷 입혀라, 나물을 더 우려라 말아라 잔소리도 늘어놓으시고, 심심해 죽겠다는 둥 되야(힘들어) 죽겠다는 둥 죽겠다 죽겠다 소리를 무슨 후렴구처럼 연거푸 내뱉으시기도 한다.

마음이 한가로운 날은 나도 할머니를 반갑게 맞이하지만, 가끔은 귀찮고 성가실 때도 있다. 특히 밥 먹는 시간에도 아랑곳없이 들어와 우리 식구가 밥 먹는 밥상 앞에 앉아계실 때, 밥 준비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정신없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실 때, 간신히 다랑이를 재우고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로 찾아와 아이를 깨우고야 말 때는 화가 나서 할머니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기도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렇게 못 하는데 한평 할머니기에 그렇다. 내가 아무리 못 되게 굴고 솔직하게 내 감정을 보여 주어도 할머니는 상처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그렇다. 모질게 말해 놓고 내가 너무 했구나 싶어 반성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몇 시간 뒤에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찾아와 “이 집은 뭐한디야?” 할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의 방문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오시면 쏜살같이 튀어나가 할머니가 뭐 맛있는 걸 들고 오셨나부터 살피고, 그렇지 않더라도 할머니 손을 끌어당기며 함께 놀자고 한다. 다울이는 자기가 그린 그림이나 만든 물건을 끊임없이 선물하고, 다랑이는 할머니 앞에서 예쁜 짓을 하거나 어리광을 부리면서 또 다른 엄마 대하듯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이들을 혼내면 방패막이가 되어서 “때이! 엄마 나쁘다 때이!” 하며 아이 편이 되어 주시고, 아이가 무얼 보여주면 “워따, 잘한다. 워따메!”하며 추임새를 넣어 주시고, 맛있는 게 있으면 “이게 뭣이대?”하면서 들고 와 아이 손에 꼭 쥐어 주시고는 하니까. 정말이지 친할머니처럼 아이들을 사랑해 주시니까 아이들도 그걸 알고 편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에 한평 할머니가 생전 처음으로 다울이에게 화를 내셨다. 태풍 소식에 나락이 쓰러지면 어쩌냐며 할머니와 마주앉아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다울이가 끼어들어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나락? 나락이 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한평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말씀하셨다.

“쌀밥 먹음시로(먹으면서) 나락이 뭔지도 모른다냐? 나락이 밥이여 밥!”

할머니의 반응에 다울이가 깜짝 놀랄까 싶어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히 속상해 하거나 울먹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만 할머니가 왜 그렇게 흥분해서 말씀하시는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서 내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다울아, 논에서 자라는 벼 있지? 그걸 나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러. 겉껍질을 벗겨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만들면 쌀이라고 부르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가 날마다 먹던 음식이 쌀밥이고, 그만큼 소중하니까 부르는 이름도 많은 거야. 할머니는 다울이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르니까 그걸 확실히 알려 주려고 혼내듯이 말씀하셨나 봐.”

▲ 이것이 나락이다! 장흥에 사는 이웃에게 얻은 자광벼. 정말 아름답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부르다. ⓒ정청라

이렇게 말해놓고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는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하고 말이다. 갑자기 삼십 대 초반의 사촌동생이 “누나, 현미하고 보리하고 다른 거야?”라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냐 싶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알아야 할 것을 너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고 슬펐더랬지. 아마 할머니도 그런 마음이었나 보다. 아무리 여섯 살 꼬마 아이라 하더라도, 쌀밥 먹고 사는 이상 알 건 알아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다, 눈치도 없고 지능이 살짝 모자라 마을 사람들에게 ‘모지리’라 불리는 한평 할머니도 당연하게 아는 것을, 또 당연하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초중고를 거쳐 대학까지 졸업을 해도 나락을 비롯하여 날마다 마주하는 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논을 차창 밖 풍경으로 지나치기만 하지 논에 발 담그고 땀 흘릴 일 또한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은 몰라도 도시에 나가 길 가는 젊은 사람 붙잡고 나락이 뭔지 아냐고 물으면 대답 못할 사람도 수두룩하지 않을까? 나락이 뭔지 알고 모르고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정말 상식이 되어야 하는 게 상식이 되지 못하고 엉뚱하고 현란한 지식 습득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세태가 한심하다는 얘기다.

나는 그와 같은 무지와 무관심이 ‘쌀 수입 전면 개방’이라는 황당무계한 정책을 펼치게 하는 거라고 본다. 백성이 어리석으면 권력자가 백성을 함부로 보고 제 뜻대로 쥐고 흔들게 마련이니까. 학력은 고학력이라도 우리는 헛똑똑이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무얼 먹고사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자랐는지를 탐구하는 일이 공부의 출발이고, 또 공부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쌀이 없으면 빵을 사먹으면 된다는 논리, 생명도 돈이 있을 때 가치 있다는 생각,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진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한평 할머니의 말씀의 속뜻을 깊이 되새기면서 말이다.

“쌀밥 먹음시로 나락이 뭔지도(나락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른다냐? 나락이 밥이여 밥!(나락을 잃으면 우리 목숨도 끝장이여!)” 

▲ 큰비 쏟아진 뒤 논을 둘러보러 간 다울이 아빠. 고맙게도 나락은 무사하다. 폭우 속에서도 잘 버텨주었다. ⓒ정청라

정청라
귀농 8년차, 결혼 6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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