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9]

새벽 네 시 반에 숙소를 나섰다. 수바시오 산 중턱에 있는 은둔소에 가려는 참이다. 이 은둔소의 이름은 ‘카르체리’(carceri), 감옥이라는 뜻이다.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 프란치스코 성인은 홀로 산 중턱의 동굴에서 기도하곤 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성인과 초기 동료들이 기도하던 바위틈에 움푹 파인 장소가 남아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수인들이 갇히는 감옥과 닮았다 해서 ‘감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아시시는 도시 자체가 수바시오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 카르체리 은둔소는 아시시에서도 산길로 5킬로미터를 더 가는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평원에 있는 천사들의 성녀 마리아 성당 곁 숙소에 머물고 있는 우리는 일찌감치 출발해야 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숙소를 나서려는데, 아차! 숙소의 큰 철 대문이 잠겨 있는 게 아닌가. 이 문이 잠겨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쩐다? 숙소의 담도 대문 못지않게 높고 새벽 네 시 반에 사람들을 깨울 수도 없는 노릇. 할 수 없이 대문을 타고 넘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감옥을 찾아가려 마음먹었지만 사실 갇혀 있는 사람은 우리였구나, 싶기도 하다. 부에 매인 마음, 관계에 의지하고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에 매여 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쇠창살일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는 실제로 아버지 손에 의해 집안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는데 결국 주교의 재판정에서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섬긴다는 선언을 한 뒤에야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성 프란치스코의 삶에 매료된 귀족 집안의 딸 성녀 클라라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느님을 찾아 나선 것도 1211년 성지주일 밤이었다. 2미터가 넘는 대문을 나무 수사와 서로 받쳐 주고 끌어 주며 넘어가는데 십자가의 성 요한이 떠오른다.

▲ 아시시의 실루엣. ⓒ김선명

어느 어두운 밤,
타오르는 사랑에 초조해져서
오, 복된 운명이여!
들키지 않고 나왔네...
(어둔 밤, 첫째 노래 중에서)

하나의 감옥에서 나와 다른 감옥을 찾아간다. 지금까지 갇혀 있던 감옥에서 나온다고 바로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자유를 꿈꾸게 하는 것이 타오르는 사랑이며 그 사랑을 거역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복된 운명이라 여기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이다.

▲프란치스코가 아버지 손에 의해 갇혔던 집안의 감옥(왼쪽), 은둔소의 입구. ⓒ김선명

아직 어두운 길을 걷는다. 왼편으로 수바시오 산의 사면에 자리 잡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어렴풋이 삶의 길을 찾아가던 시절,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던 프란치스코가 수바시오 산의 동굴을 찾아가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지금까지 걸어온 대로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걷고 싶지만 아직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삶의 모든 시간은 우리가 모르는 씨앗을 품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 살아가는 시간, 살아갈 시간 모두가. 그 시간이 품은 씨앗을 대면하는 시간, 그 씨앗을 싹 틔우고 자라게 하는 시간이 스스로 찾아가는 감옥 안의 시간이리라. 그곳에서 홀로 하느님과 함께 그분이 내게 주신 시간의 의미를 묻는 것, 그 시간만큼 외로운 시간도 없을 것이나 그 시간만큼 달콤하고 행복한 시간도 달리 없을 것이다.

쉬엄쉬엄 걸어 은둔소에 도착한 시각은 일곱 시 오십 분. 수도원의 성당에서는 이미 미사가 시작되었으므로 우리는 은둔소 옆 산길에 있는 돌 제대에서 미사를 드렸다. 은둔소로 들어가는 건물 위쪽에는 “하느님이 계신 곳, 그곳에 평화가 있다”(Ubi Deus, ibi pax)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이곳 카르체리 은둔소는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방향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초창기에 뜻을 같이하는 형제들이 모였을 때 성인은 자신이 기도에만 열중해야 할지 세속에 나가 설교도 해야 할지 고심하였다. 그래서 클라라와 그의 자매들에게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물으면서 이곳 카르체리 은둔소에 있던 실베스테르 형제에게도 같은 것을 물었다. 이 청을 듣자마자 실베스테르는 엎드려 기도드린 후 하느님의 응답을 전해 준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지금 신분으로 부르신 것은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클라라 성녀와 그 자매들에게서도 같은 응답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기쁨에 넘쳐 선교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성인이 남긴 ‘은수처를 위한 규칙’은 셋 또는 넷으로 이루어진 은수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기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아들’로, 그 ‘아들’이 침묵 속에서 기도에 열중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을 ‘어머니’로 호칭한다. 그러면서 아들들의 삶을 마리아의 삶, 어머니의 삶을 마르타의 삶이라 부른다. 그리고 때가 되면 아들들과 어머니들은 역할을 바꾸어 각기 마르타와 마리아의 삶을 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고독 속으로 물러가는 것은 마리아로서 살기 위함이지만 그것은 자신만 하느님 사랑 속에서 기뻐하며 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하느님 사랑으로 충만해져 이웃들 역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형제 자매들 안에 예수님을 낳아주는 어머니로 살려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 말대로 세상에 눈을 감고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교회의 벽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인가. 수바시오 산 골짜기 참나무 숲에 둘러싸인 카르체리 은둔소 지붕 위에서 십자가에 기댄 성 프란치스코가 가만히 저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 카르체리 은둔소의 수도원(왼쪽),은둔소 지붕 위의 프란치스코 상.ⓒ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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