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강우일 주교(제주교구)가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창립 40주년 감사미사에 보내는 격려사입니다. 정의구현 사제단은 1974년 9월 26일 창립되었으며, 월요일로서 사제들의 휴무일인 오늘 9월 22일에 명동성당에서 감사 미사와 기념 심포지엄을 하고 있습니다.

정의구현 사제단 40년을 기억하며

▲ 제주교구 교구장 강우일 주교 ⓒ한상봉 기자
세상을 주름잡는 불의의 세력에 저항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없는 이들의 형제가 되고 버팀목이 되려고 지난 40년 한결같이 헌신해 오신 여러 신부님들의 희생과 노고에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교회의 현대사 안에서 여러분이 걸어오신 발자취는 어떤 이들에게는 걸림돌이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의 큰 표지석이 되었습니다. 저도 여러분이 모임을 만든 같은 해에 사제로 서품되어 특별한 감회와 기억을 공유하며 나 자신은 지난 40년을 어떻게 살았나 하고 성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변함없는 복음적 열정과 투신에 저 자신이 좀 더 가깝게 함께 하지 못하였음에 아쉬움과 부족함도 느낍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세월 여러분은 많은 이들의 지지와 성원도 받았지만 비판과 성토도 적지 않게 받았습니다. 진실과 정의를 밝히고 바로 세우기 위해 비판과 성토를 두려워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참된 예수님 제자로 살아가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른 사람도 배척하지 않는 아량과 관용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복음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우리의 삶은 인간적인 지혜와 방법론에 치우치지 말고 항상 예수님의 복음적 삶의 기준과 행동 양식에 근거하도록 끊임없이 살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료 사제 여러분들을 지금 마음속에 마주하면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합니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세상에 우리를 파견하시는 예수님은 우리가 강하고 날쌘 맹수처럼 이리 떼를 제압하는 힘을 기르기보다는 양처럼 처신하라고 하십니다. 양은 동물들 가운데 제일 연약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파견을 받아 나아가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 일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오늘 한국 교회도 한국 사회도 4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느님 말씀의 육화를 실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육화는 끊임없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새롭게 적용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심화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의 이러한 육화의 폭과 깊이를 넓혀 가기 위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복음의 시야에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갇혀 있기보다는 세상을 향해 더 열린 마음으로 살피고 또 이 나라 이 사회 안에만 머물기보다는 우리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다른 나라, 다른 대륙의 형제들을 향해서도 우리의 관심과 연대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들이 각자의 이해타산과 욕심으로 다스리는 이 세상의 나라들 안에 하느님께서 손수 다스리시는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길을 여러분도 항구히 펼쳐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014년 제주에서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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