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수사, <사랑을 선택하다>, 신앙과지성사, 2014

<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에릭 와이너는 성자(聖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자는 문제가 많은 존재다. 성자들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기를 꺽어 버릴 수도 있다.... 사실 성자를 높이 우러러보는 것만큼 영적인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것은 없다.”

▲ 로제 수사
로제 수사는 종파를 초월한 떼제 공동체를 만들어 그리스도의 일치를 실현했고, 평생 “우리 주위의 가장 곤궁에 처한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삶으로 대답하며 살았다. 2005년 그가 세상을 떠나자 전 세계 각지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떼제 공동체로 수천 통의 조문이 왔다. 많은 사람들은 로제 수사의 죽음을 마틴 루터 킹 혹은 마하트마 간디의 죽음에 견주기도 했다. 그를 성자나 영적지도자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로제 수사는 수사들이 영적 지도자가 아니며 남에게 도움을 주는 말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소명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스스로를 영적지도자라고 여기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려했다면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제로 모여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떼제에서 기도와 공동체생활을 경험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사랑을 선택하다>를 보면 정치적으로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동유럽의 국경을 넘나들며 그리스도인들을 만났고, 늘 가난한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방문했던 로제 수사의 삶을 알 수 있다. 그의 삶을 보면 충분히 성자나 영적지도자라고  불릴 만 하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하다>에서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그의 진정성은 힘들고 어려운 체험과 고민에 대해 늘 그리스도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내린 희망어린 결론에 있다.

“우리는 완전하게 잘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견디어 나갈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예’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비록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매일매일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함께하시어 우리가 약속과 헌신한 대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신다. 모든 것은 필요한 만큼 차츰차츰 주어질 것이다.’”

로제 수사를 성자이자 위대한 영적지도자라고 칭송할 수 있다. 누군가를 성자라는 특별한 지위에 놓고 존경한다고 말하기는 너무 쉽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낮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지 감탄하는 글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왜 그가 칭찬해마지 않는 사람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일까.

로제 수사는 평생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다. 그는 그의 성자이자 영적 지도자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따랐다. 특별해서 성자가 되고 위대한 삶을 산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늘 사랑을 선택했기에 특별해진 것이다.

“떼제의 초창기, 하루는 이웃 마을에 갔다가 걸어서 돌아왔다. 길에서 나는 가난이 묻어나는 젊은 사내 하나를 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이런 질문이 솟구쳐 올랐다. ‘...너는 그렇게 가진 것 없는 사람들 곁에 있겠는가?’ 대답은 분명했고, 나는 선택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이렇게 자문했다. ‘그날 길에서 내가 만난 이는 누구였던가?’ 그가 누구였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모르는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내게 다가오셨던 것이다. 나와 우리 형제들은 계속해서 가장 버려진 이들 안에서 그분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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