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구 신부, 사제단 40년 힘은 "'목마름"

1974년 9월 26일 서슬퍼런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기도회가 명동성당에서 열렸다.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등 1200여 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첫 시국 선언을 발표하며, 사제단의 창립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40년. 사제단은 이 땅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의의 현장을 드러내고 고통 받는 이들의 외침을 전하는 목소리가 됐다. 지난 40년은 해방지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이념 논쟁과 사제들의 정치 개입 논란에 시달리는 광야의 시간이기도 했다.

▲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정현진 기자
4 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9월 20일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만난 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장위동 선교본당)는 사제단의 활동은 정치도, 운동도 아닌 ‘사제로서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에 빠져 갈망의 눈길을 보낼 때,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는 부족한 자신을 보면서, 함께 하는 사제들, 하느님의 영이 절실해지죠. 이 갈망이 사제단을 모이고 움직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의 의미와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나승구 신부는 지난 40년을 이어온 힘은 ‘목마름’이었다고 말했다. 목자로 산다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라는 그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부족함을 깨달으면서 서로 모이게 된 것”이라면서, “40년은 무능하고 여리기만 한 사제들을 하느님이 초대하고 배려한 것”이라고 사제단의 의미를 찾았다.

또 사제단이 ‘예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사제단은 예언을 하지 않고, 또 능력도 없다”면서,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제야 조금 하느님의 소리를 어디서 듣고 알아차려야 하는지 알게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 신부는 그간의 활동을 통해 “슬픔과 고통을 품고 있는 이들의 소리가 바로 하느님의 호소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알아차릴 때, 선한 백성들이 함께 했던 것”이라면서,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바로 예언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는 하느님을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이 체험은 오직 이웃을 위한 십자가의 삶 안에서만 확인되고 가능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사제적 삶의 근거와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사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정의구현사제단이 밀양 여수마을을 방문해 말씀의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사진 제공 = 정의구현사제단)

사제단이 품고 사는 ‘사제의 고백과 다짐’ 첫 머리다. 사제단은 ‘이웃을 위한 십자가의 삶’ 안에서만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 안에서 소명을 찾고 살아야 하며, 그 가운데 십자가는 이들이 기꺼이 짊어져야 할 몫이자, 이웃의 삶과 연결하는 다리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 신부는 이 시대 사제단의 고유한 몫을 묻는 질문에 “사제단의 고유한 역할은 사제의 삶”이라면서, 누군가는 ‘사제단 운동’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특정 사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나 신부는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 거리로 나서는 것에 대해서도 “흔히 ‘식별’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현장’ 없는 식별은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면서, “다만 형제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 신부는 사제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제단이 없어도 되는 세상”이라고 역설하면서,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제 자리에서 자신의 희망을 실현하는 세상을 우리도 함께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22일 오전 명동성당에서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오후에는 사제단 활동의 성찰과 방향 모색을 위한 심포지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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