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사랑이야말로 가장 최상급의 ‘보상’인 것 같은 요즘이다. 아울러 사랑을 한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이 된 듯하다. 어쩌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살게 됐을까?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가 하나도 없는 가정과 일터를 맴돌며 사는 우리. ‘사랑’이라는 말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 같은 황폐한 일상.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드라마는 이미 종영했고 늦은 줄 알지만 글을 쓰고 있다.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본격 심리 드라마’를 내세운 작품이다. 기획 단계부터 화제였다.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가 손잡았을 뿐 아니라, 조인성과 공효진이 남녀 주인공이었다. 주변에는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했다. 방영 내내 화보처럼 공들인 장면 장면들이 주목 받았다. 종영 후 노희경 작가가 직접 엮은 대본집까지 출간되었다. 책 소개에는 이런 글들이 씌어 있다.

“(이 드라마는)우리 마음의 상처, 마음의 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아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폭력적으로 다가서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지를 깨뜨리는 소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외모와 성격까지 완벽한 남자 장재열과 시크하지만 인간적인 정신과 의사 지해수의 달달하고 가슴 설레는 로맨스와 함께 매회 다양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아픈 사연이 그려진다.”

▲ SBS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한 장면.(사진출처="괜찮아 사랑이야"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아프다고 인정하면, 약은 있는가?

그렇다. 이 드라마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물론 각종 드라마에는 늘 아픈 사람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멀쩡한 척하고 있으며 절대로 ‘아프지’ 않다고 발악에 가까운 자세를 보여 왔다는 데 있다. <괜찮아, 사랑이야>처럼 처음부터 대놓고 등장인물 모두가 아픈 사람들이며 가장 중증으로 아픈 사람이 주인공임을 드러낸 드라마가 또 있었을까. 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멋지고 성공한 사람들만 나올 것 같은 로맨스 드라마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무리 아파도, 로맨스는 가능하다!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인 동시에 한계일지라도 그런 위안이나마 드문 것이기에 소중했다. 당연히 ‘셰어하우스’의 현실이나 문제점과는 동떨어진 낭만적이고 화려한 설정은 말 그대로 드라마 세트장 용도였다. 캐릭터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를 따지면 모순덩어리인 점도 없지 않다.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면서 오히려 완연한 비현실과 환상에 기댄 면도 컸다. 애초의 설정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켜볼 수 없을 정도의 ‘그들만의 세상’ 혹은 ‘그들만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오직 심리와 ‘과거의 상처’ 그리고 ‘부모의 죄’에 기댄 듯한 갈등 상황과 대사들이 때로는 숨 막히게 답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실제 시청률과 상관없이 시청자들이 무한히 애정을 쏟은 이유가 있다. 나도 아프다고, 나야말로 치료와 처방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 멋지게만 보이는 이들이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색이 ‘심리 추리’ 소설을 쓰는 인기 작가 장재열(조인성 분)은 분열증과 망상에 시달리고, 솔직히 마지막회까지 보고 나면 저런 정신으로 어찌 글을 쓰며 일상을 유지하는지 심히 우려가 될 지경이다. 외모만 멋질 뿐 어디 하나 ‘괜찮은’ 곳이 없으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다. 심지어 이처럼 아픈데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 상처도 팔아먹고 사는데 남의 상처쯤이야.”하는 자세로 살아왔다. 상처는 한 번 내보이지도 못하고 곪아왔다. ‘인기 작가’라는 부담은 그에게 어쩌면 독이었을 수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정신과 의사들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미숙한 인간들처럼 그려진다. 모자라고 결핍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필이면 그 많은 전공 중 정신과를 택한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의과대학에서 ‘정식’으로 배웠다고 해서 자기의 상처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병원에서 오래 근무했다고 해서 ‘치유’ 혹은 ‘치료’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듯도 하다.

거울 들여다보듯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는 의사들이나 환자들이나 없기는 매한가지다. 지해수(공효진 분)는 물론이고 조동민(성동일 분), 이영진(진경 분)을 보고 있으면 때로 환자보다 더 아파 보인다. 다만 닮은 사람들끼리 증상을 서로 살피고 다독인다. 환자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늘 배워야 한다.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상처를 분별하고 똑바로 바라볼 용기

뭐가 괜찮은 것인지, 뭐가 안 괜찮은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안타깝고 가슴이 아렸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소감이다. 어떤 느낌이 사랑인지, 실감할 감각은 있는 것일까? 이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한꺼번에 내포한 드라마 제목만큼은 기가 막히게 좋다. 그러나 괜찮지도 않으며 사랑을 하기에도 여의치 않은 이 막막한 현실감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 감각부터 바로잡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을 듯하다. 아무 것도 괜찮지 않다. 세상 전체가 어디를 둘러봐도 아파 신음하는 소리뿐인데 이 아픔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실은 사랑보다 더 절실한 것은 아닐까.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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