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장영식

만덕5지구는 1970년대 부산 동구와 영도구 주민들이 강제 이주되어 형성된 마을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부산의 무허가 판자촌에 대한 도시 정비 사업으로 강제 이주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상학산 아래 황무지였던 만덕에 2호 연립주택과 4호 연립주택을 20년에서 30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분양받고 이주하였다.

이곳으로 이주했을 당시의 주택은 정부의 약속과는 다르게 정상적인 주택이 아니었다. 건물은 골조만 해 놓고 내부 공사는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주택의 대문조차도 없었다. 전기와 상수도 시설도 없었다. 주민들은 촛불을 켜 놓고 밤을 지내야 했고 돈이 없어 문을 달지 못한 사람들은 엄동설한의 혹독한 겨울을 온 가족이 이불 속에서 떨며 지내야만 했다. 당시 입주자 중에는 내부 공사를 할 자금이 없어 권리금을 받고 팔기도 하였다. 만덕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매월 상환금을 꼬박꼬박 갚으면서 내 집을 지키고 마을을 일구며 살아왔다.

부산광역시는 1532가구가 살고 있는 만덕5지구를 2001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였다. 한국 주택토지공사(LH)가 이 사업을 진행하면서 3145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이다. 주거환경개선지구란 도시 저소득 주민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서 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노후, 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만덕5지구는 도시 정비가 그 어느 곳보다도 잘되어 있다. 주택은 비록 노후하였지만 사람 사는 데 전혀 불편함 없이 잘 손질된 곳이다. 신작로와 같이 넓은 도로망은 ‘왜 이곳을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하였을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한다. 또한 당시 주민들에게 ‘헌 집 주면 새 집 줄게’라는 사탕발림으로 주민들의 동의를 받았지만, 이 사업은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합병으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주민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 지급 기간도 3년이나 늦어졌다.

원래 보상하기로 한 시점에서 보상이 이루어졌다면 인근 24평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부동산과 물가의 폭등으로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곳의 주민 대다수는 70-80살의 어르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만덕5지구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출가시켜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인근 구포시장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려왔던 어르신들은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 내 집에서 쫓겨나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닐 수는 없다고 호소한다. 어르신들은 현실에 맞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여기서 잠들게 해 주소”라며 울부짖고 있다.

▲ 9월 19일 금요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오늘 10시에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만덕5지구 지정해제 공정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상규

‘만덕’이란 말은 ‘만 가지 덕을 얻은 사람들’이란 뜻을 갖고 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덕으로 일군 마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덕5지구는 강제철거를 앞두고 있다. 9월 19일 오전 10시, 부산고등법원 454호실에서 항소심 선고공판이 있을 예정이다. 지금이라도 부산광역시와 LH는 개발 이익을 위한 강제철거와 원주민 몰아내기식의 사업을 중단하고 마을주민공동체 주민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부산광역시와 LH는 사람이 아니라 돈이 중심이 된 대단지 아파트 건설을 지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마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인식의 전환과 대안 마련에 주민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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