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한 달 넘어, 민미협 회원들, 현장에서 그림 그려..

 

걸개그림에는 "못난 정부 없는 곳에서 편히 쉬소서" "이렇게 못난 조국을 떠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가 있던 2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지녔던 분이 떠나는 날, 그 가난한 이들 가운데 다섯명의 철거민이 생존권을 위해 옥상에 지어진 망루로 밀려났다가 공권력의 진압과정에서 결국 불에 타서 이승을 떠났다.

1만여명 넘는 조문행렬이 이루어진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마무리되는 동안에, 용산참사 현장에는 십여 명의 미술가들이 붓과 페이트와 물감을 한 손 가득 들고 모여들었다. 민족미술협의회 소속 사람들이다. 사다리차를 동원하여 불탄 건물 벽면 높이 '여기에 사람이 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대형 걸개그림을 걸었다. 너댓명의 화가들은 이미 도로변으로 난 길가에 길게 천을 대고  희생자들의 영정을 옮겨 그리고 있었고, 추운 날씨에 손을 녹이려고 가져다 놓은 드럼통에선 장작이 타고 있었다. 

붓을 손에서 놓치 못하던 정세학(민족미술협의회 대외연대위원장, 49세)씨는 <지금여기>에 "벌써부터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벽면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면서 "현장에 오면 늘 을씨년스러웠는데, 벽이 없으면 화면을 만들어서라도 그림을 그리자고 입을 모왔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이곳을 다녀갔으면 좋겠다"며, "오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장례식 때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미리 준비해 온 작품들이 참사 현장 구석에 제 자리를 잡아서 걸리고 있었는데, 침대 매트리스며 담요, 합판 등 현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다 무너진 상가에서 떼어낸 간판들도 좋은 화면(畵面)을 제공해 주었다. 이 그림들은 일종의 상징으로 말없이 사람들에게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참사 한 달이 되는 오늘에서야, 용산참사 관련 범국민대책위에서는 노상 천막에 있던 분향소를 건물 1층 상가 자리를 청소하고  옮길 수 있었다. 그들이 상주하는 공간은 깨진 유리창 대신에 비닐을 쳐서 바람을 막았다. 그리고 오후 7시 30분부터 진행될 추모대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군데군데 드럼통을 이용한 모닥불이 지펴져 있었다. 정말 추운날씨, 손을 녹이는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여기저기 모여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추모대회가 시작되었다. 약 20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사물을 치는 길놀이로 시작된 추모대회가 진혼굿으로 이어지면서, 참석자들은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 이들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어떻게 절규했을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툭 털고 건너가기엔 아직 남은 한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곱은 손으로 저마다 촛불을 들고, 드럼통에선 장작이 타오르고, 춤 추는 이는 서러운 몸짓으로 불꽃을 그러안고 내치고 토해내고 사그러들었다. 이어 손세실리아씨의 추모시가 낭독되었고 유족들은 "여러분이 가족 같다"고 말했다. 

<근조 謹弔>라고 쓰인 리본을 달고 모닥불을 쬐던 홍남일씨(37세)는 지난 19일 명동성당에 김수환 추기경을 조문하고 왔다고 한다. 그 리본을 아직까지 달고 있는 홍씨는 <지금여기>에 "용산희생자나 추기경님이나 다 같은 죽음인데 좀 서러웠다"고 말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하고 폭력배로 매도되었고, 어떤 사람은 종교인으로 존경을 받으며 죽었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밝힌 그는 "웬지 가봐야 할 것 같아서 명동에 조문을 다녀왔다"면서 "용산 희생자들의 죽음은 세상에서 소외된 죽음"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김수환 추기경이 예전처럼 건강하게 살아 있다면 분명히 이 자리에 와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앰프에서는 안치환이 불렀던 '마른 다시 살아나'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 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은 푸르러"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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