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호흡처럼, 이 노래처럼]

어제 돌아가신 동료 수녀님의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 드리고 오는 고속도로 변에서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 아직 곡식이 채 익기도 전에 제사상을 차리느라  올해는 새 곡식이 제사상에 오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가을은 아주 천천히 그 높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왔다는 신호음인 노래가 크게 흘러나왔다. 잠자던 사람들까지 모두 깰 만큼 큰 소리였다.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 KBS열린음악회에서 '무조건'을 부르는 가수 박상철. 사진출처/KBS 열린음악회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몇 년 전 선교사로 떠나던 동생 수녀님의 공동체 파견식에서 우리가 불렀던 노래 가사다.
자연스럽게 그 수녀님의 얼굴이 겹쳐 오며 행복한 선교사이기를 기도해 본다.

살레시오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기쁨’이다. 우리는 축제를 지낼 때 그 축제의 내용에 맞게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기도 한다. 돈 보스코처럼 아이들에게 축제를 선물하기 위해서다.

수녀님이 떠나던 그날도 우리는 축제를 지냈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한 노래가 바로 '무조건'이었다. 이 노래는 개사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수녀님의 선교사로서의 출발에 걸맞은 노래였다.

다만 유일하게 한 곳 바꾼 데가 있다면, ‘당신’을 ‘주님’으로 바꾼 것이었다. 주님이 아니라면 그 수녀님이 가족이 있는 땅, 양성기를 보낸 땅, 동기 수녀님들과 공동체가 있는 이 땅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수녀님도 우리도 수녀님을 떠나보내는 것이 슬프지 않았다. 비록 어디로 가는지 명확한 것이 없어 어디를 가도 잘 살라는 인사 외엔 축복만 가득했다.

수녀님은 아프리카로 가고 싶어 했다. 이태석 신부님처럼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선교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우리 수도자들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간다.

선교사 양성 코스를 마친 수녀님이 순명을 받아 간 곳은 아프리카도 아시아도 아니었다. 수녀님이 간 곳은 유럽이었다. 어디 꿈이라도 꿨을까? 자신이 유럽의 선교사가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수녀님은 ‘무조건’ 응답하셨다.

'무조건'이라는 노래 가사 속엔 수녀님이 오랜 시간 기도했고 지금도 하고 있을 내용이 들어 있다.

“주님, 제가 필요한 곳으로 저를 불러 주시면 기쁘게 어디라도 가겠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이 보내시는 그곳에서 그들을 사랑하며 당신을 선포하는 선교사가 되겠습니다.”

'무조건' 어디라도 가겠다는 수녀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었기에 함께 기뻐했던 순간을 기억하게 해준 '무조건'이라는 노래, 갑자기 크게 울린 휴대폰 벨소리도 싫지 않았던 여행길이었다.


무조건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주님’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 거야.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주님’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주님’이 부르면 달려갈 거야. 무조건 달려갈 거야.



김성민 수녀
(젤뜨루다)
살레시오회 수녀이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동화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이야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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