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것이 이렇게 큰일이 되었나"

용산화상경마장 이전 반대를 위한 농성이 500일을 맞았다.

지난해 5월 2일 ‘화상경마도박장 저지를 위한 주민대책위’가 활동을 시작한 지 500일 째인 9월 13일 서울 용산구 화상경마장 앞에서는 화상경마장 철수를 촉구하는 문화제가 열렸다.

“화상경마장이 왜 이곳에 들어오는지, 많은 투자금과 매출액이 있는지, 화상경마장을 찬성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 학교를 마을의 등불이 아닌 상권 개발의 장애물로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알아요. 그것은 아름답고 멋진 일이에요.” (성심여고 2학년 재학생)

문화제는 인근 성심여중고 학부모와 학생, 주민들과 연대하는 시민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으며, 연극인과 음악인들의 공연, 500일 간의 싸움을 담은 영상 상영 등이 이어졌다. 또 성심여고 학부모와 학생이 서로에게 전하는 편지글이 낭독됐다.

▲ 문화제는 화상도박장 인근 학교의 학부모, 학생, 주민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정현진 기자

엄마와 딸이 서로에게 전하는 이 메시지에서 성심여고 2학년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부모님들의 고생을 보면서 옳은 일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았다며, 화상경마장 반대 싸움에 동참한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조금도 변하지 않는 상황 앞에 절망하는 것은 너무 힘들었지만, 정의는 언제나 우리편이며, 합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믿는다."

또 성심여고 학부모는 역시 편지를 통해 “오직 안전한 통학로 확보만이 소원이었는데, 왜 이것이 이렇게 큰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극복하리라는 확신으로 불평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내 딸이 졸업해도 또 다른 딸들이 올 것이고, 나와 같은 엄마들이 지켜줄 것이며 학교는 등불이 되어줄 것”이라면서, 결코 이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 9월13일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철수를 촉구하는 문화제에 참여한 주민과 학생 ⓒ정현진 기자

“처음에는 100일 정도면 마사회가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500일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아요.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마사회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물러나기를 바랍니다.”(홍성연 성심여중 3학년)

“학생들이 안전히 교육받을 권리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요. 이렇게 당연한 일에 맞서 싸우는 것 자체가 이상해요. 이 일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어요.”(주세원, 성심여중 3학년)

“작년부터 미사와 문화제에 참석했어요. 부모님들께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저희 학생들의 진심과 선생님, 교장선생님들까지 ‘종북’이라면서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배민경, 성심여중 3학년)

이날 문화제에 같은 반 친구들과 참석한 성심여중 학생들은 마사회의 행동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교육권과 생활권을 위한 진심이 이념 논쟁으로 왜곡되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 문화제에 참여한 성심여중 학생들 ⓒ정현진 기자

또 성심여고 김율옥 교장(성심수녀회)은 “우리는 세월호 참사와 같이 아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 살아있고, 살아갈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것을 통해 세상이 살 만하고,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화상경마장 반대 싸움을 다시 한 번 결심한다고 말했다.

용산화상경마장 철회를 위한 매주 목요일 미사를 함께 봉헌해 온 조현철 신부(예수회)는 문화제에 참석한 뒤, “경마도박장은 이전이 아니라 없어져야 한다”고 일침했다. 조 신부는 “용산화상경마장 싸움 또한 우리나라 정부, 이 사회의 현 주소를 짚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는 오로지 돈이 된다는 이유로 말이 안되는 일을 눈감아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며 당연한 권리 주장을 하는 이들이 500일 씩 거리로 내몰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한편, 이날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 대책위는 500일을 맞아 ‘마사회 규탄과 도박장 추방’을 위한 결의문을 내고 “마사회의 거짓과 교만, 국민 무시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책위는 17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도박장을 반대하고,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와 국회, 교육감도 반대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내고 있는 상황에서 마사회가 기습적으로 시범 개장을 하고, 주민, 학부모, 교사 22명을 형사 고소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마사회는 더 이상 말산업 육성을 위한 공공기관이 아니며, 합법 도박을 통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에게는 주민 서한에 대해 응답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국회에는 마사회법과 학교보건법 등의 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마사회 측은 이같은 주민들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화상경마장 영업 방해 등을 이유로 주민과 교사 22명을 형사 고발 하는 등, 개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고집하고 있다.

현재 대책위는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화상경마장 개장 저지 농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또 경마장 앞에서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개장 철회를 촉구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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