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국수집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 소외당하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가장 소외당한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더럽다고, 부도덕하다고, 냄새난다고 무시하고 비웃는 그 사람들 속에서 숨어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아욱과 시금치 그리고 콩나물을 넣고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오랜 동안 소고기국만 드시다가 시원한 된장국을 내니까 손님들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손님들이 된장국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이 참 많이 오십니다. 새로운 얼굴도 많이 보입니다. 오랜만에 오시는 분도 많습니다. 한 동안 안 오시던 분들도 일거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오십니다. 오전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 손님 숫자를 헤아려보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예순 일곱 분이 오셨습니다. 이렇게 많이 오셔도 밖에서 기다리는 분이 없어서 참 좋습니다.

손님들이 이처럼 많이 오시면 봉사자들도 많이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손님들이 적게 오시면 봉사자들도 적게 오십니다. 손님들이 많이 오시면 봉사자들도 많이 오십니다. 설 다음날은 오늘보다 손님이 훨씬 더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희한합니다. 그때는 수녀님 아홉 분이 오셨고 다른 봉사자도 일곱 분이나 오셨습니다.

요즘은 하루에 쌀이 120Kg에서 140Kg 정도 듭니다. 대성 씨가 쌀을 나르느라 바쁠 정도입니다. 국도 김치도 다른 반찬들도 지난해보다 배도 더 나갑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도 고마운 분들의 끝없는 나눔 덕택에 모자라지 않습니다. 비워지면 채워지고, 비워지면 더 채워집니다.

용자 할머니가 쌀을 가지러 오셨습니다. 요즘은 손녀가 와서 쌀이 더 들어간다고 합니다. 쌀을 한 포 드리고 계란도 세 판을 드렸습니다. 쌀을 드리자마자 차가 국수집 앞에 섰습니다. 20Kg짜리 쌀 5포, 10Kg짜리 쌀 6포, 사과와 배와 귤을 한 상자씩 내려놓고 이름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그냥 가버리십니다.

제주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혹시 양배추가 필요하지 않는지 물어봅니다. 10망정도 주시면 고맙다고 했더니 더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욕심 잔뜩 내어서 50망을 부탁해도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양배추 50망이면 한 망에 양배추 세 포기니까 150포기입니다. 양배추 김치도 담그고 양배추 채도 내고 양배추 쌈도 하면 우리 손님들께 푸짐하게 대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00망을 보내주시겠답니다. 그래서 더 욕심을 내어 말씀드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 다 사용할 수는 없고 필요한 곳들과 나누어도 된다면 기쁘게 받겠다고 했습니다. 곧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동인천 전철역에서 서울에서 오시는 손님들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실 손님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 참 고민스럽습니다. 백 원짜리 동전 한 닢도 아쉬운 우리 손님들이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셔서 식사하시고 또 돌아가시려면 전철요금만 이천 원이 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시는 손님께 전철요금을 드리면 좋은데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인천 손님들도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걸어서 오시는 분도 많습니다. 동인천 전철역에서 근무하시는 분들도 무임승차하시는 우리 손님들을 무한정 받아줄 수 없는 처지일 것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무급 직원인 대성 씨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민들레 식구인 주헌 씨가 1급 장애인이니까 자기와 함께 아침에 한 번 동인천역에 가서 표 두 장 얻어오고, 오후에 또 한 번 가서 표 두 장 얻어다가 손님들께 나눠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듣고 있던 주헌 씨도 찬성을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오기 위해서 동인천역에서 내렸다가 역무원에게 혼쭐이 난 손님들께 가실 때는 힘들지만 조금 더 걸어서 도원역이나 제물포역까지 가서 무임승차를 하면 좀 쉬울 것이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기섭 씨가 감기에 걸렸나봅니다. 밥을 조금만 드십니다. 머뭇거리다가 쓰레기봉투 몇 장을 내밀면서 좀 사 달라고 합니다. 찜질방에서 하룻밤만 자면 감기가 나을 것 같다고 합니다. 주고받는 장사를 하려면 밥값도 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미안하다고 합니다.

기섭 씨에게 그냥 쓰레기봉투를 민들레국수집에 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냥 찜질방 오천 원을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망설이다가 쓰레기봉투를 그냥 내밉니다. 저도 그냥 오천 원을 드렸습니다. 덤으로 용원약방까지 함께 가서 감기약을 사드렸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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