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세월호 단식 농성장에서 추석 잔치 열려

세월호 유가족, 실종자 가족이 참사 후 첫 명절을 맞았다.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시간임에도 가족 잃은 슬픔조차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유가족을 위로하는 자리가 광화문에서 열렸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오후 3시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동조 단식단, 시민들과 함께 OX퀴즈를 비롯한 추석맞이 놀이를 마련했으며 ‘세월호 가족 지원 네트워크’는 400인분 먹거리를 만들어 광화문 광장에서 잔칫상을 차렸다.

▲ 이날 광화문에서 나눈 400인 분의 먹거리는 '세월호 가족 지원 네트워크'에서 준비했다. 추석 당일임에도 2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손수 준비했다. ⓒ강한 기자

추석 당일인데도  광화문 광장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이들과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유독 가족 단위 참가자가 많이 보였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왜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세월호 참사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함께 서명했다.

두 딸, 남편과 함께 차례를 지내고 광화문을 찾았다는 한연주 씨는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로서 가족이 다 모이는 특별한 날,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유가족들이 많이 걱정됐다”면서 “오늘 우리 가족이 광화문을 찾았다고 해서 아주 큰 위로를 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같은 생각으로 지지하고 있는 이들이 이렇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래도 힘이 될 것 같았다”고 광화문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 오후 3시 쯤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과 세월호 진실에 관한 OX퀴즈 게임을 진행했다. ⓒ강한 기자

“우리 때문에 우울한 추석 보내지 말고 즐겁게 가족들의 행복을 기원하십시오”

▲ 김영오 씨는 국민들에게 하나가 돼 달라면서 오늘만 울고 내일부터는 먹고 웃으면서 싸우자고 당부했다. ⓒ강한 기자
이날은 특별히 단식 후 회복 중이던 김영오 씨가 시민들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 광화문을 찾았다. 김영오 씨는 모인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추석 음식을 보니 아이들 입에 음식 넣어 주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오늘까지만 슬퍼하고 내일부터는 많이 먹고 힘내서 웃으면서 싸우자”고 당부했다.

김영오 씨는 시민들을 향해 “힘을 하나로 더 크게 모아 달라”면서 “기약할 수 없는 긴 싸움이 이제 시작됐다. 이 싸움은 안전한 나라를 위한 것이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싸워 달라”고 호소했다.

“오늘 아침, 가족들과 추석 상을 나누면서 음식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유가족이 많습니다. 힘들 줄은 알았지만 막상 음식상을 대하고 보니 내 앞에, 옆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없다는 현실을 또 한 번 확인해야 했습니다.”

유경근 대변인은 아이 없이 첫 명절을 보낸 심경을 고백하면서 “앞으로 명절마다 같은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두렵지만 시민들이 함께 해 주신 것을 기억하면서 반드시 헤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하던 분들마저 유언비어를 듣고 흔들릴 때 가장 허무하다. 20-30미터 앞에 손만 뻗으면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봤던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 모든 의심은 명쾌해질 것”이라며 “특별법 제정과 진상규명 이후에 유가족들이 버틸 수 있을지 두렵다. 그때까지 함께 버텨 달라”고 부탁했다.

“아이가 자꾸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 아이 친구를 찾으면 그 아이도 볼 수 없습니다. 그 어머니가 울어서 같이 울다가 그 어머니가 하는 아이 이야기에 눈물을 닦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됐는지 서로에게 묻습니다.”

이날 광화문에서는 최성호 군 아버지가 시민들에게 쓴 편지가 낭독됐다. 건강 악화로 광화문을 찾을 수 없었던 탓에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가 대신 낭독한 편지에서 최 군의 아버지는 “우리도 이해되지 않는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달라는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진실을 찾아 주변에도 알려 달라”고 호소했다.

▲ 음식 나눔에 앞서 최성호 군 아버지가 시민들에게 전하는 편지가 낭독됐다. 일을 하고 있는 탓에 이 편지는 박성호 군의 어머니가 대신 낭독했다. ⓒ강한 기자

그는 편지에서 “아이를 잃고 보니 세상 모든 아이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저 아이와 부모는 우리와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던 그것은 국가가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유가족이 된 우리는 단지 왜 자식의 죽음을 구경만 하게 했는지 묻고 있는 것”이라며 세월호 특별법의 의미를 알아 달라고 했다.

또 “잔인한 4월의 그날,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며 가슴 먹먹했던 아픔을 느꼈다면 조금 더 살펴봐 달라. 조금만 알려 한다면 가까운 곳에 진실을 알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면서 “우리의 외침이 자식 잃은 이들의 애달픔임을 안다면 함께 외치고 알려 달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인 동조 단식 농성에 참여하며 행사를 지켜 본 김명준 감독(영화 우리학교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1945년 해방직후, 징용 당했던 한국인들이 탑승했던 배 우키시마호가 원인모를 폭발로 침몰한 사건이 생각난다고 했다. 우키시마호는 일본의 오미나토 항에서 출발해 부산항으로 향하던 배였다. 김 감독은 “그러나 그것은 남의 정부가 관련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정부가 과연 우리의 나라이고 정부인지 의심스럽다”면서 “이 사건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 같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의 싸움은 보통의 싸움이 아니라 100년이 걸려도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둔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날 광화문 잔치에는 많은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도 동참했다. 거리에서 만난 성가소비녀회 수도자들은 행사 소식을 듣고 유가족들을 응원하고 싶어 광화문을 찾았다면서 브라질 해방신학의 실천가였던 “카마라 대주교의 말씀 중에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을 믿고 있다. 잊지 않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희망하고 현실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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