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 가족들 한 자리에 모여 미사봉헌하고 이야기 나눠

 

쪼란히 아이들이 제단 앞에 둘러앉은 가운데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이날 미사는 김병상 신부가 주례하였으며, 황상근 신부등 원로신부들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20만 명이 조문을 다녀갔다는 지난 2월 18일 명동성당 구내에서는 아주 특별한 미사가 봉헌되었다. 오후 5시경 미리 조문을 마친 사제들이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교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인권회복과 민주화,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함께 한 동지들과 유족들의 뜻을 모와' 70년대 이후에 김수환 추기경과 여러모로 각별한 관계를 맺어왔던 사제, 평신도, 시민들이 추도미사를 봉헌한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이날 미사는 장소가 좁아서 아이들은 제대 위에 올라앉고, 일부 참석자들은 찬 바닥에 앉은 채 김 추기경을 회상하며 기도하였다. 사회를 맡은 나승구 신부(서울대교구, 신월동 성당)는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성탄절이면 찾아가 미사를 봉헌하던 곳이 이렇게 누추한 곳이었으며 바닥에 앉아서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김병상 신부(인천교구)가 주례한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박형규 목사는 민주화운동의 원로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여, "그분이 평소처럼 지긋이 웃으면서 여기 계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켜보고 잇을 것"이라고 입을 떼었다. 박 목사는 "암울한 유신 시절에 지학순 주교의 소개로  추기경을 만나게 되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새벽녁에 살금살금 와서 흉금을 털어놓곤 했던" "형님 같은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분은 권위 있는 자리에 계시면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평민의 한 사람으로 살았다"면서 오직 "민주화와 사회정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신 추기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분"이라고 말했다. 

신자들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가진 것을 내놓고 낮은 곳으로 임하여 가난의 영성을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였으며, 미사를 마친 뒤에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참석하여, 1971년에 평화시장의 13살, 14살 먹은 연소근로자들을 위해 위안잔치를 열어준 것을 기억하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하였다.   

이소선 여사가 평화시장 근로자들, 인혁당 사건 관련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가 도움말을 덧붙이고 있다. 
  

김정남씨는 추기경이 "필부로 살면서 자식낳아 다복하게 사는것"을 평생 소원하였다고 술회하면서,. 양푼에 밥을 비벼 신자들과 나눠먹던 소박한 추기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김정남씨에 따르면, 추기경은 은퇴 후에 운전을 배워 맘 놓고 마음껏 우리 강산 곳곳을 다니고 싶어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인간적인 분이 추기경이  된 것은 우리에게는 영광이지만 본인에게는 형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추기경은 "어려서부터 경주 석굴암 앞에 서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종교심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면서, "누구를 만나든지 편하게 해주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던 추기경은 우리 속에 살짝 왔다 간 성자였다"고 말했다. 한번은 추기경이 외국에 나가시면서 원고를 하나 대신 써 달라면서 인도 우화 한편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어느 성자가 새날이 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묻자 제자들이 동이 트면, 지나가는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자는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성자로 보일 때 새날이 온 것을 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계종 송월주 스님은 강원룡 목사,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했던 일을 떠올리며 "사회참여가 곧  복음화"라는 고인의 말을 불교에 적용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추기경은 얼굴에 비해 음성이 좋다"는 말로 좌중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한상봉/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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