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 활동가가 보는 꽃동네 방문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다. 교황의 방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였다. 마치 따스한 등불처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춰 주었다. 그러한 교황의 모습은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많은 감동을 주었다.

2014년 여름엔 두 사람이 한국 사회를 감동시켰다. 이순신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명량의 이순신의 대사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이 사랑과 장애인 사랑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작은 이들에게 냉혹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교황 방한 중 드러나지 않은 구석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교황과 절박하게 소통하려는 사람들, 장애인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장애인 현실을 교황에게 알리고 개선을 요구하려고 했다.

 ⓒ정현진 기자

교황 방한 몇 달 전, 교황이 꽃동네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꽃동네는 장애인 사회사업(사회복지와 사회사업은 다르다. 사회복지는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사회사업은 개인과 사회의 측은지심에 의해서 운영된다.) "기업"으로 불릴 만큼 문제가 많은 곳이다. 꽃동네에서 살다 나온 장애인들은 그곳이 장애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외출이 제한되고 종교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사회사업 시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장애인들의 자유의사가 무시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꽃동네 같은 사회사업 시설은 ‘장애인들은 사회통합을 못하는 존재구나’라는 것을 가톨릭 신자들에게 고정관념으로 심어 주고 있다.  

경기도 가평군에서 복지 지원금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 온 작은예수회 측이 반발하고 나섰다. 작은예수회는 가평군이 복지 지원금을 꽃동네에 혜택을 많이 주었던 것을 문제 삼았다. 마찰이 심해져서 지금까지 분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경기도와 꽃동네, 서울대교구, 청주교구는 꽃동네 편을 들어 주었고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은예수회는 바티칸으로 가서 시위도 했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 명동성당 앞에서 시위하는 장애인들 ⓒ정현진 기자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도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교황이 방한하기 며칠 전에 전장연은 꽃동네 방문을 하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를 주한 교황대사 앞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그 편지가 교황에게 전달되지 않았는지, 답은 곧 명동성당과 청주교구의 반응에서 드러났다.

전장연는 방한 하루 전 8월 13일에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명동성당 앞에서 단식 시위를 하려고 했다. 명동성당측은 단식시위를 한 장애인 활동가를 경찰을 불러 끌어냈다고 한다.

꽃동네 방문 하루 전에 전장연은 명동성당에서 부복 시위를 하기로 했다. 명동성당측은 경찰을 불러 시위를 진압했다. 명동성당의 한 관계자는 시위하는 장애인들에게 “거룩한 명동성당을 더럽히지 마라. 오늘의 잘못을 용서받고 회개하라”(출처:비마이너 기사 중에서)고 반 가톨릭적 발언을 했다고 한다.

교황이 꽃동네를 찾기 몇 시간 전, 충북 쪽 장애인 운동가들이 꽃동네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꽃동네측은 국가권력을 불러 한국 가톨릭교회의 장애인 현실을 알리려는 양심들을 탄압하고야 말았다.

서울대교구와 꽃동네, 청주교구는 왜 장애인 운동가들과 교황의 소통을 방해하려고 했었을까. 오랫동안 꽃동네식 사회사업이 가톨릭 사회복지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교회의나 서울대교구, 청주교구는 꽃동네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꽃동네 측이 교황을 만나 방문을 약속하게 만들었다. 

교황 방한 중에 꼭 가야할 곳을 생각하지 못했고, 다가가지도 않았던 주교회의와 방준위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교황 방한이 축제일 순 없었고 슬픔이고 아픔이었던 사람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교황이 낮은 곳으로 가라고 할 때, 한국가톨릭교회는 멍청하게 높은 곳만 보았다. 교황 방한 때 소통을 하려고 했으나 상처를 받았던 모든 분들에게 목덜미가 뻣뻣한 한국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사과드린다.

("예로센코"는 기고자의 필명입니다. "바실리 예로센코"는 우크라이나 출신 시각장애인으로 20세기초 동아시아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루쉰과 친했습니다. "착한 사람, 예로센코"라는 저서가 있습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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