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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프란치스코와 늑대[성 프란치스코의 길, 가난의 길 - 8]
황인수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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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18  16: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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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굽비오 광장 부근 ⓒ김선명

페루지아에서 굽비오로 가는 버스를 탔다. 끝없는 해바라기 밭 사이를 내달리던 버스가 굽비오에 도착한 때는 한낮. 뙤약볕을 받으며 광장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맞은편에 장대한 성당이 순례자들을 맞는다. 13세기 말 첫 번째 프란치스코회 출신 교황 니콜라오 4세 때 완성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다.

이렇게 큰 성당을 보면 그리스도교가 이곳의 국교였음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신자였기에 성당들도 이렇게 컸을 터. 지금은 유럽의 교회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고들 하는데 형편은 이탈리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몇 년 전에 로마 교구 신자들의 주일 미사 출석률이 10% 가량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 따로, 제 잇속 먼저 따지면서 신자입네 하는 사람들 따로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 사람들이 신앙 따로, 삶 따로 살아갈 때 홀연 나타나 사위어 가는 복음에 기름을 붓는 이들이 프란치스코와 같은 성인들이다.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자코모 신부님과 ⓒ김선명
굽비오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서 맡아 관리하고 있다. 성당에 들어가 잠깐 기도하고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제의실에서 자그마한 신부님이 한 분 나오신다. 자코모(Giacomo) 신부님.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회원이시란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대뜸 “꼬레아 델 수드, 꼬레아 델 노르드?” 하고 물으신다. 남한이냐, 북한이냐 하는 물음이다. “꼬레아 델 메짜!” 하고 웃어넘겼다. “가운데 한국에서 왔어요.”

농담으로 대답하긴 했지만 이 질문 앞에서는 언제나 씁쓸하다. 우리는 언제 이런 질문 안 듣고 살게 될까.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 5년만에 민족이 갈라져 크게 싸우고 그렇게 분단이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 웬만한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를 남과 북으로 갈린 나라로 기억하는 것이다. 분단과 전쟁으로 형제가 원수가 되었고 이제는 남과 북도 모자라 동과 서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잡아야 할 손을 뿌리치고 미움과 반목으로 살아가는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언제나 이 미움을 넘어 우리는 사랑으로 가게 될까.

성당이 있는 광장에서 굽비오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빅토리아 성당’(‘승리의 성당’이라는 뜻으로 ’승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을 줄여서 이렇게 부른다)이 나온다. 프란치스코가 사나운 늑대를 잠잠하게 하고 그와 친구가 되었던 곳이다.

   
▲ 늑대와 프란치스코의 모습을 담은 청동상 ⓒ김선명
기록에 따르면 성 프란치스코가 굽비오에 머물고 있을 때 그 부근에 몸집이 크고 사나운 늑대가 나타나 가축뿐 아니라 사람까지 잡아먹곤 하였다고 한다. 성인은 늑대에게 다가가 성호를 긋고 명했다. “이리 오너라, 내 형제 늑대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나도, 또 다른 누구도 해치지 말라.”

십자군과 전쟁 중이던 술탄에게까지 찾아가 평화를 역설했던 프란치스코가 평화의 사도라고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미움 중에 있게 되고, 평화를 말하는 사람은 싸움 가운데 처하게 된다. 나를 거스르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를 눌러 버리고 싶은 유혹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평화를 말하는 사람, 사랑을 선포하는 사람은 두 가지 적을 앞에 두게 되는데 내게 싸움을 걸어오는 상대방이라는 적과, 그에게 똑같이 대응하려는 내 안의 폭력성이 그것이다.

초지 한 가운데 있는 성당은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하다. 늑대에게 성인이 그러셨듯이 위압하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성당이다. 건물 앞쪽에는 청동상이 놓여 있는데 성인과 늑대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양이다. 늑대는 사람을 해치고 사람은 늑대를 피하는 법, 둘이 원수인 것이 세상의 상식이지만 적어도 여기에서는 친구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말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오.” (마태 5,43-44)

이 말씀 앞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는가만 나는 이 말씀을 하신 예수 자신도 이 말씀을 하기까지 깊은 고뇌를 겪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를테면 그를 원수로 여기게 하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라는 말씀이 아닐까. 그를 원수로 여기게 하는 내 안의 무언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원수가 더 이상 원수가 아니게 되는 일, 이것은 자신을 죽임으로써 원수를 받아들이는 순교와도 같다. 기실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도 그런 길이 아니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굽비오의 늑대 이야기는 프란치스코가 자기 안팎의 폭력성을 이겨내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성당 앞 대리석 판에는 “여기서 성 프란치스코가 사나운 늑대를 안정시켰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성당을 떠나 돌아오는 길, 가게 쇼윈도에는 중세 시대 갑옷 미니어처가 진열되어 있고 조용한 주택가 대문에는 ‘개 조심’ 푯말이 붙어 있다. 프란치스코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나는, 우리는 또 얼마만한 갑옷과 사나운 개로 나를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일까, 부끄러운 마음이 굽비오를 떠나는 순례자들을 따라온다.

   
▲ 승리의 성모 마리아 성당 ⓒ김선명

 
 

황인수 신부 (이냐시오)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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