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5일자 2635호 <가톨릭신문>과 1006호 <평화신문>

무엇을 위한 세미나인가

2월 4일 서울 중곡동에 위치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주교회의가 마련한 세미나가 열렸다. 이 날 주제는 ‘유엔 승인과 가톨릭교회 역할’이었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 비슷한 주제의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그 때도 그랬지만 교계신문들은 역시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가톨릭신문>은 1면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어 12면~13면 전면에 걸쳐 ‘대한민국 승인과 장면(張勉)의 역할’을 실었고, 다시 14면 전면에 ‘신앙인 장면을 말한다’를 기사화했다. <평화신문>은 3면 4단 기사에 이어 8면 전면으로 세미나 발표자 세 명의 요약본을 옮겼다.

분명히 하나만 먼저 집고 들어가자. 아무리 장면의 당시 활약이 가톨릭정신에 근거한다 할지라도 정부에 몸담은 공인이었던 그의 역할을 ‘가톨릭교회 역할’이라는 세미나 주제와 혼동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울러 장면과 가톨릭교회를 같은 값으로 여기는 의도는 무엇인가? 그것도 그의 사상을 기리는 운석연구회가 아닌 주교회의와 교계신문이 집중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에는 계속적인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채 두 달이 안 된 2008년 12월 12일에 서강대학교가 주최하고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단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와 동아일보사가 후원한 학술발표회가 있었다. 그 발표회의 주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유엔의 승인’이었으며 이는 12월 21일자 교계신문에서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과 교회>에서도 ‘정부수립 불과 5년 전 우리의 모습’으로 비평했었다. 또한 주교회의는 12월 10일자 보도자료 ‘60년전, 대한민국 UN승인에 숨은 공로자 한국가톨릭교회’를 배포한 바 있다. 발표회에 대한 교회 내외의 반응이 좋아서 갑자기 기획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주최만 서강대학교에서 주교회의로 달라지고, 학술발표회가 세미나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이상한 행사가 이번 세미나였다. 따지고 보면 비슷하다기보다는 조금 더 교회의 의도를 집중한 것이다.

한국교회에 필요한 세미나는 무엇인가

이왕지사 벌어진 일에 대해서 옛 성현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고 했으나 <언론과 교회>는 논어가 아니니 좀 더 잣대를 들이대자. 학술회의 때 제4발표자였던 허동현 경희대교수는 당시 “대한민국 승인을 위한 수석대표 장면의 활동”을 주제로 발표하였고, 이번 세미나에서는 제1발표자로 나와 동일한 논문제목과 내용을 소개하였다. 내용이 겹쳐지는 허 교수의 발표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장면의 아호를 딴 운석연구회의 총무간사이기도 하기에 장면에 대한 많은 연구와 발표의 소임을 앞으로도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에게 같은 내용의 발표를 하게 만든, 좋든 싫든 장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반복된 자료를 듣게 만든 주최자의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진정 그런 세미나가 필요했다면 다양한 관점의 학자들을 발표하게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두 교계신문은 허교수의 발표문 제목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였지만 주교회의는 1월 30일 세미나에 대한 공지를 하면서 허교수 발표문을 “제3차 유엔총회 파견 수석대표 장면의 건국활동”으로 소개 하였다. 정보혼선이었는지 학술회의 때와 같은 내용이 겹쳐지는 것을 의식해서 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교계신문을 유심히 보지 않기는 직책의 상하구분 없이 어지간한 모양이다. 앞에서 말한 학술발표회 때 허교수는 장면에 대한 평소 그의 지론을 발표했으며, 이를 <평화신문>은 당시 12월 21일자 8면에 요약 정리한 바 있다. 그때 열심히 보았으면 된 것이지 굳이 같은 내용을 중곡동 천주교중앙협의회 건물로 옮겨서까지 다짐하듯이 들어야 할 필요는 무엇인가?

더욱이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학술발표회 때 축사를 통해 “유엔 승인 이끈 장면박사 신앙”을 이야기하였다.(평화신문 12월 21일자 8면 참조). 강주교는 이번에도 개회사를 했다. 그렇다면 이번 세미나는 같은 내용과 말이 장소이동을 한 리바이벌 마당이었던가? 물론 세미나가 허교수의 발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진천신부의 "천주교회의 대한민국 유엔 승인에 대한 인식과 기여"에 이어 장익 주교의 "가족의 기억"이 이어졌지만, 교계신문이 주목한 것은 오직 하나 장면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해방 후 정치 외교적 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주교회의로서는 현직 주교단의 일원인 장익 주교의 선친에 대한 것이기도 하기에 꾸준한 사료 발굴과 함께 훌륭한 업적을 홍보해야 함을 십분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의 수록대상자이다. 장면의 불행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지워져 있는 멍에이자 아픔이다. 주교회의가 주최하고 교회기관지인 <경향잡지>가 주관하기에 진정 합당한 세미나 혹은 학술발표회는 무엇일까? 경술국치 100주년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김유철/경남민언련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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