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마더 데레사의 편지, 윌리엄 리에드 감독, 2014년작, 8월 21일 개봉예정

몇 주 전, 한 방송을 통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4039시간의 봉사활동을 한 고등학생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는 많은 방청객 앞에서 양로원 목욕 봉사, 독거노인과 장애인 방문 봉사, 쓰레기 분리수거 등 어린 나이에 하기 쉽지 않은 일들을 해 온 자신의 경험을 차분히 설명했는데, 편안함과 자신감으로 충만해 보이는 그 고등학생의 얼굴이 나에겐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TV나 신문 혹은 글 등을 통해서 우리는 “봉사활동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긍정적인 무엇인가로 꽉 찬 듯한 그 학생의 표정은 그 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가를 전제하지 않은 채 타인을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 혹은 나의 물질적인 것들을 헌신하는 행위는 타인에게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 봉사활동은 우리 모두를 위한 궁극의 최선이라는 것은 오늘날에는 하나의 진리처럼 보인다. 그런데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삶의 순간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험이기만 할까?

가난한 자들의 어머니

▲ 마더 데레사의 편지, 윌리엄 리에드 감독, 2014년작
봉사하는 삶을 대표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마더 데레사다. 그녀는 신분제도가 뚜렷한 인도의 가장 낮은 계급이 사는 곳,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속에 살면서 그들을 보살피고,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 친구가 되어주었으며, 자신의 삶을 전 세계의 버림 받은 사람 곁을 지키는데 바쳤던 사람이다. 우리에게 그녀는 봉사하는 삶의 표본이며 범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삶을 살아온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가 몰랐던 인간 마더 데레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념으로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하는 <마더 데레사의 편지>다. (영어 제목 : The Letters)

<마더 데레사의 편지>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녀의 선행들을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마더 데레사가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기 전에 몸담았던 로레토 수녀원에서 나와 인도 빈민가에서 삶을 시작한 무렵부터,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고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시기까지를 중심으로 그녀의 내적인 고통과 고뇌를 재구성한 영화다.

1998년 인도의 한 여성이 마더 데레사의 사진을 복부에 대고 종양을 치료한 일이 일어난다. 소식을 들은 로마 교황청은 조사관을 파견하고, 철저한 조사 끝에 이 사건을 ‘기적’으로 공식 인정한다. 그 후 교황청은 마더 데레사의 행적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하는데, 조사관으로 파견된 신부 벤자민 프라그는 마더 데레사와 긴 편지를 주고받았던, 그녀의 영적 조언자 셀레스테 반 엑셈 신부를 만나 마더 데레사의 편지를 전해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신부간의 대화와 마더 데레사의 편지를 통해 인간 마더 데레사의 또 다른 목소리, 인간적인 갈등과 절망, 믿음의 흔들림으로 인한 번민과 고뇌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인간 마더 데레사의 목소리

“주님, 저의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저를 버리십니까? 당신 사랑의 자녀인 제가 이제는 가장 미움 받는 자녀, 당신께서 원치 않아 버리시는 자녀, 사랑받지 못한 자녀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애타게 부르고 매달리며 간절히 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매달릴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어둠은 너무나 짙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입니다.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으며 저는 버림받았습니다. 사랑을 원하는 마음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듭니다.”

위의 글은 2008년에 나온 책 <마더 테레사, 나의 빛이 되어라> 중에 실린 그녀의 편지 중 일부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마더 데레사가 경험한 외로움과 고독, 영적 갈등과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이 어느 정도였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영화는 이런 편지글들을 기초로 했는데, 영화가 이 편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더라면 우리는 직접적으로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그녀의 영웅적 모습에 우리는 좀 더 쉽게 감동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더 데레사의 편지>는 쉽고 선정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고통과 그것을 이겨낸 성스러운 삶을 재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위의 편지가 보여주는 마더 데레사의 내적 상태를 매우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보여주면서 그 고통에 대한 통찰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의 편지>에는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성찰의 영화, 얼굴의 영화

이 영화에 없는 첫째는 굴곡진 사건이나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내는 극적인 이야기들이다. 이 영화는 에피소드식으로 마더 데레사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는 방식을 택한다. 그녀는 거리의 빈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소명을 깨닫고도 수녀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봉쇄 규정 때문에 몇 년 동안을 기다려야 했고, 가톨릭 수녀를 배척하는 힌두와 무슬림 커뮤니티들의 심한 반대를 겪어야 했으며, 그녀를 따라 나서는 사람이 많아지고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려는 단계에서는 가톨릭 내부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그렇게 보살펴 줌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은 사람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짐작컨대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살면 살수록 그녀는 더 깊은 어둠을 목격해야 했고, 더 넓은 어둠의 세상과 마주해야 했으리라. 그리고 그 깊고 넓은 어둠을 밝혀 줄 빛이 되기 위해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을 찾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몸을 더 열렬히 태워야 하지 않았겠는가. 자신은 하느님의 손에 쥐어진 연필에 불과하다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것으로 돌려보냈던 그녀가, 노벨 평화상 수상을 수락한 것은 끝이 없어 보이는 이 세상의 어둠에 좀 더 많은 빛을 비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 영화에 없는 두 번째는 4000시간의 봉사활동을 한 고등학생과 같은 뿌듯함과 행복함으로 가득 찬 얼굴이다. 미소를 짓고 있는 마더 데레사의 얼굴이 영화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보이는 마더 데레사의 얼굴은 강인하고, 온화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아픈 사람을 돌보고 일어 설 때, 아픈 아이를 안고 있을 때, 그녀의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뿌듯함 보다는 고통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인 고뇌의 얼굴, 수녀원 창문 너머로 굶주림에 지친 채 길바닥에 앉아 있는 한 가족을 바라보던 그 얼굴이, 바로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했던 마더 데레사의 얼굴이 아니었던가 싶다.

<마더 데레사의 편지>는 호들갑스럽고 격한 감정의 표출을 끌어내는 이야기라기보다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마더 데레사를 보여주려는 영화다. 이 영화가 우리가 몰랐던 마더 데레사의 또 다른 면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영국 배우 줄리엣 스티븐슨 덕분이라고 해도 넘침이 없다. 동시에 이 영화는, 마더 데레사가 경험했던 외로움, 버림받은 느낌, 신에 대한 의심 등 그녀를 괴롭혔던 모든 어둠은 어디서 왔는지, 마더 데레사가 그 어둠의 고통 속에서 가난한 자들을 떠나지 않은 것은 또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동시에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어둠의 성녀, 마더 데레사

영화는 마더 데레사의 행적을 조사한 신부 벤자민 프라그의 입을 빌어 깊은 어둠의 힘을 경험하면서도 신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자신이 소명이라 믿었던 삶을 끝까지 살았던 마더 데레사의 성스러움을 주장한다. 이 영화는 그녀의 성인적 면모는 그녀의 인간적인 면에서 싹튼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마더 데레사의 편지>는 그녀가 인간의 모든 것을 초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든 번민과 갈등을 내면에 품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이 알고 있었지만, 빛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에 그녀의 성인적 면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과 범인 그것은 따로 떨어진 곳이 아니라 한 곳에 그 씨앗을 두고 있는 셈이다.

감독 윌리엄 리에드는 9/11 사태 이후 세상의 ‘악’의 반대인 ‘선’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다가, 진정한 ‘선’을 표방하는 인물로서 마더 데레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십여 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영화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더 데레사의 편지>가 보여주는 그 진정한 ‘선’이란 과연 무엇일까?

감독의 생각처럼 마더 데레사가 ‘선’을 표방하는 인물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발견하는 진정한 ‘선’이란 하나의 완성된 결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멈추지 않는 과정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빛이 어둠 밖이 아니라 어둠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빛일 수 있듯이, ‘악’에 둘러 싸여서도 멈추지 않는 갈구와 그것을 향한 움직임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말이다.

“만일 제가 성녀가 된다면 분명 ‘어둠의 성녀’일 것입니다. 언제나 어둠에 빛을 밝히러 세상에 내려가 있을 테니 천국에는 없을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
 

 
 
성진수 (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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