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자 김근수와 한상봉 주필 대담

교황이 오기 하루 전, 13일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주필이 만났다. 두 사람의 대담으로 신학자의 태도와 교황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 그리고 이번 교황 방한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 등을 살펴본다. 김근수 씨는 <교황과 나―개혁가 프란치스코와 한국>의 저자이기도 하다. 

▲ 대담 중인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오른쪽)와 한상봉 주필 ⓒ배선영 기자

이론과 현실을 중재하는 신학, 교황의 방법론

한상봉 :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1980년대까지 신학을 공부하던 사람 사이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 중 하나가 ‘doing theology’ 즉, ‘신학함’이다. 실천적인 신학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신학은 어떤 대상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대한 해석이고, 현실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학 행위를 역동적으로 표현한 말이 ‘doing theology’다. 신학은 하는 것이고, 몸으로 사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자신의 경험과 환경, 역사적 상황 안에서 길어 올리는 게 살아있는 신학이다. 이것은 해방신학과도 관련이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쓴 <복음의 기쁨> 그리고 <아파레시다 문헌>을 최종 편집할 때도 이런 관점에서 작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멀게는 <사목헌장>도 현실에 대한 이해와 복음적 성찰을 통해 사목적 과제로 설정하는 단계를 밟아왔다.

김근수 : 구스타보 구티에레즈의 <해방신학>을 보면 신학을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와 있다. 하나는, 초대교회 때는 신학이 곧 영성이었다.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을 내면화하는 영성을 곧 신학이라고 번역했다. 나머지 하나는, 중세부터 프랑스 혁명 전까지 교리를 해석하고,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해명하는 호교론적 변증신학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로 추가된 게 사회비판적 행위로 본 신학이다. 신학을 사회비판이라고 보는 건 새로운 현상이다. 예전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가체제를 담당했기 때문에 사회비판을 못했으나 프랑스 혁명 이후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일이 생겼다. 이게 해방신학의 관점이다. 여기서 교회도 비판되어야 할 사회의 한 부분에 포함된다.

신학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신학자가 먼저 살고, 사는 걸 또한 반성하는 것이다. 근데 어느 시점에 가더라도 반성하는 판단 기준이 없으면 계속 비판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신학에서 체험과 이론은 같이 상승한다. 예전에는 이론을 많이 알수록 경험이 줄어들고 경험이 많을수록 이론이 압박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경험이 많을수록 이론이 밝아지고 이론을 많이 알수록 경험도 투명해진다고 믿는다. 같이 상승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리스도교에서 사랑과 정의의 관계도 그렇게 오해했다. 사랑을 강조하면 정의에 관심이 적고, 정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 사랑에 관심이 적다고 봤다. 그게 아니다. 사랑을 강조할수록 정의에 대한 감각도 커지고, 정의에 대한 감각이 커지면 사랑에 대한 감각이 커진다. 이제 신학 논리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사랑과 정의가 다툰다든지 이론과 경험이 싸운다든지 하는 불필요한 곤경에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칼 라너는 행동하는 신학자였다. 어느 누구도 100퍼센트 이론 0퍼센트 경험, 100퍼센트 경험 0퍼센트 이론만 할 수 없다. 이론과 경험을 쓸데없이 왜 경쟁자로 두는지 의문이다.

이론이 강하면 자연히 경험하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경험이 많으면 이 경험을 판가름하고 구분하고 싶은 판단기준을 갖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경쟁 관계로 놓은 게 잘못이다. 책상머리 신학자라고 비꼬는 말이 있는데, 이들 역시 도서관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현장에 가 있다. 현장에 가 있는 사람도 마음은 도서관에 가서 경험을 점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해방신학은 이론과 체험이 동반 상승한다고 강조한다. 이론이 강하니까 저 사람은 현장을 무시한다, 또는 저 사람은 현장에만 있어서 이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생각이 문제다.

책상머리 신학에서 실효성 있는 신학으로

▲ 한상봉 주필
한상봉 :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학자들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보면, 대체로 실효성 없는 신학을 비판한다. 그것을 명명할 때 ‘책상머리 신학’이라 한다. 즉 자기들 세계에서만 이해되고 납득할 수 있는 신학을 탐구할 뿐, 일반 대중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리된 이론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교황은 신학자들이 현실세계에 대해서 적극 해석하고 이해하고 명확한 복음적 준거점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전에 강우일 주교도 “한국 교회 신학자 중에 현실 문제에 대해 해석하고 나름대로 제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신 적이 있다. 실천(경험)과 이론을 분리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론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켜 사는 것이다. 공부는 공부대로 하고, 공부한 것이 자신의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과 삶이 다른 게 큰 문제다.

김근수 : 이 격차는 일반 신도든 신학자든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론과 실천의 격차는 누구에게나 있고, 이걸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신앙이 아닐까. 신학적 이론과 현실을 중재하는 데탕트 역할이 중요하다. 칼 라너는 글을 현실에 대응하는 걸로 썼다. 본인이 따로 쓴 게 없다. 3000편의 글을 보면 어떤 책에 대한 서평, 본당에서 나오는 문제에 대한 해설 등 끊임없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신학적 응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라너의 신학은 학문적인 신학 같지만 가장 현실적인 신학이다. 라너는 “가장 학문적인 신학이 가장 실천적인 신학”이라고 했다.

이런 모습을 교황에게서 보고 싶다. 교황도 데탕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론과 현실을 중재하는 역할에 라너가 서있었다면 교황도 마찬가지다. 예수회 회원들이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찾는다’와 ‘내 노력 없이 무한한 자비를 얻는다’고 말할 때, 이 두 가지 이냐시오 피정의 원리를 데탕트하는 분이 예수회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는 건 일상과 교회 밖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낀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우리의 업적이나 노력 없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황이 자신의 문장으로 ‘자비로이 부르시니’를 택한 맥락과 같다.

한상봉 : 두 번째 지적과 연관해서 생각나는 게 헨리 나웬이 한 말이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나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는 사랑은 모두 두 번째 사랑이다. 첫 번째 사랑은 그분이 나를 먼저 사랑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이심을 버리시고 사람이 되셨듯이 그분이 나를 먼저 사랑했던 첫 번째 사랑 때문에 내가 두 번째 사랑을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사랑은 무상적 사랑, 무상적 은총, 값없이 사랑하는 것, 내 노력 없이 사랑받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게 있어야 우리의 이타적 사랑이 가능하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은 이것을 “그분께서 나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셨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이런 그분의 눈길에 접속되어야 세상에 대한 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김근수 : 칼 라너가 한 말 가운데 “하느님이 먼저 우리에게 손길을 건네고 먼저 당신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셨다”라는 표현이 있다.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고 설명하고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부모님의 사랑을 먼저 받는다. 사랑을 받은 게 먼저고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러면서 내가 자녀를 낳고 사랑을 하듯이 내가 남에게 하는 사랑은 결국 두 번째 사랑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체험하면 할수록 우리는 남을 향한 두 번째 사랑을 비로소 건넬 수 있다. 그것이 지금 교황님의 자비에 대한 체험, 라너가 말한 ‘하느님이 먼저 인간에게 당신을 소개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일단 내가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이 남에게 열리는 수준이 결정된다.

권위주의와 질서에서 영성으로

한상봉 : 역대 교황들의 성격을 보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로마 중심적인 권위주의와 대형집회를 좋아했다. 거기에서 멋있고 강력하게 발언하면서 대중 장악력을 높였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확고하게 보여주는 힘으로 교회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어쩔 수 없는 학자였다. 학자의 특징은 시시비비를 가린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재위 기간 동안 라칭거 추기경으로서 20여 년을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봉직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을 도맡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런 자리에는 적합한 사람일 수 있으나 리더로서의 교황직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교황직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다.

요한 23세 교황의 표현에 따르면 교황은 ‘착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근데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목자라기보다는 교황이면서도 계속 참모 역할을 했다. 계속 시시비비를 가리고 엄청난 분량의 책을 집필하면서 이성, 합리적 사고, 시시비비에 집중을 했던 것 같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이성을 강조하다 보면 사람들을 품어내는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인기를 얻을 수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요한 바오로 2세처럼 권위로 차고 나가는 힘도 없고, 그렇다 보니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문제와 바티리크스(교황청의 고위 성직자 간의 다툼 등 추문이 폭로된 사건―편집자 주) 사건이 터져도 감당하지 못했다. 사목자적 기질이 부족해서 이런 문제들을 끌어안기에 버거웠을 거다.

▲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 씨
김근수 :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교황 이전에 본당 사목을 한 일이 거의 없다. 그 문제보다 1968년에 왜 베네딕토 16세 교황, 즉 라칭거가 자신의 노선을 바꾸었는지에 관심이 간다. 한스 큉이나 칼 라너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자였던 라칭거는 1968년에 유럽의 68학생혁명을 경험하였고, 같은 해에 중남미에서는 해방신학을 열어 준 교회사적 사건인 메데인 주교회의가 열렸다.

이때 라칭거는 이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무질서한 좌파 쪽으로 흐르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당시 라칭거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와 라칭거의 신학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없다”든가, 교수들더러 가르치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든가, 하는 혼란이 있었다. 30대 중반의 젊은 교수였던 라칭거가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교실에 와서 수모를 주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교수직을 그만두고 가버렸다. 그런 라칭거를 보고 68혁명과 메데인 주교회의를 보면서 두려웠던 우파 인사들이 자신들을 대변할 사람으로 라칭거를 지목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특별히 라칭거의 학문에 매료되어 라칭거는 신학교수에서 일약 추기경으로 발탁되는 데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평범한 신부에서 독일 뮌헨교구 대주교로 임명되고 추기경으로 고속승진했다. 유럽 교회에서 이걸 보고 놀랐다. ‘이제 라칭거 시대다. 저 사람이 언젠가는 교황이 되든가, 신앙교리성 장관이 된다’고 생각했다.

한상봉 : 라칭거는 68혁명을 겪으면서 느낀 게, 교회와 사회의 무질서를 질서로 재편해야 하고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중국에서 문화혁명(1966~1976) 당시 홍위병들이 했던 걸 생각하면 비슷한 위기의식을 지식인으로서 느꼈을 거다. 라칭거 자체가 아주 절제되고 절도 있는 질서를 존중하는 학자이고 그런 상태에서 굉장히 위기의식을 느꼈을 거고, 이 때문에 질서를 세우는 방향으로 교회를 끌고 갔다.

김근수 : 라칭거는 해방신학을 가톨릭의 최대의 적으로 본 것이다. 독일에 ‘질서가 무너지느니 차라리 전쟁을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톨릭계의 질서가 무너지느니 해방신학과 전쟁을 하는 게 낫다’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한상봉 : 라칭거의 그런 면모들이 현대사회의 쏟아져 나오는 교회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권위, 베네딕토 16세의 이성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영성이 중요한 가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은 신학적이거나 사회분석적 측면보다 매우 영성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교회와 이 세상과의 관계를 영성적으로 해석했다. 이런 방법론을 사용했던 게 교부들이다. 교부들의 사상은 복음서를 설교하면서 현실의 문제를 해명하는 작업을 했던 거다.

지금 교황도 복음서와 이 세상 중간에 서서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이걸 영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권위와 이성이 시대를 넘어 영성의 시대로 이어져 오는 것인데, 시대적 조류로 봤을 때 이런 변화는 적절하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교황이 자신의 이름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교황이 시대의 징표에 적절히 응답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하면 영성 밖에 안 남는다.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분께 봉헌된 자다. 모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다’라는 관점에 서게 되면 해방된 자의식을 갖게 된다. 해방된 자의식에서 사물을 보게 되면 지금 교황과 같은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저 사람 왜 저렇게 큰 차를 타고 다니지? 그게 저 사람을 구속할 텐데.’ 많이 가질수록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대에 적절하게 다가오는 교황이 아닌가. 그래서 새삼스럽게 ‘교황’이란 말 대신에 ‘교종’이란 호칭을 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배선영 기자

오염된 영성, 개인 신심 위주
진보세력, 영성적 기초 부족해

김근수 : 요한 바오로 2세를 권위라는 키워드, 베네딕토 16세를 이성, 지금 교황을 영성으로 표현하는 게 재밌다. <복음의 기쁨>은 영성서적 같기도 하고 비판서적 같기도 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영성에 바탕을 둔 개혁 또는 해방의 영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영성이라는 단어가 오염됐다. 영성 하면 곧 개인의 신심이라고 오해됐다.

그게 아니라 정말 영성에 깊이 뿌리박을수록 자연스럽게 사회개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영성과 실천은 적수가 아니고 동반자다. 영성이 깊어질수록 교회비판과 사회비판이 더 강해진다.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동안 영성은 사회에 문 닫고, 교회의 잘못된 것도 참아내는 것으로 오해되었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성은 개인 신심에 갇히는 게 아니라 영성에 기초를 두어서 사회와 교회비판으로 나가는 기초라고 생각한다.

한상봉 : 영성을 개인신심에 가두는 태도를 ‘영성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느님과 접속함으로서 그분에 대한 체험을 하는 게 가능하고, 그걸 영성이라고 본다면, 그 다음에 당연히 하느님의 자비를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실현하는 거다. 그게 사회적 투신으로 나타난다. 이게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이걸 개인적 차원에서 묶어두는 게 영성화고, 교황은 그것을 계속 잘못된 인식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경우에는 나주의 성모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교황은 이런 사적 계시를 문제 삼고 있다. 나주 성모 신심은 신앙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결과다.

김근수 : 예수의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교황이 <복음의 기쁨>에서 쓰는 논리가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에 나오는 형식과 비슷하다. 예수가 맨 먼저 아버지의 자비를 충분히 깨닫고 느낀 시간이 30여 년이 걸렸다. 그리고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면서 말하자면 종교비판, 사회비판을 한 건데, 먼저 하느님의 영성과 자비를 깨닫는 게 1번이고, 2번이 종교 · 사회비판이다. 이 방법적 순서가 <복음의 기쁨>에서 그대로 관철된다. 우리가 그동안 영성 없이 비판한 것도 있고, 영성은 있지만 비판은 안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게 아니다. 영성이 깊어질수록 비판이 온다. 교황이 하는 영성에 기반을 둔 비판이 원래 예수가 하던 거다.

한상봉 : 영성적 기초 위에서 비판하는 것을, 이른바 반대 측면에 있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한다. 영성에 기초하지 않은 비판은 사람들이 듣다가 만다. 굉장히 불편해 한다. 그런데 영성에 기초한 비판은 부정하기가 어렵다.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데 저 사람을 밀어낼 순 없고, 너무 매력적이다. 그리고 사실 맞는 거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무작정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처럼 영성에 기초한 비판적 메시지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기존 관념에 대한 균열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강력한 힘이다.

그런데 진보적인 세력이 가장 못하는 게 또한 이것이다. 비판은 하나 영적인 기반이 부족하다. 그래서 어느 이상 못 나간다. 대중에게 어느 이상 설득력을 못 갖는다. 여기서 영성의 회복을 통한 사회적인 투신의 효시를 보여준 분이 교황일 수 있겠다. 이철수 선생이 부탁하길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교황처럼 말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신자유주의 경제를 비판하는데 교황처럼 하면 함부로 거부 못한다. 우리가 비판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다. 심약한 대중들에게 너무 상처 주는 방식이다. 부드럽고 영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비판으로 하면 좋겠다.

교회비판 없는 사회비판은 진정성 의심 받을 수 있어

김근수 : 그리스도가 인류에 준 가장 큰 선물이 영성에 기반을 둔 비판이다. 그 방식을 나는 해방신학자들에게서 봤다. 처음에 남미에 갔을 때 해방신학자들이 기도도 안 하는 줄로 오해했다. 내 생에 해방신학자들처럼 기도를 진지하게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냥 기도문을 읽거나 전례를 행하는 게 아니라 고뇌에 찬 표정으로, 미사를 드려도 드라마처럼 한다. 그게 꾸미는 게 아니다. 저절로 그렇게 나온다. 이분들은 예수가 누군지, 가난한 사람들이 누군지 깨닫고 느끼니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렇게 표정이 나온다. 그래서 놀랐다. ‘정말 해방신학자들처럼 영성에 기초를 두고 그 다음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나의 모범이다’라고 느꼈다.

나는 전례주의자도 싫고 비판주의자도 싫다. 그 두 개가 같이 상승하는 게 우리에게 정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모범을 예수도, 교황도, 프란치스코도 보여줬다. 세 분 다 영성이 뛰어나고, 비판도 했다. 영성 없이 비판하는 건 반쪽짜리다. 비판만 하고 영성이 없으면 그것도 반쪽이다.

근데 우리 교회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위험은 사회비판만 하고 교회비판을 하지 않는 거다. 이건 엄청난 유혹이다. 우리 교회 진보세력의 엄청난 유혹이다. 지금 교황은 이걸 깨버렸다. 교황의 놀라운 점은 교회비판을 먼저 했다. <복음의 기쁨> 앞부분에 보면 교회가 부딪힌 위기 7항이 나온다. 이전에 어떤 교황이 회칙에서 교회비판을 먼저 하냐. 이전에는 없었다. 이 교황은 대단하다. 라칭거가 브라질 교회와 해방신학자들을 싫어한 이유가 해방신학자들의 주장이 기성 교회에 비판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해방신학은 교회론에서 마찰을 일으킨다. 그래서 교황청이 반발했다.

한상봉 : 메데인 주교회의에서도 교회비판은 없었다. 주로 이 세상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의 주제는 해방이다 등 해방신학의 기초를 메데인 주교회의에서 열어 놨다. 그런데 교황청에서 직접적으로 심문한 사람은 보프였던 것처럼 교회론이 문제가 되었다. 교황청이 보프를 심문한 이유는 그가 쓴 <교회권력과 카리스마>라는 교회론에 관한 책 때문이었다. 해방신학의 사회론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교회론을 쓰는 바람에 문제가 된 거다.

교황청에서도 가장 무서워한 게 교회론이었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도 사회운동에 일정 동참하는 사제나 수도자나 성직자들이 어려워하는 게 이것이다. 사회비판은 문제가 안 되는데 거기서 나아가서 ‘교회는? 너는 잘 살고 있나?’ 이런 질문을 하게 되면 본인도 힘들고 본인의 입지가 교구 안에서 좁아지는 걸 감당해야 한다. 안 하고 싶은 영역 중의 하나가 교회비판이다.

김근수 : 교회 입장 혹은 교회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마지노선이 있다. 사회비판 OK, 교회비판은 NO. 이 선만 어기지 않으면 사회비판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다. 근데 해방신학에서는 거꾸로 1번이 교회비판, 2번이 사회비판이다. 한국 교회의 진보세력에게 이게 아쉽다. 지금 이대로 가면 교회개혁은 쉽지 않을 거다.

한상봉 : 그분들의 입장은 우리가 교회비판을 앞세우면 그나마 하던 사회비판도 못한다는 거다. 교구 안에서 사제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결국은 이분들이 사회적으로 투신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고 보는 게 현실이다. 사제들이 효과적으로 사회에 투신하려면 제도교회의 일정한 양해와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교회비판은 차후로 미룰 수밖에 없다.

김근수 : 그런 인간적인 고뇌는 이해하지만, 해방신학의 순서와 완전 뒤집어졌다. 교회 문제에 대해 말을 안 하고 사회 문제만 이야기 하면 사회 문제에 관한 그들의 발언조차 순수성과 정당성을 사람들이 의심한다. 결국 이 사람들도 ‘교회 문제를 눈감기 위해서 사회 쪽으로 진출했구나’ 하고. 그래서 이런 입장은 정직하지 않다.

한상봉 : 남미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다르다. 거긴 전일적으로 가톨릭 국가다. 독재정권의 수장도 가톨릭 신자다. 그리고 ‘가톨릭을 수호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한다’라고 명분을 삼고 있다. 그러므로 남미에서는 사회비판과 교회비판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신앙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회비판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사회비판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종교다원 사회이고, 실제로 언론을 보면 교회개혁에 대해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오히려 교회가 사회문제에 어떻게 발언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것에 주안점을 맞춰서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교회개혁은 우리만의 문제로 취급된다. 사회 문제가 아니라 가톨릭교회 안의 문제로 제한되는 분위기가 있다. 남미와 상황이 다르다.

김근수 : 그러나 그 상황을 빌미로 교회비판을 삼가고 사회비판에 앞장서자는 태도는 정당화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사회비판을 하면 할수록 그분들 자신이 경험적으로 느낄 거다. ‘교회비판 안하면 사회비판이 먹혀들지 않는구나’라고 느낄 거다.

한상봉 : 사회적으로 투신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들, 염 추기경 발언이라든가 이런 것들 걷어내는 작업들에는 신경 쓰는 것 같다. 그 이상의 것들, 교회 구조의 변화라든가, 교회 민주화 문제 등 이런 건 언급하는 걸 어려워하는 게 사실이다.

김근수 : 그분들의 실존적 입장은 교회 내의 입지와 교회 밖의 이미지를 고려하는, 소위 집토끼도 잡고 산토끼도 잡으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 문제는 교회비판은 삼가고 사회비판은 하는 가장 큰 유혹에 빠져 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세상 보는 눈이 더 밝아지면 현재 쓰는 교회 진보세력의 작전을 파악할 것이다.

한상봉 : 가톨릭교회 내부의 적폐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문제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게 드러나면 또 한 번의 교회의 위기가 올 거다. 지금은 그걸 돌아볼 겨를이 없지만, 천천히 준비해가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김근수 : 이건 멈출 수 없다. 지금의 교황이 개혁교황이기 때문에 이 틈에 교회비판의 폭을 넓혀 놔야지 다른 교황이 들어오면 교회비판은 손도 못 댄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지금 안 하면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다. 지금 교회비판의 흐름을 놓치면 안 된다.

한상봉 : 교회개혁적 태도를 지금 기회가 주어졌을 때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잡아놔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 교황이 언제까지 교황직에 머물지 모르니 하는 말이겠다.

교황 방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태도가 관건

김근수 : 이번 교황 방한에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첫째, 첫날 교황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는데 만찬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엄청난 사인이다. 외국 정상들이 회담을 하는데 식사를 안 하는 건 상당한 모욕이다. 이걸 놓치고 있다. 엄청난 외교적 결례다. 교황으로서는 현 정부에 대한 불쾌함을 표현한 사인이다. 내가 너무 오버했는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 교황 방한의 성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발언 수위다. 유가족을 위로하지만 진상규명을 촉구하지 않을 경우 국민들이 실망할 거다. 가톨릭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짢게 생각할 거다. 교황이 청와대에서 노골적인 표시를 안 해도 간접적으로 주교들을 질책할 수 있다. ‘당신들은 세월호 참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역할을 했느냐’ 또는 ‘한국 주교들이 교회가 세월호 참사 문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정도만 해도 박근혜에게 타격이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한국 교회의 행사 치르는 능력은 세계 최고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세월호에 대한 발언 수위와 태도가 이번 방한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다. 어떻게 보면 주교회의가 교황에게 부담을 준 면이 있다. 주교회의나 방한준비위원회가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강력하게 촉구했으면 교황이 부담이 적다. 온통 짐을 교황에게 떠넘겼다. 그래서 교황이 언급 안 하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한상봉 : 그나마 강우일 주교가 12일 세월호 관련 발언을 했다. 그게 좀 도움이 되겠다.

김근수 : 세월호 진상규명에서 농성장 철거로 초점이 넘어갔다. 그러면 농성장 철거를 안 하지만 세월호 진상규명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정부가 성공한 거다. 교황이 진상규명에 관한 입장을 안 밝히면 문제가 된다. ‘진상규명’ 단어가 나와야 한다. 예를 들면 교황이 방한하든 안 하든 야당이나 천주교에서 진상규명을 요구 안 하더라도 현 정부가 진상을 밝히는 게 현 정부의 능력, 책임과 자존심에서 중요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상을 밝힌다면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을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에서 좋은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

한상봉 : 그 외에 아시아 청년대회도 있고, 시복식 있고,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도 있고, 이걸 바라보는 관전평은?

김근수 : 프란치스코 교황은 작년 브라질 청년대회 참석 후 기자회견에서 “저항하지 않는 청년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시복식의 포인트는 두 개다. 하나는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의 명예를 복권시키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현재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인정하는 효과다. 종교를 떠나서 노력하는 분들에 대한 인정이 생긴다. 그러나 광화문을 장소로 택하는 과정에서 천주교가 미리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빠졌다. 물론 뒤늦게 강우일 주교가 담화에서 사과를 청했지만.

정부도 천주교에 행사장을 내준 것에 대해서 이웃종교나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 사과나 감사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게 유감스럽다. 서소문 순교 성지 경우에도, 서소문은 조선 5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이 여러 이유로 처형된 곳인데 거기서 순교자 일부가 죽었다 하더라도 이걸 천주교 단독으로 성지로 만드는 건 욕심이다. 여러 종교가 같이 불의에 저항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게 어떤가. 천주교 단독으로 성지를 만드는 건 중단해야 한다. 정부도 허락해서는 안 되고 서울대교구도 더 이상 추진해서는 안 된다.

한상봉 :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눠 주어서 고맙다. 이번 교황 방한이 우리 국민과 신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기를 바라고, 고위성직자들에게도 자기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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