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스라엘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중동 뉴스의 대부분은 항상 전쟁이 차지한다. 학살과 보복이 반복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차되는 중동 분쟁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에 따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모든 법의 기초이다. 해를 받으면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보복하는 것이 질서의 기본이며, 정당한 보복이 사라지게 되면 강자의 ‘폭력’만이 남게 된다. 그러면 정의가 무너지게 된다는 논리이다. 성서의 ‘모세법’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기초한다.

문제는 일단 보복이 악순환의 함정에 빠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데 있다. 끝없는 보복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복법의 현실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일반적으로 보복은 더 큰 보복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우리말 속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종국에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가해이며 무엇에 대한 보복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면서,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 집단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한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보복의 악순환으로 종족이 사라진 경우도 있다 한다.

보복으로 얼룩진 중동사

중동의 어린이
지난 해 연말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공격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당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분으로 개시되었다. 하마스의 산발적인 로켓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육해공 군사 입체 작전이 약 한 달 동안 계속된 가운데 지난 1월 하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휴전 선언으로 일단락 된 전쟁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측 피해로는 6,500여 명(사망 1205명, 부상 5300명)이 숨지거나 다쳤으며, 이스라엘 쪽에서는 군인 10명과 민간인 3명이 사망해 희생자 수 대비 93배의 보복이 가해진 셈이다. 가옥, 도로, 건물, 사원 등의 피해 규모는 아예 집계조차 하지 못한 상태이고 보면, 보복의 정도가 그 도를 훌쩍 넘어섰다는 게 상식적으로 분명해 보인다.

2006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하마스 당은 집권 여당 파타흐 당을 누르고 승리한 후 팔레스타인 의회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뜻을 펼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합법적인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대화의 상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대화 상대는 국민 여론에서 멀어져가는 파타흐 당의 압바스 수반에 국한 지었다. 팔레스타인 내부에 불어 닥친 새로운 정치 질서의 변화를 외부에서는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결국 가자지구에서 사실상 유혈로 권력을 장악한 하마스는 가자를 ‘팔레스타인 혁명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것이다.

1948년 건국 이래 군사적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국가안보를 절대적 교리처럼 믿고 있는 이스라엘은 1991년 제1차 이라크전쟁 때 사담 후세인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받고는 문제해결을 위한 평화적 논의를 개시한바, 오랜 협상 끝에 오슬로 평화협정 등 정치적 성과를 이룩해냈으나, 2006년 레바논전쟁 당시 당초 목표인 헤즈볼라를 괴멸(壞滅)하지 못한 군사적 패배에 따른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자지구 내의 하마스의 점진적 세력 강화는 이스라엘로서는 위협일 뿐만 아니라, 산발적으로 날아오는 재래식 로켓포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 시민들의 공포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과 공포가 전쟁을 촉발시킬 만큼 긴박한 것이었으며, 그 대응 방식 또한 전 방위적인 공격으로 해결할 문제였느냐 하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포탄에는 눈이 없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집 지역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과 민간인을 구별하여 공격한다는 것은 아무리 정교한 타격 능력을 갖춘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피한 민간인 희생’이라지만 그건 처음부터 고려사항인 듯 보이지 않는다.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감옥’이자 장기간 경제봉쇄로 인해 전기, 수도, 의약품의 부족과 최악의 실업률 등 최소한의 인간안보(human security)조차 보장되지 않은 가자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들의 인도적 위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가자전쟁은 ‘나쁜 전쟁’이다.

전쟁과 선거

한편,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은 2월에 실시될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는 정당 간의 경쟁적인 정치 선동이 작용한 바 크다. 1984년 이래 이스라엘에서는 단 한 차례도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없었으며, 정치적 색깔을 달리하는 정당간의 연정(聯政)은 늘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여 소신 있는 정책을 펼쳐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4년간의 임기를 채운 국회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내각 해산 이후 치른 총선만 5회나 된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집권 카디마 당·노동당 연정 역시 이스라엘 내에서 하마스의 공격행위에 강력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각종 여론조사는 총선에서 두 당 모두 참패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이 틈새를 비집고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이끄는 강경 우파 리쿠드 당이 약진하고 있었다. 레바논전쟁을 패배로 이끈 후 사실상 산소 호흡기를 낀지 오래된 카디마 당의 올메르트 내각의 초강수는 명예회복을 통한 정권 유지뿐만 아니라, 총리 복귀를 꿈꾸는 현 노동당 당수이자 국방부장관인 에후드 바라크의 이해관계와 결합된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국내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으킨 대규모 학살전쟁이라는 점에서 이번 가자전쟁은 ‘정치 전쟁’이었다.

정치 전쟁은 결국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케 해 주었다. 형식적으로 재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2월 10일에 치러진 총선결과 보수 우파가 우세한 가운데 특히 극우 종교정당(약 20%)이 약진하였는데, 이는 지난 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이어진 가자전쟁으로 불어 닥친 이스라엘 사회의 보수화 바람 탓으로 분석되며, 향후 구성될 이스라엘 차기 정부 역시 더욱 빠르게 보수화 될 공산이 크다. 중도파의 카디마 당(28석)이 근소한 차이로 보수 우파의 리쿠드 당(27석)을 제치고 승리하였으나, 그 동안 연정으로 정권을 이끌던 좌파 노동당(13석)은 최악의 참패로 제4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비해 극우정당 이스라엘 베이타누 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최우선 연정 파트너로 부상한 가운데, 가자 침공 때 “하마스를 와해시켜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수는 “이스라엘 국가에 충성을 서약하지 않는 아랍계 주민들의 시민권을 박탈해야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한바 있다.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는 이스라엘 소녀


유력한 차기 수상의 정치철학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철의 여인’ 골다 메이어에 이어 30년 만에 두 번째 여성총리로 유력해진 카디마의 리브니 당수는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를 긴 안목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세련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정보국(모사드) 출신의 외무부장관으로서 그간 리더십과 정치 철학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한 후보라는 평가다. ‘평화에 관하여(about peace)’ 그가 해 온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평화정착을 위해서 ‘가자지구로부터의 무조건적인 철수’와 ‘요르단 서안 내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강조해 온 그가 가자전쟁 당시 지상군 투입 등을 강력히 주장한 사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정당한 목표를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팔레스타인 측의 믿음직스럽지 못한 반응 ― 그들은 항상 “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모두 거짓말이며, 그들은 늘 전쟁을 원한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책략일 뿐이다. ― 은 향후 전개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힘든 고비를 넘어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불과하다.

중동 질서의 미래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이 미국의 정권교체와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지금까지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밀월관계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는 가운데 시작되었는데, 이는 향후 중동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적인 선택일 공산이 높다. 오래전에 체결된 바 있는 팔레스타인의 최종지위협정(독립)이 유효한 상황에서 협상과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로서는 여전히 ‘무장단체’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확인시킴으로써, 앞으로 진행될 오바마 행정부의 대 중동정책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있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어느 정도 자신들의 계산대로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러나 미국의 백악관은 이스라엘의 이번 총선이 ‘강력한 민주주의의 신호’라고 높이 평가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누가 이스라엘의 차기 정부를 구성하건 역내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새 정부와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였으나, 이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통해 이란이나 시리아와 대화와 협상을 통한 중동문제 해결을 제창한바 있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이스라엘과 전통적인 우방으로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하마스를 포함하여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주변 국가들과 어떻게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지 낙관하기에는 이번 이스라엘의 선거결과는 너무 비관적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스라엘은 가자전쟁을 통해 분열된 내부 여론을 통합하고 이어진 총선거를 통해 확고한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려 하였으나, 총선 결과가 말해 주듯이 보수 우파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이 없는 가운데 연정을 통한 새 정부 구성은 여전히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새로운 리더십 역시 아직까지는 분열된 내부 여론을 통합하고, 미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진정한 중동 미래의 통합을 이끌어 내기에는 그 역량이 미흡하다는 평가이고 보면, 향후 이스라엘 대내외에 불어 닥칠 불안한 파고가 결코 잦아들 전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창모/건국대학교 히브리중동학과 교수·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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