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에 대하여 (마지막 회)

<복음의 기쁨> 제4장 :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


IV. 평화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대화(238-258항)

복음화에 있어서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앙의 역사 자체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인간의 충만한 발전,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사명을 수행한다.

첫째, 교회는 국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사회의 공동선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기에 교회는 국가가 보조성과 연대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의 전인적인 발전을 추구하도록 촉구한다(240항).

둘째, 신앙과 이성, 과학의 대화이다. 실증주의와 과학주의는 다른 형태를 띠는 지식의 타당성을 부정하지만 교회는 경험 과학을 통해 얻은 지식을 철학, 신학과 같은 학문과 종합할 것을 요구한다. 신앙은 이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반대로 신앙은 이성을 추구하고 신뢰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교회는 과학의 진보가 삶의 모든 단계에서 인간의 중심성과 최고 가치를 언제나 존중하기를 희망한다(242항).

셋째, 타종교와 나누는 대화이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 유다교와 맺는 지속적인 관계, 비그리스도교 신자들과의 대화, 종교 자유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포함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이 주는 메시지는 제목이 드러내는 것처럼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쁘게 지상 여정을 걸어가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4장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은 복음화가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복음화를 잘 지어진 집에 비유한다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집의 외부 골격을 튼튼히 세우는것이라면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은 내부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기초부터 튼튼히 잘 올라간 건물이라도 내부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꾸미지 않는다면 그 집은 단지 햇빛과 비만 피할 수 있는 흉측한 건물이 되고 말 것이다. 창문을 달고 장판을 깔고 살림 도구들을 집 안에 잘 마련할 때 집은 안락한 휴식의 공간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례 받은 신자의 숫자로 복음화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복음화의 참된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복음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그리스도 복음의 메시지로 얼마나 기쁨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되고 있는지’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부 개인과 어느 특정 집단이 아니라 지상 순례의 여정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 온 인류의 온전하고 통합적인 발전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다.
 

박상병 신부 (루도비코)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전의본당 주임, 대전가톨릭대 교수

이것으로 지난 5월 10일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복음의 기쁨> 학술 세미나 강의록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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