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종교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주제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예수일 것이다. 그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쉽게 묵상의 대상으로 묘사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모습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의 어머니에게 어린 아기로 안겨져 있는 예수의 모습을 들 수 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미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자의 정을 느끼게 하는 도상을 대표한다. 그러나 전에 언급했듯이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도상은 결과적으로 ‘피에타’라고 부르는 도상의 전조가 된다.

성서에서 ‘피에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이 매장되는 과정에서 추측될 뿐이다. 그러므로 도상적 기원은 ‘십자가에서 내려짐(Deposition)’, ‘애도(Lamentation)’, ‘매장(Entombment)’의 주제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예수의 시신이 내려지고 예수의 죽음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서 결국 예수는 매장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마리아가 겪는 심리적 감정 상태와 사건은 출산이후 겪은 감정과 배치(背馳)된다. (1) 아이를 세상에 내어 놓은 출산행위와 세상과의 이별을 고하는 매장이라는 결과, (2) 출산으로 인한 기쁨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바뀌고, (3) 어린 아들을 행복감으로 안았던 어머니의 품은 다시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아들을 목도함으로써 더욱 극적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명상거리로 탄생한 것이 ‘피에타’이다. 그러므로 피에타의 주체는 예수가 아니라 마리아이며 마리아를 통한 고통과 슬픔을 명상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고통은 ‘피에타’ 도상이 아니더라도 ‘십자가의 못박힘’이라는 주제 속에서 충분히 명상될 수 있었다. 이제 예수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또 다른 코드인 마리아의 고통에 대한 묵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피에타’는 중세 북유럽의 경건운동(Devotio Moderna, 또는 영적부흥운동)의 산물이었다. 이러한 명상의 목적은 인류를 위해 죽은 예수의 죽음을 마리아가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묵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무릎에,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는 성금요일의 저녁 기도와 일치되었다. 독일어의 ‘Vesperbild(Vesper 저녁기도)’는 피에타를 가리킨다.

초기 피에타의 표현은 다색의 나무 조각의 형태로 발견되는데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통과 그녀의 죽은 아들에 대한 비통함을 강조한다.<그림1>
 

이 경우 그리스도는 마리아보다 작게 그려지거나 조각되고 예수의 마르고 초라한 몸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예수의 상체는 마리아에게 안겨져 있지만 그의 머리는 받쳐져있지 않고, 시신임을 강조하기 위해 떨어뜨려져 있다. 그가 고통스럽게 죽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찢긴 상처, 피부아래의 튀어나온 갈비뼈, 오상에서 보이는 피가 그의 참혹한 죽음을 알린다. 이때 마리아는 슬픔과 고통으로 그녀의 아들을 응시한다. 이때 마리아의 응시는 중요하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고통과 슬픔, 연민을 담고 바라본다. 그리고 관찰자들은 그들을 본다. 죽은 아들과 그 아들을 쳐다보는 어머니를.

예컨대 마리아의 응시를 강조하는 피에타의 대표적인 예는 잘츠부르그 근처 수도원에서 발견된 피에타일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고딕 이미지형태를 띤 이 피에타는 삼차원의 숭배이미지로 제단위에 놓여 졌었다. <그림 2>
 

 


이러한 피에타의 이미지들은 르네상스 시대 지역적인 특색을 보이기도 한다. 북유럽의 경우 비극적인 사건의 효과를 높이거나 심리적인 부분들이 강조되어 예수의 신체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림 3, 그림 4-1, 4-2>
 

그림4


 

그림4 -1

북유럽과는 달리 이탈리아에서의 피에타는 대체적으로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도의 고통스런 육체의 사실적인 묘사를 덜 강조한다는 점이다.<그림5>

 

그림5


아마도 다른 사람의 무릎 위에 가로질러 놓여있는 성인 남자의 인체를 묘사하는데 대한 미학적인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던 탓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탈리아 르네상의 큰 관심 중에 하나가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이상적인 미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그림 6>는 비탄에 젖은 마리아이의 격한 자세와 심리적 충돌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인 평온한 마리아의 자세와 표정을 보여준다. 수직의 마리아와 수평으로 누운 예수는 구도만으로도 안정감을 보여준다.

 


단독의 피에타는 사실 ‘그리스도를 애도함(Lamentation)’이라는 큰 주제에서 파생된 것이기도 하다.<그림 7>
 


 예수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마리아 뿐 아니라 수난의 다른 목격자, 참여자들에게 깊은 연민의 감정을 갖게 한다.

또 이 상황의 목격자들 중에서 유독 마리아의 비탄이 단독의 피에타로 만들어지는 신학적 배경은 마리아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마리아는 단지 슬픈 감정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해 불변의 믿음을 다짐하는 것이다.<그림 8>

 

그림8


마리아의 고통은 이제 육신에서 영혼으로, 땅에서 하늘로, 아들에게서 구세주로, 인간의 어머니에서 신의 대속사업에 참여한 신의 어머니로 거듭나는 순간에 놓여있다. 그녀의 감정은 신앙으로 승화되었다.

피에타는 시대와 작가, 지역별 특징을 보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그림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 외에 다른 몇 가지 그림과 조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프랑스에서 그려진 피에타로서 마리아의 오른쪽과 무릎에서 지속적인 굴곡을 형성하며 그리스도의 신체가 묘사된 작품이다. 이제 마리아는 아들을 받아 안고 손을 모은다. 이것은 ‘아비뇽의 피에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림 9> 이 자세는 프랑스 미술가들이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9


두 번째로 그리스도가 땅에 쓰러져 있으면서 마리아와 주변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있거나 천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그림 10, 11>

 

그림10


셋째로 예수의 죽음을 고통스러워하면서 그녀의 가슴에는 칼이 꽂혀 있는 조각품이다.<그림 12>
 

그림12


이것은 마리아의 7가지 고통(성모 칠고七苦)<그림 13>에 대한 주제와 기존의 피에타가 혼합된 형태로 보인다. 뒤러의 그림으로 알려진 성모의 7가지 고통의 테마는 가운데 마리아가 왼쪽에서 검의 위협을 느끼면서 손을 포개고 있다. 마리아 주변에는 그녀의 고통을 가리키는 7가지 내용들이 있다.
 

그림13


넷째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론다니니 피에타이다.<그림 14, 14-1>
 

그림14-1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미완성인 채로 남겨진 것이다. 이 피에타 이전에 작업했던 것은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에 의해 부축된 예수의 모습 <그림 15>에 대한 선례가 있다.


이제 피에타는 마리아의 무릎에 안겨져 있던 이전 것과는 다른 유형을 보인다. 또 이상적 조화와 균형을 보여주었던 모습과도 다르다. 언뜻 보기에도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작품 성향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셉의 부축을 받는 피에타의 예는 <그림 16>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아예 마리아는 배제한 채 요셉과 예수만을 볼 수 있다.


‘피에타’는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행위와 사건에서 애도의 심리적 감정으로 전이되는 지점에 우리를 안내한다. 특히 이 과정은 마리아와 아들의 친숙한 관계를 조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예수의 속죄 프로그램 안에서 존재한다. 마리아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연민을 공유할 뿐 아니라 함께 구원을 가져오는 여인(co-redemptrix) 또는 구원의 협조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피에타’를 통해 우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예수를 만날 수 있고 구세주의 고통을 함께 공유할 뿐 아니라 그 너머의 희망을 본다.
 

/최정선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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