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수의 교회문화 이야기]



이야기 하나.

"교회의 병(病)은 사제의 병입니다. 쇄신 작업을 어디서 시작하든 사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성과를 볼 수 없는 것이 우리 교회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아래로부터 성장하는 교회, 하느님 백성인 교회 모두 다 좋은 말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그저 이상일 뿐입니다. 아무리 신자들이 의식이 있다 해도 신부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아요.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대부분을 사제에게 기대고 있는 현실에서 큰 부담이 되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주교님이 이런 현실을 고치셔야 하는데 신부가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는데 닥달하기는 어렵지요. 교구의 다른 부서에서 일일이 사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없구요.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사제 개인의 열성이나 개인기에 의존할 수 밖에요.

또 이런 것도 있어요. 우리 교회의 자랑이 조직적 통일성이라고 하잖아요. 전국 어느 본당에 가나 나름대로 균질화된 사제들을 만날 수 있고, 전례가 표준화되어 있는 것이요. 하지만 이것은 다른 시도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해요.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열성을 보이면 하향평준화라고 해야 하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묘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소신이 있지 않으면 대부분 주저앉게 되지요. 주저앉지 않으면 낙인을 각오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십년 이상을 버텨야 하지요. 아마 대부분의 사제들이 최소한의 사목만을 하게 되는 이유가 이런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제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야기 둘.

어떤 사제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이 분의 말씀은 제가 연재를 시작할 때 했던 말과 비슷하다. "사제들의 무기력증이 곧 신자들의 냉담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사제들이 무기력증에 빠지는 이유가 교회 구조 자체에만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는 신자 구성층이 바뀐 것도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신자들은 겉으로는 사제를 존경하는 듯 하지만 속으로나 뒤에서는 비난을 합니다. 강론대에 서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신자가 되긴 했지만 회심까지 다 한 것은 아니라서 자신들의 인생관을 바꾸고자 하면 틀림없이 저항합니다. 복음 선포를 어려워하는 것이지요. 본당 내에서 이런 도전을 받으면 쉽지 않습니다. 견디기가 쉽지 않지요."

지금부터 11년 전이다. 그 때 한국 천주교회 사제양성에 대한 실태조사를 사도좌 순시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적이 있었다. 한국 교회 구성원 대부분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실상을 압축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조사에서 "한국교회가 쇄신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주는 대상"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응답결과는 이러하였다.

사제들은 주교, 주교들은 사제, 본당수녀들은 사제, 신자들은 자신이 문제라고 답하였다. 신자들을 제외하면 서로 남 탓을 한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만 일방적으로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위계 제도, 토착문화, 신자들의 종교적 성향, 해당 사회의 수평화 정도 등이 골고루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교회의 쇄신도 이런 요소들을 골고루 고려해야 할 것이라 보게 된다.

물론 원인이 이처럼 복합적이라고 해서 사제, 수도자, 신자 개인이 쇄신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아무리 크고 두텁고 높은 댐이라 해도 붕괴는 작은 바늘 구멍에서 시작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성령이 교회 안에 계신다. 그러니 원인은 남 탓을 했을지 몰라도 해결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면 된다.

박문수/ 프란치스코,  가톨릭대학 문화영성대학원 초빙교수,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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