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래서 사랑하고..

 

그분은

그래도 사랑하시고.  

 

                                                        사진 박봉규

  

동료에게 화를 냈습니다.

꼬박 이틀을 걸려 만든 자료를 넘겨주었는데 받은 적이 없다고 모르쇠를 하는 바람에.

이유인즉은 받았으면 당연히 자기에게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제가 안줬다는 것입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으니 맥이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다행히 제가 그녀에게 준 것이 밝혀지기는 했는데 거기까지 가는데는

이미 큰소리가 오고간 뒤였고...


그런데도 그녀는 미안하다고 사과는 커녕 오히려 제 탓인 양 변명을 하는데

참,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순간 괴물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렸습니다.


문이 닫히며 당연 제 마음도 닫혀버렸지요.

그래도 혹시나 한편으로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밤늦게까지.

미안하다는 그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어서..

하지만 그녀는 끝내 그 다음날까지 오히려 더 뻣뻣하니 냉냉한 기운을 내뿜었습니다.


이미 그런 일을 몇차례 겪었던 다른 동료가

이제야 정신이 드냐고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일침을 놓더군요.

옆에서 그럴때는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지..하며 오히려 그녀 입장을 두둔해 주기도 했는데

정말 제 차례(?)가 되니 이건 뭐 뒤틀리는 심사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다고 안 볼 수도 없는 것,

씩씩거리는 불편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앉았습니다.


그분 제게 물으시더군요.

네가 생각하는 세상은 어떤 것이냐고..

저는 공평한 세상, 잘못을 하면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세상, 약자가 보호받는 세상,

자기가 맡은 일은 책임지는 세상 등등... 한참 생각나는대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분...그러시더군요

그것은 네 생각속 세상일 뿐, 내가 만든 세상은 그냥 사랑하는 거라고.

넌 네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에 살 거냐고.. 내 세상으로 들어와 살 거냐고.


그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상과 그분이 만드신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한번 그분 품으로 기어들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녀의 사과따위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뿐.

 

그녀가 자기의 잘못을 알고도 그러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녀를 대할 때면 제쪽에서 좀더 신중하고 철저해야겠다고 생각할 뿐.


오늘,

우중충.. 우산이 뒤집힐 만큼 바람 불고 비오는 오후에 도너츠 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따끈한 차와 함께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황송하다며 어색하게 웃는데 .. 그냥 그녀가 짜안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생각한 세상과 그분의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녀는 그렇게 제 스승이 된 셈이지요.


그분이 만들어 주신 세상은

오직, 사랑이라네요.


  조희선/ 시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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