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수녀의 이콘응시]

En Cristo

“지구가 아파요.”
언젠가 병들어 가는 지구가 링거를 들고 있거나 반창고를 부친 포스터를 본 적이 있다. 땅이 아픔을 호소하며 울부짖어도 관심조차 없는 땅만의 절규일 뿐이다.

땅은 생명이다.
땅은 삶이다.
땅은 존재 그 자체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주인의 두둑한 주머니 덕에 기름 값이 폭등하든 상관없이 좁은 땅에 자동차는 크기를 자랑하듯 곳곳에 즐비하고, 지금 어느 지역에서는 심한 가뭄으로 소방차가 날마다 물을 실어 나르든 상관없이 누구는 거울을 보며 양치질하면서 맑은 물을 그대로 흘려 보낸다. 오존층이 파괴되든 상관없이 공장에서는 기준치 이상의 공해물질을 뿜어내고, 강에서 물고기가 죽든 상관없이 흘려 보내는 폐수의 양은 상상을 초월해도 경제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이 관용으로 대충 눈감는다.

생명을 안고 있는 땅에게 인간은 참으로 무심하다. 그리곤 풍성한 소출을 바라는 염치없는 우리들이다.

인간과 인간이 소통되지 않는 것은 각자의 야망과 이기심, 질투의 폭을 좁힐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불화라고 하자. 그러나 정작 주기만 하는 자연에게 인간은 지나치게 무관심의 잔인함을 보인다.

물결을 다스리시는 성모.

자! 이콘을 바라보자.
이 이콘은 <물결을 다스리시는 성모>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이러한 제목이 붙었는지는 모르겠다.

물결이라는 의미가 세상의 풍파를 의미하는 것인지 예수님의 몸이 다른 이콘과는 다르게 뒤로 넘어질 듯한 위험한 모습에 성모님께서 보호하듯 받치고 있기에 그러한 제목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좀 생소한 제목이다.

처음 이 이콘을 바라보았을 때 근심 어린 성모님의 눈빛이 아기 예수님의 불안한 자세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바라볼수록 담겨 있는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이콘을 응시하며 잠시 성모님의 슬픔에 마음이 머물렀다.

시메온의 예언 때문이였을까. 무엇보다 당신 품 안에 머문 그분의 해맑음이 더욱 마음을 아리게 한 듯, 성모님의 입술은 가볍게 예수님의 볼을 스친다. 머리를 뒤로 한 채 어머니를 향해 있지만 그분의 눈길 또한 우리를 응시하고 성모님의 얼굴을 한 손으로 어루만진다. 어떠한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한 손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분의 손을 찾는 듯하다.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오신 그분은, 그 사랑 때문에 생명까지 내어놓아도 인간은 모두 그분의 곁을 떠났다.
오직 어머니만이 처참한 죽음의 아들을 품에 안으셨을 뿐.

그래서인지 성모님의 왼손은 예수님이 넘어지지 않도록 잡은 동시에 오른손은 그리스도의 고귀한 히마티온을 쥐고 계신다.

인간은 이렇게 생명의 땅과 생명이신 분을 홀대(忽待)하였다. 성모님의 눈빛에 담긴 슬픔은 바로 이러한 인간을 바라보는 측은함이 아닐까.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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