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호 변호사, ‘쌀과 농업’ 강연…‘국내 민주주의 저버린 일방 결정’ 비판

▲ 송기호 변호사
지난 29일 서울 장충단로 한살림 교육장에서 녹색당 정책위원회와 농업먹거리특별위원회 주최로 ‘쌀과 농업’에 대한 강의가 열렸다. 강사로 나선 통상전문 송기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쌀대책팀장)는 현재 정부가 쌀 수입을 자유화하려는 것을 두고 내부의 민주적인 절차가 없는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우리 농업의 미래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8일 정부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누구나 관세만 내면 쌀을 수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의 농업과 식량주권, 지역사회의 유지가 가능할까. 송기호 변호사는 “정부가 우리 관점에서의 객관적인 분석이나 점검 없이 오로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상 내년 1월 1일부터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말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선진국’ 지위로 쌀 개방시 관세율↓ 의무수입량↑ 우려

송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WTO의 제2기 규범협상(DDA, 도하개발어젠다)에서 한국이 농업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 협상에서 한국이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 지위로 쌀 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쌀 관세 감축률을 일반품목의 3분의 1로 하는 방안을 선택했을 때 5년 간 관세율 설정치의 23%를 감축해야 한다. 즉, 쌀 관세율을 510%로 정해 개방할 경우 5년 후에는 390%까지 낮아진다.

또한 현재 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 협상은 의무수입물량을 신규로 늘리도록 해, 선진국은 쌀 소비량의 3.5~4.5%를 늘려야 한다. 이는 한국의 소비량 통계로 환산했을 때 연간 23만 톤에 해당한다. 즉 지금의 의무수입물량 40만 9천 톤과 별도로 DDA에서 추가로 연간 23만 톤의 의무수입량을 늘려야 한다. 이런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관세율이 높은 것만이 안전한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송 변호사는 “관세율을 정하는 것은 세금의 문제이고, 이는 곧 국제법이나 조약의 문제가 아닌 우리 내부의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허가 없이는 쌀을 수입할 수 없다는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 관세율은 결정 후 입법예고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내년 1월 1일 시행을 위해 WTO에 쌀 관세율을 9월말에 통보하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송 변호사는 “어디에도 시행 3개월 전에 통보하란 규정은 없다”며 반박했다. ‘관세양허표의 변경 및 수정에 관한 절차’ 1항을 보면 해당 조치가 완료된 후 3개월 이내에 통지하게 되어 있다. 송 변호사는 “해당조치가 완료된 시점은 우리 내부에서 관세율이 정해지고 절차가 마무리된 후”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의 의견을 종합해서 절차와 시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내년 1월 1일 시행을 목표로 한다면 우선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고, 관세율에 대한 입법예고를 40일 전에 한다고 가정하면 11월 22일에는 해야 한다. 그리고 1월 1일로부터 3개월 이내인 3월 31일까지 WTO에 통보하면 된다.

“WTO에 통보하는 것은 우리 내부의 의사결정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부의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합의하고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현재 정부가 일방적으로 쌀 시장을 개방하려는 것은 반대해야 한다.”

▲ 정부청사앞에 뿌려진 '쌀'. 18일 오전 정부가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 전면개방을 발표한 가운데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 전국농민회총연맹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정부서울청사앞에서 쌀을 뿌리며 정부의 기습적인 발표에 항의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대책’이 가장 큰 문제…근본적 농업 대책 마련해야”

이어 그는 “정부가 관세화 선언 일정을 중단하고 쌀 관세율 공개, 관세화시 관세율 유지 대책과 의무수입물량 유지 대책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현재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 대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가 농민, 땅 그리고 식품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농업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가 농업대책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야를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농사를 지을 사람에 대한 것이다.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을 볼 때, 앞으로 우리 자연환경과 여건에 맞는 농사기술을 이어나갈 청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 농업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주체를 양성할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송 변호사는 농지개혁을 강조했다. 농사를 짓길 원하는 사람이 땅에 접근하기 쉬워야 한다. 그렇다고 땅값을 내리자는 게 아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돈 되는 재산이 아파트이듯이, 농민의 재산은 농사짓는 땅이다. 기존의 농민들이 가진 땅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감안해야 한다. 송 변호사는 국가가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싸게 임대해주는 방식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한 것은 우리 농업에 뿌리를 두고, 우리 농업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식품정책이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 구성원에게 지속적이고 안전한 먹거리를 해결해줘야 한다. 소비자 각자의 선택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지역농법에 근거한 학교급식, 유전자조작 쌀 금지 등 소가족농 농업 중심의 한국 농업을 향하는 새로운 식품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강연에 참가한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 사무국장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20년 이상 쌀만은 지켜내자며 싸워왔는데,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발표 이후 농민들의 심적 허탈감이 강하다”고 전했다. 신 씨는 지난 25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쌀 시장 개방 반대 농민집회를 하다가 농민 7명이 연행된 것과 삭발을 한 농민들,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며 지자체에 농기구를 반납한 사례 등을 언급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신씨는 “내 밥솥에 수입쌀을 담지 않겠다는 의지로 국회에 밥솥이라도 내놓아야 하나 싶다”며 “국민들이 쌀 시장 개방 반대에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