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국수집 가는 길


오랜만에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옆으로 이사하기 전에는 마른 미역 400그램을 물에 불려서 국을 끓이면 하루치 국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마른 미역 800그램을 물에 불려 국을 끓여야 겨우 하루치 국거리가 됩니다. 지난해보다 거의 곱절로 손님이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전 10시가 되려면 40분이나 남았는데 처음 보는 손님 두 분이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영등포에서 왔다고 합니다. 배가 고파서 왔다고 합니다. 영등포역 근처에서는 낮 12시가 넘어야 밥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반찬이 준비되는 데로 식사하시게 했습니다.

언제부터 노숙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두 달쯤 되었다고 합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팔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몸 하나만 믿고 품 팔아온 사람들은 늙거나 아프면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손님, 오삼 불고기 드시겠어요?"
"???"

우리 손님이 오삼 불고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오징어와 삼겹살로 불고기를 한 것이라고 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오삼 불고기를 보여드렸더니 그제야 조금 달라고 합니다.

처음 오시는 손님입니다. 몇 번을 살펴봤습니다. 노숙하는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접시에 산처럼 가득 담고 식사를 합니다. "며칠 굶으셨지요?" 물어보았더니 며칠 굶었다고 합니다. 간석동에서 사는데 일거리가 없어서 며칠을 굶고 있다가 국수집 소식을 듣고 밥 먹으러 왔다고 합니다. 아주 천천히 드시라고 부탁했습니다. 요즘은 막노동 일거리가 아예 없다고 합니다.

요즘은 손님들이 동인천역에 서울에서 오는 전철이 도착하는 시간 간격에 맞춰서 밀려옵니다. 며칠 전에 동인천 전철역 역장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러 오셨습니다. 무임승차를 한 사람들이 민들레국수집에 간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는 국수집 찾는 손님들에게 승차권 달라고 하지 않으신답니다.

식사를 하시던 손님 한 분이 시간을 좀 내 달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은 비록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밥은 먹지만 노숙자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월세를 내지만 자기 방도 있고, 막노동 일도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도와 달라고 합니다. 요즘 몇 달 동안 막노동을 나가도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달 방세도 내지 못해서 쫓겨날 위험에 처했다고 합니다.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더니 자기는 해당이 안 된다고 한답니다. 나이도 65세 미만이고, 장애도 없고, 여섯 달 동안 일을 할 수 없는 질병에도 걸리지 않았으니 해당사항이 없다고 거절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방을 비워주게 되면 노숙자가 되는데 도와 달라고 합니다. 도와 줄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손님들께 물어보았습니다. 노숙하지 않고 지내는 우리 손님들께 어떤 집에서 지내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만식 씨는 보증금 없이 월 15만 원에 여인숙에서 방 한 칸 얻어 지내고요. 종호 씨도 여인숙에서 월 13만 원에 지내고요. 수복 씨는 보증금 50만 원에 월 10원에 지내고요. 선태 씨는 보증금 30만 원에 월 6만 원에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성수 씨는 찜질방에서 지낸다고 하고요. 승범 씨는 친구 동생 집에서 돈 안내고 지낸다고 합니다.

용하 씨는 58년 개띠입니다. 장애 3급입니다. 기초생활수급자라서 한 달에 30 몇 만 원이 나온다고 합니다. 친구 집에 세 들어 사는데 한 달에 25만 원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도 눈치가 보여서 어디 싼 방이 없는지 찾아보는 중입니다.

정수 씨는 마흔여섯입니다. 술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도박에 빠진 것도 아닙니다. 찜질방 티켓을 누나가 마련해 줘서 찜질방에서 지내는데 한밤중에 다른 사람들이 컵라면 먹는 것을 보면 참 먹고 싶다고 합니다. 2월 15일까지는 찜질방 티켓이 있어서 잠자리 걱정은 없는데 이후가 문제라고 합니다. 요즘은 새벽에 막노동 일을 나가봐도 계속 허탕이라 합니다.

순의 할머니가 오늘 5천 원 벌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따끈한 캔커피 하나를 제게 줍니다.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힘들게 고물상으로 가시는 것을 조금 전에 봤습니다. 순의 할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손자에게 군대 영장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남자라면 군대 갔다 와야 하는데 하면서 군대 가고 싶어 하고요. 할머니는 손자가 이제 커서 살림을 도울 만한데 덜컥 군에 가버리면 할머니 혼자서 병든 할아버지와 손자들 데리고 어떻게 살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순의 할머니는 종이를 주워서 겨우 살아가시는데 말입니다. 쌀이 떨어지셨다고 해서 쌀을 보내드렸습니다.

마리아 할머니가 집에 엘피지 가스가 떨어졌다면서 도와 달라고 왔습니다. 며칠 전에 가스가 떨어졌는데 미안해서 참고 있다가 할 수 없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난 12월에 마리아 할머니 집에 들렀을 때 휴대용 부탄가스 렌지로 무얼 끓이고 계셔서, 왜 가스레인지를 쓰지 않는지 물어보았더니, 가스 살 돈이 없어서 그렇답니다. 한 통에 3만 몇 천 원을 하니 급한 대로 휴대용 가스를 하나씩 사다 썼던 것입니다. 12월에 엘피지 가스 하나 넣어드렸는데 벌써 가스 떨어진 지 며칠 되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많이 쓰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세수를 하려고 물을 데웠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수를 틀면 더운 물이 나오려면 보일러를 계속 가동해야 하는데 기름값 아까워 보일러 땔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추운 겨울에 어찌 사셨을까!

몇 달 만에 막노동 하루 하고 돌아오는 우리 손님이 "오늘 일 나갔다 왔어요!" 자랑을 합니다. 춥고 배고픈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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