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교전을 지켜보며

참담한 마음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다가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기사를 썼겠지만, 오늘 내가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는 무엇인지 정리를 해보고 싶다.

열쇠 말은 ‘범죄에 대한 전쟁’ 혹은 ‘테러에 대한 전쟁’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보여주는 정책과 군사행동은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 혹은 민족과 민족 간의 전쟁이 아니다.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범죄집단을 검거하기 위해 공권력이 개입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강제력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이에 저항하는 것 자체가 범죄로 인식된다. 외부적으로는 미국이 9.11 사태 이후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공격이 17일째 이어지고 있다. (사진 출처 / 로이터 동영상 갈무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핏빛 역사의 뿌리는 어디에

역사적으로 보자면 서구문명에 익숙하던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 땅에 곧 국가를 세운 것에 비해, 자기들이 살던 땅이니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믿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기회를 잃은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자기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잘 알고도 국가를 세운 유대인들이 차근차근 준비를 하며 정치와 군사 체계를 확립해 갔지만, 아랍 연맹의 도움만 바라고 세력을 규합하지 못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결국 몇 번에 걸친 전쟁의 패배로 인해 초기 주도권을 모두 잃게 된다.

비록 물리력의 대결이었지만 동등한 입장에서 만났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여기서 끝을 맺고, 점령국과 난민이라는 현재 상황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런 구조는 이스라엘 내에서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오며 ‘과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민족 공동체인가’라는 논쟁이 있을 정도이다. 현대 팔레스타인 정부는 자기들이 고대 가나안과 블레셋의 후예라고 자처하지만, 이스라엘 측에서는 이들이 오토만 터키 치하에서 유입된 아랍인이라고 보며, 결국 독립된 국가 공동체를 세울 자격이 없는 소수 난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에 있었던 전쟁으로 갑자기 정황이 뒤바뀌며 점령국이 된 이스라엘은 이제 국가 성립이라는 페이지를 덮고 ‘정상적인’ 국가로 세계무대에 나서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며 또 권리라고 생각한다. 조상들이 살던 땅에 돌아와 국가를 세운 것은 신의 뜻이고 이제 서양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벌이는 ‘테러’가 꼬리를 물었다. 행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향한 꿈은 깨어지고, 버스에 탈 때 험상궂은 인상의 아랍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하고 길거리 커피집에 앉아서도 혹시 주인 없는 가방이 없는지 두리번거려야 한다. 자살테러 때문에 자기 주위에 사상자가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와 달리 아직도 잃어버린 자기 땅과 집에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기 부모와 조부모가 살던 땅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사는 상황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 점령지역 내 정치상황은 날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지고, 경제상황은 처음부터 자원이나 산업기반이 없기 때문에 날마다 악화되어 이스라엘에 들어가 일용직으로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며, 이스라엘 군대에게 목숨을 잃은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비정규전 혹은 게릴라전술뿐이다. 이스라엘 국민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군복무를 하고, 특히 남자 병사들은 40대 중반까지, 장교들은 50대까지 예비군으로 복무하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 국민이 군인이라고 봐도 크게 잘못된 말이 아니며, 따라서 게릴라전의 대상은 군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 국민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전쟁의 승리가 불안한 일상으로 대체되고 전쟁의 패배가 테러 행위로 귀결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이스라엘 정부는 더 이상 합의를 통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일방적인 문제 해결을 시작한다.

가장 상징적인 행위는 바로 분리장벽 건설이다. 더 이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기 거주 지역을 마음대로 벗어나 이스라엘 영토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목적이고, 정해진 출입구에 군대를 주둔시켜 이스라엘 정부가 원하는 통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장벽 건설 과정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유엔이 정한 국경보다 훨씬 더 많은 점령지역 내 토지를 확보하였고, 이는 자연스러운 인구 증가에 따른 거주지 확장이라고 변명하였다. 이번에 납치 살해된 청년 세 명도 사실은 헤브론 가까이 들어가 사는 극우파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 출신 젊은이들이다.

어쨌든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식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자기들 삶의 터전에서 밀어내고 국경 밖에 나가서 살든 죽든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평소에는 일용 노동자들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스라엘에 입국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면 당장 모든 출입구를 봉쇄한다.

▲ 예루살렘 ⓒ한상봉 기자

‘테러와의 전쟁’ 정당화하는 틀, 깰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정부는 그동안 미국에 등을 떠밀려 전혀 열의 없는 평화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국경선 합의는 물론 죄수 석방 등 산처럼 쌓인 현안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서로 꼬투리를 잡아 회담을 결렬시키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유대인 청년 세 명이 납치 살해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 소년이 역시 납치 살해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극단적인 소수 범죄자들의 행위일지 모르겠으나, 사실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를 불신하고 일방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려는 단계에 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납치 살해 사건은 이런 정책을 좀 더 확실히 진행시킬 빌미를 제공해 주었을 뿐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가자 지구 안에 축적해 놓은 무기들을 처리하고, 가자 지구에서 이집트 혹은 이스라엘로 불법 침입하려고 만든 땅굴들을 찾아 파괴하며, 극단적인 테러 행위를 주도하는 하마스 지도자들을 암살하려고 한다. 이런 행위는 범죄를 처벌하고 또 미리 예방하는 행위이며, 남의 주권을 침탈하는 침략행위가 아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폭격하기 전에 목표 지점에 연락하여 민간인 대피를 종용하고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폭격한다. 그러므로 민간인 사망은 피신하지 않은 팔레스타인 사람들 탓이다.

담 속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주위에 있는 아랍 국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 특히 요즘 신문에 많이 나오는 하마스 그룹은 정권이 바뀐 이집트 정부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지하 땅굴을 통해 각종 무기와 생필품 등을 보급하던 이집트가 손을 털고 땅굴을 폐쇄했다고 한다. 시리아나 이라크는 자기 코가 석자인 상태이고, 유일한 희망은 이란인데 하마스는 이란과도 그리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단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를 통해 하마스는 무력충돌을 최대한 확대하여 이스라엘 군대가 얼마나 자기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지 전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고육지책을 써서라도 다시 외부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지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 단기적으로는 그냥 이러다 말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는 어느 정도 하마스의 세력을 잡고 싶겠지만 국제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상군이 어느 정도 테러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판단되면 휴전협상에 들어갈 것이다. 팔레스타인 정부는 뭔가 얻어내고 싶겠지만 고육지책을 언제까지나 계속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서방 국가들, 특히 외부 언론들은 현재 도덕 윤리에 호소하며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잠잠해질 것이다. 아무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불쌍해도 자기들이 나서서 책임질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도 이 상황이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어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서아시아 정치판이 미국 형님에 의해 짜이기 때문인데, 테러 집단과는 무력으로 대항해야 하고 테러를 막기 위해 예방을 위한 군사작전을 펴도 무방하다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지속되는 한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형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나 중국이 서아시아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지 모르지만 당분간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어느 한 쪽을 편들 수도 없고, 해결책도 없는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해결책은 있는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틀을 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정부가 거리낌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서방 국가들과 국제여론이 인정하는 정당한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하고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법적인 근거나 국제여론의 분위기가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동정하고 있는데, 이스라엘 정부가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지도층이 테러범들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변명을 제거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고, 팔레스타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이 쌓아온 관계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은 없다.


윤성덕
구약 · 고대근동학 박사, 서울대 · 연세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