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연중 제17주일) 마태 13,44-52

세월호 참사 100일 ‘위로와 기억의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빛이 아닌 어둠의 현실을 경험하게 합니다.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합의를 거부하는 새누리당을 보면서 저들에게 국민은 봉사의 대상이 아니라 기만과 억압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법을 어긴 사람이 법무장관, 검찰총장, 안기부장, 장관이 되는 것보다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미 법의 근간은 깨졌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조롱하는 자들이 법을 운운하는 현실이,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수많은 흰머리 소년과 소녀가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습니다.

하여튼 위로와 기억의 한 주간을 보내고, 다음 주에는 팽목항으로 향하는 십자가 순례 길에 동참하려고 합니다.

학창 시절 장래의 희망사항을 적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는 친구가 적은 희망사항을 보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래의 희망사항이 대부분 대통령, 장군,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희망과 직업이 동일시되는 답변을 보면서 혼란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지명하는 친구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장래희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비켜 갔습니다. 그러다가 한 친구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그 친구의 희망은 ‘좋은 아버지, 행복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 친구는 어떤 집에서 살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도 궁금합니다. 그 친구는 ‘좋은 아버지, 행복한 아버지’가 되어 있을까?

ⓒ김용길

오늘 선포되는 하늘 나라의 비유는 단순합니다. ‘하늘 나라는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이다. 그리고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은 자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보물과 진주를 산다’(마태 13,44-46 참조)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란 무엇일까?

복음은 숨겨진 보물이 무엇인지, 상인이 찾는 좋은 진주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숨겨진 보물이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무엇이 아니라 ‘상태’이고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는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는 어떤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찾을 수 있는 곳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인가?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청양입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인구가 삼만 이천 명 정도 되는 작은 지역입니다. 이곳에 파견되었을 때 알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지금 이곳에 파견되었을까? 내가 이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차를 타고 청양을 둘러보면 살고 있는 사람의 수가 적을 뿐 결코 작은 지역이 아닙니다. 내가 이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찾아야 하는 것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습니다. 연대를 해야 하는 사람들, 함께 보듬고 지내야 하는 생명에 대한 깊은 의식, 조금 더 깊고 넓게 확장된 자아, 만남을 통해서 주어지는 기쁨을 체험하면서, 하늘 나라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 현존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고 보면 하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체험하는 삶의 상태입니다. 하늘로 오르는 사다리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하늘을 찾지 못하면 하늘 나라는 공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땅 위를 걸으면서 하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땅 위를 걷는 사람과 만나고 그들과 어깨를 맞대고 걸으니 하늘이 느껴집니다.

하늘 나라는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 있습니다.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는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아니, 숨겨져 있던 것이 아니라 제 눈이 가려 있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좋은 아버지, 행복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 희망이라는 친구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 친구는 자신의 가정 안에서 이미 하늘 나라를 만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니 그 친구가 부럽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제품을 받고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하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알아차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대와 나눔보다 분리와 축적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교회보다 화려하고 덩치가 큰 교회를 선호하는 지금의 사회는 땅 위에서 만나야 하는 하늘 나라를 잊어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적선은 하지만 가난함을 발생시키는 구조를 변혁시키는 것은 주저하거나 심지어 비난합니다.

숨겨진 보물, 그런데 정말 숨겨져 있었을까요? 혹시 내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그곳에서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삶, 하늘 나라가 그곳에 현존합니다.


임상교 신부
(대건 안드레아)
대전교구 청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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