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 발표회, <만천유고> 등 사료비판에 관심 쏠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평화빌딩 4층에서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를 주제로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연구발표회가 열렸다.

이번 발표회에서는 윤민구 신부의 저서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 언행실록은 사기다>를 중심으로 이벽(세례자 요한, 1754~1785?)의 ‘성교요지’에 대한 사료비판이 이뤄졌다. 주제 발표는 윤민구 신부(수원교구, 손골성지 전담)가 맡았고, 토론자로 서종태 전주대학교 교수,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이 나섰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저술인 ‘성교요지’의 위작 여부가 뜨거운 관심사인 것을 보여주듯 약 100여 명의 참석자가 복도까지 가득 메운 채 세 시간가량 자리를 지켰다.

▲ 윤민구 신부
‘성교요지’는 광암 이벽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용은 이벽의 종교철학적 사유다. 텍스트로는 사언(四言)의 한시(漢詩)체로 된 한문본과 한글 언해본, <당시초선>의 한문본 ‘성교요지’가 있다. 한글 언해본은 오역과 탈락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신부는 이 연구를 시작한 직접적인 동기에 대해 “3년 전 한 세미나 자리에서 학생들이 <만천유고>를 별 고민 없이 인용하는 것을 보고 사료비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윤 신부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성교요지’의 위작(僞作) 가능성을 논했다. 하나는 용어의 문제, 다른 하나는 내용의 문제다.

먼저 용어의 문제로 ‘성교요지’에 등장하는 단어가 ‘감람’, ‘이새야’, ‘법리새’, ‘야화화’와 같은 개신교 용어라는 점과 ‘천주’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또 내용상 문제에 대해 윤민구 신부는 스물다섯 가지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중 윤 신부는 대표적으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킨 것은 노아라는 서술, 또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신한 부분에 대해 ‘헤로데 아들이 죽자 돌아오시려고 하였다’는 표현 등을 들면서, 성경 내용과 다르게 묘사됐다고 설명했다.

윤 신부는 ‘성교요지’ 외에도 ‘십계명가’, <만천유고>, ‘이벽전’, ‘유한당 언행실록’이 위작인 이유를 설명했다. ‘십계명가’는 십계명의 분류 방식이 철저히 개신교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 <만천유고>는 이 책에 들어 있는 ‘천주실의발’이 1931년 이후에 쓰인 글이라는 점에서 위작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벽전’은 내용 중 국내외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 많다는 점, ‘유한당 언행실록’은 실제로 ‘권철신은 이벽의 부인 안동 권씨의 숙부가 아닌’ 점을 들어 이 저술들은 위작이라고 평가했다.

▲ (왼쪽부터) 토론자 차기진 소장, 서종태 교수, 발표자 윤민구 신부 ⓒ조지혜 기자

주제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은 먼저 교회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성교요지’, ‘십계명가’, <만천유고>, ‘이벽전’, ‘유한당 언행실록’ 등에 대해 위작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부분을 성찰했다.

또 차 소장은 윤민구 신부의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성교요지/십계명가/만천유고/이벽전/유한당 언행실록은 사기다>라는 저서명에서 ‘사기’라는 표현을 쓴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윤 신부는 이 저술들이 단순한 위작이 아니라 책을 판매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기’라는 용어를 썼다고 했다.

두 번째 토론은 서종태 전주대 교수가 이어갔다. 서 교수는 <만천유고>에 대한 사료비판이 시기적절했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윤 신부 저서의 내용과 연구방법론을 몇 가지 지적했다. 이벽의 아들 이현모의 적자 여부에 대한 접근이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만천유고>가 판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책이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서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을 찾아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발표회에 참석한 조광 전 고려대 교수는 윤 신부의 연구에 대해, ‘성교요지’ 등이 결과론적으로는 ‘사기’지만 연구자의 견해는 엄격하게 중립성이 보장돼야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숙 영남대학교 교수는 일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던 부분을 토론의 장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발표회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 19일 오후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연구발표회가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를 주제로 열렸다. ⓒ조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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