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친구들 중에서는 드물게, 나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새벽같이 들로 바다로 나가시고 나면 아흔이 다 되신 증조할아버지와 일소 누렁이가 내 동무였다. 내 기억 속의 증조할아버지는 항상 바닷가로 향하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누렁이와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계신 모습이다. 팔순이 넘은 증조할아버지가 갓난아기였던 나를 업어다 누렁이 옆에 뉘어놓고 똥을 싸면 망개나무 잎사귀로 닦아주셨다는 이야기는 지금껏 할아버지 할머니가 증조할아버지를 떠올리실 때마다 들먹이는 레퍼토리다.

양지 바른 언덕, 증조할아버지 옆에 찰싹 붙어앉은 나는 온종일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여린 쑥도 보고, 살이 포동포동 오른 일개미들이 죽은 풍뎅이를 떠메고 가는 것도 보았다. 누렁이가 우적우적 풀 뜯어먹는 것도, 때로는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똥을 푸지직 떨구는 것도 내겐 참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나른한 봄날엔 흙냄새가 스믈스믈 코를 간질이기도 했는데 증조할아버지가 늘 쓰고 계신 털모자에서도 그 비슷한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아서 걸핏하면 할아버지 모자를 얼굴에 덮어쓰고 코를 킁킁대곤 했다.

「워낭소리」를 보는 내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 시절 유치원과 미술학원, 피아노학원에 다녔다고 말할 때, ‘나는 증조할아버지랑 소랑 같이 햇볕을 쬐었어’라고 말하는 게 어쩐지 좀 멋적고 부끄러웠다. 지금껏 내 유년 시절은 보잘 것도 고마울 것도 애써 기억할 것도 없는, 누가 물으면 왜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는지를 변명해야 했던, 그냥 그런 시간일 뿐이었다.

거동도 불편한 팔순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만큼이나 늙고 앙상한 소가 스크린에 등장하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내 눈에선 벌써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은 늙고 병든 할아버지나 소가 가엾어서도 아니고 저런 몸으로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삶의 고단함에 가슴이 아파서도 아니었다. 늙은 주인과 늙은 소, 서로를 의지해 함께 걷고 있는 그 둘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어떤 미남 미녀 배우도 이들보다 아름답진 못할 것 같았다. 그 아름다움에 가슴이 저미어 한참을 울고 나니 묘한 위안이 찾아왔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내가 부끄러워해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이었는지도.

영화 속 할아버지는 “말 못하는 짐승이라 그렇지, 나 같았으면 벌써...” 이 한 마디로 평생을 함께 해준 소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신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에게 먹일 꼴을 베어다 나르고, 간편한 사료를 마다하고 손수 쇠죽을 끓이시는 모습은 마르고 갈라진 발굽으로 비틀거리며 등짐을 져나르는 소와 꼭 닮았다. 할아버지 역시 주어진 삶에 묵묵히 순응하는, 거룩하고 착한 ‘말 못하는 짐승’ 모습 그대로셨다. 할아버지와 소는 서로가 한 몸이라는 것을, 서로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이천식천(以天食天)을 삶으로 보여주고 계셨다.

 

영화를 보고난 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까맣게 그을린 바닥과 터져나간 유리창, 유족들의 울음은 아직도 그날의 아픔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벽에 걸린 현수막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에게 깊이 의지하고 있고,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남이 아니며,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일이 과연 몇몇 사람들만의 잘못일까. 내가 불지른 게 아니라고, 내가 그 사람들을 몰아내지 않았다고 과연 나는 그 사고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날 나는 용산의 응달에서 한기가 들어 밤새 앓았다. 통증은 괴로웠지만 내 몸이 이렇게라도 그 사람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꼈다. 내게는 죽은 사람들을 되살려낼 방법도, 세상을 바꿀 힘도 없었지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고통을 겪고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일이었다. 그 아픔 가운데서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안에 숨어계실 신(神)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서로에게 할아버지이고 동시에 소다. 모르는 사이에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또 함께 죽어가고 있는 길동무다. 힘든 이의 짐을 나눠 져주고, 아픈 이를 돌봐주고, 우는 이를 달래주는 일은 사람이 타고난 자연스러운 성품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이고 공기다. 그대가 내쉰 숨을 바로 내가 들이마신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나 가깝다.

그러나 물이나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처럼 우리는 내 안에 계시는 ‘그분’을 자주 잊고 지낸다. 그래도 그분은 고삐 쥘 힘조차 없는 증조할아버지 곁을 항상 떠나지 않았던 누렁이처럼, 영화 속 할아버지와 늙은 소처럼, 결코 나를 혼자 버려두시는 법이 없다. 물이나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처럼, 고삐가 풀려도 언제나 제 발로 집에 돌아오던 누렁이처럼, 영화 속 할아버지 귀에만 들리는 워낭소리처럼 그분은 늘 온 존재를 나에게 기울이고 계실 테니까.

극장을 나오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오랫동안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운 흙길 위로 늙은 소가 할아버지를 태운 수레를 끌고 느릿느릿 걸어가던 발자국. 그리고 그 화면 위로 아련하게 울리던 워낭소리. 그것은 내가 절룩거릴 때 나를 태운 수레를 끌고 가실 분이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으로 보였다. 그래, 나는, 우리 모두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든 잊어버렸든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 만큼은 결코 변함이 없을 터이다.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날 밤 꿈을 꾸었네.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이었네.
모래 위엔 두 사람 발자국이 있었네.
하나는 내 것, 또 하나는 주님 것.
거기서 내 인생 마지막 장면을 보았네.
발자국 멈춘 그곳에서 지나온 내 삶의 길을 되돌아보았네.
그런데 종종 그 길에 오직 한 사람 발자국만 보였네.
그때는 내 인생이 제일 비참하고 슬플 때였네.
나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네.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늘 저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제게 당신이 가장 필요했을 때 거긴 한 사람 발자국 밖에 없었습니다.
왜 제가 제일 힘든 순간에 저를 버리셨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네.
"귀하고 귀한 내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고 결코 널 버리지 않았단다.
시련과 고통을 겪는 그 순간에
네가 본 그 발자국은
바로 너를 업은 내 것이란다."

'Footprints In The Sand' by Mary Stevenson in 1938

김순진/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며, 어린이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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