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 여경]

언젠가부터 내가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말과 그에 대한 믿음이다. 저 말이 은폐하는 현실, 즉 해도 절대 안 되는 사회적 조건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말은 그런 조건을 무시한 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실패의 원인을 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 말을 부정했다. 그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니었고, 저 말들과 멀어진 것은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정하는 일에는 어리석음이 따르게 마련이고, 나는 저 말의 곁에 있는 것들, 저 말이 왜곡되어 쓰이는 맥락 외의 의미들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나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 미래 개선의 의지, 노력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성과에 대한 믿음까지도 상실한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태도가 심화되었다. “해도 안 될 거야.”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나에게 무엇보다 먼저 찾아왔다. 그러다보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게 되고, 나는 꽤 오랫동안 한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세한 변화들은 있었겠지만, 크게 나아가고 물러가지도 않았다.
머물러 있음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변함없이 있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것보다도 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포기와 체념으로 인해 지키고 있는 제자리이기 때문에 반성을 하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관성적으로 하던 일을 할 뿐이고 다른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왜 노력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 ⓒ여경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김애란의 소설 <서른>(『비행운』)에 나오는 문장이다. “하얗게 된 얼굴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원가를 오가는 아이들을 보며” 화자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결국 지금 자리의 언저리에 머물 것이라는 짙은 열패감과 무력감. 이 문장만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참담한 모순된 감정을 잘 드러내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안 될 것을 알지만, 매일매일 이 감정과 싸우면서 또 애써 희망을 주입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현대의 시지푸스들이 굴려야 할 돌덩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돌 굴리기를 포기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굴려봤자 또 떨어질 거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처음에는 그에 따른 해방감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거부만 하고 있는 상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결국 이렇게 무기력만 짙어진 게 아닌가? 이제 조금 다른 삶의 태도가 필요해진다. 거부가 전부가 아닌 거부, 또 다른 긍정의 길을 마련하는 부정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돌을 굴려 가는 방향을 달리해서 나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게 크게 다르지 않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나의 몸을 내 의지대로 사용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운명과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해도 안 된다.”는 마음이 여전히 들 것이고, 처음 가보는 길이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더욱 강하게 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엔 나의 노력이 무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과 불안이 자리하고 있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시도를 머뭇거리게 한다.

식상하고 무책임한 말일 수 있지만, ‘안 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번 가져보는 건 어떨까. ‘해보아도 안 될 수 있고, 안 돼도 괜찮다.’는 생각. 그것이 “할 수 있다.”는 말보다 조금은 더 힘이 되지 않는가? 주변에 이런 말을 건네주고 실패까지도 보듬어 줄 동료들이 있다면 그 힘은 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실패의 가능성이 다분한 돌 굴리기에 동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을 착취의 뉘앙스를 벗어나 격려의 영역으로 되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해 본다. 저 말을 나에게, 나의 동료에게 채찍질이 아니라, 신뢰의 의미를 담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나의 친구들이 너무 지쳐 있을 때, “나는 기다릴 수 있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여경 (요안나)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학생.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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