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맷 리브스 감독, 2014년작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줄로만 알았더니,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였다. 전쟁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전기(電氣)’ 이야기였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묻는다. 그 어느 날 지구상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고 난 후에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에너지다. 전기 에너지 없이 인간은 단 1초라도 살 수 있는가의 문제다. 화석 에너지와 위험천만한 핵발전소 말고는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듯한, 에너지 대안이 송전탑과 핵발전소인 줄 착각하는 듯이 보이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영화를 그저 여름용 블록버스터로만 즐길 수가 없다.

에너지 자립, 가능한가?

인간은 타자를 파괴하지 않고는 도저히 ‘빛’과 ‘불’을 얻어낼 수 없는 것일까? 이 무제한적인 착취와 파괴는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꽤나 길고 화려(?)했던 전쟁 장면보다 ‘댐’에 대해 논하는 유인원들의 심각한 회의가 훨씬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인간들은 절박해.”라는 시저의 대사가 계속 맴돌기 때문이다. 전기에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절박해졌나. 전기가 없으면 바로 끝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속 빈 강정 같은 문명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과연 영화와 얼마나 다를까. 영화 속 인간들은 말한다. “유인원이 인간보다 우월해.”라고 진심으로 말한다. 빛도 불도 난방도 필요 없는 유인원을 부러워하며 ‘최후의 날’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생존자들은 1분 1초가 절박하다.

인간이 맨몸으로 추위와 암흑을 버틸 수 있는 생존 시간은 얼마나 될까? 24시간? 48시간? 무엇이 인간을 살아남게 할 수 있을까? 인간이 ‘문명’으로 ‘건설’했다는 도시는 전기만 끊기면 바로 거대한 쓰레기더미로 변하는 것을. 전기 없이는 체온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끊임없이 빼앗고 캐내가며 ‘기술’과 ‘발전’으로 얻어낸 모든 작위적 에너지는, 그 끝이 처음부터 (인간의 머리로는)예상 못할 비극을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에너지 자립, 이런 단어는 존재하지만 현재 인간은 전혀 자립적이지 않다. 아니 적어도 대한민국은 99% 이상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재생 에너지 보급 비율이 0.7%(2011년 기준)에 불과한 상황이니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단연 비교 대상조차 없는 꼴찌다. 2011년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신재생 에너지 보급 비율이 독일 10%, 프랑스 7.2%, 미국 6.1%, 일본 4.2% 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0.7%에 불과했는데, 정부의 재정지원은 점점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신 핵발전소 건설 계획에는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설계수명 30년을 넘겨 전 세계가 ‘다음 사고 예정지’로 꼽는 고리와 월성의 핵발전소를 대한민국은 오늘도 돌리고 있다. 농촌을 파괴하며 고압 송전탑을 지어 대도시로 전기를 보내는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공존만이 생존을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Dawn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4)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일대 혼란이 온다. ‘우리’라는 개념이 수시로 오락가락한다. 관객이 자신을 영화 속의 인간과 동일시할지 유인원과 동일시할지 계속해서 헷갈리니 말이다.

오히려 유인원들이 평화와 공존공생을 처절하게 모색한다. 어떻게 하면 무기 없이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양쪽이 서로의 절박함과 딜레마, 가장 원하는 것을 모두 파악해야 협상은 가능해진다. 한쪽만의 이해로는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왜 유인원들의 리더인 시저가 그렇게 고민했는지를 관객도 곧 알게 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아슬아슬하고 힘겨운 총력전이지만, 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인간들이 내심 믿었던 건 무기고였다. 그러나 생존을 ‘지속’시키는 데 무기고와 첨단 무기들은 그저 방어막 혹은 순간의 바리케이드에 불과했다. 무기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의 최대치는 거점 확보일 뿐이었다. 무기는 다만 ‘적들’을 물리치는 순간에만 필요했다. 그나마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렇다. 적들이 다 죽어 사라지고 없다면, 무기고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들의 하치장에 불과하다. 화친을 맺고 공동의 생존을 모색한다면, 무기고는 아예 폐쇄해야 할 거추장스러운 곳이 된다.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동지로 설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끊임없는 불신을 조장하는 것이 바로 무기였다. 생존의 관건은 지속가능한 미래여야 한다. 유인원 시저가 강조하는 ‘살아야 할 이유’는 세 가지다. 집(home), 가족(family), 미래(future). 셋은 연결돼 있다. 자식이 곧 미래라는 사실, 그런데 왜 그 당연한 진실이 이렇게 먹먹할까. 우리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하고는 있는 것일까?

 
반칙과 특권, 블록버스터의 운명?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지난 10일 개봉해 8일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연 흥행 1위다. 그래서 아주 심각한 논란을 일으켰다. 애초 확정됐던 개봉일인 7월16일보다 일주일 앞당긴 10일 변칙 개봉을 했기 때문이다. 당초 개봉일도 되기 전에 수익 극대화를 기록했다. 속편임에도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흥행기록을 훨씬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개봉 전부터 작품에 대한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자본과 물량을 앞세운 블록버스터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반칙과 특권과 착취인가. 이 변칙 개봉으로 인해 한국 영화 <좋은 친구들>이 9일 전국 스크린수 300여 개밖에 확보하지 못한 채 상당한 피해를 봤다. 또 작은 외화 <사보티지>는 24일로 개봉일을 변경했다.

평화와 공존을 말로 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스스로 한 약속조차 지키지 않은 이 영화가 미래와 공존을 얘기하는 것은 또 얼마나 모순인가. 인간과 유인원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 보다 우리가 영화관 밖에서 매일 치르는 일상의 사투가 훨씬 더 징그러운 요즘인 것을.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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