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수상작 <아귀>, <일등급이다>

여름이다. 블록버스터의 계절이다. 블록버스터, 한국식으로 대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큰 영화라는 뜻이다. 큰 예산을 들여, 큰 볼거리를 제공하며, 많은 관객이 보기를 바라면서 만든 영화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 영화의 스펙트럼을 길게 나열해 놓으면, 큰 영화의 반대편에 작은 영화란 것도 있다. 작은 영화는 가난하게 만든 영화를 일컫거나 짧은 영화, 즉 단편영화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우리가 관객으로서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단편영화는 상업적 목적으로 개봉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편영화가 대중과 만나는 경로는 몇몇 단편영화제나 영화과가 있는 대학이나 영화 교육 기관의 졸업 영화제 등이다.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묶어 소개해 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오래전 일이다.

이처럼 보기도 어려운 단편영화를 굳이 소개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7월 초에 막을 내린 한 단편영화제의 상영 작품들이 K통신사의 IPTV 서비스를 통해 VOD로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완성도 있고 재미있는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이 기회를 널리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편영화는 짧게는 2~3분, 길게는 30분 안팎의 상영 시간을 갖는다. 단편영화는 길이가 짧다는 것 말고도 장편 영화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먼저 수익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지 않기 때문에 장편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민감한 소재들도 자주 다루며 그 방식 또한 직설적이다.

두 번째로 단편영화는 장편 영화에 비해 개인 예술에 더욱 가깝다. 감독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장편 영화는 공동 창작의 결과물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더욱 그렇다. 이와 비교해 볼 때 단편영화는 연출가의 예술적 의지와 비전이 직접적으로 담긴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편영화는 이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 순간의 인상이 가진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단편영화가 아무 메시지 없이 찰나만을 포착해 낸다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들어진 단편영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장편 영화의 두 시간짜리 이야기에 버금가는 메시지와 감동을 관객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특징들이 바로 단편영화의 고유한 미덕이며, 이런 미덕을 찾는 것이 곧 단편영화를 보는 재미이기도 하다.

단편영화의 미덕과 재미를 잘 보여주는, 최근에 막을 내린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관객과 심사위원의 지지를 받았던 작품들 중, 두 편의 영화를 골라 여기에 소개한다.

▲ (왼쪽부터)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포스터, 단편영화 <아귀>, <일등급이다>

탐욕스런 우리의 자화상 <아귀>(송우진 연출)

앰뷸런스 안에 두 명의 남자와 간호사가 앉아 있다. 그중 한 남자가 작두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포기하고 앰뷸런스를 떠난다. 두 남자는 자해를 해서 보험금을 타려는 중이다. 간호사는 작두를 보고서야 자신이 참여한 일의 위험함을 알고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돈다발에 주저앉는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어머니를 위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곧 작두로 손가락을 자르려던 남자가 전기톱을 들고 앰뷸런스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은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이 영화의 갈등과 긴장의 온도는 19분이라는 러닝 타임 동안 한 번도 후퇴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상승해 간다. 사기 계획에서 빠지려는 간호사와 그녀를 붙잡는 사기단 남자의 작은 갈등으로부터 시작해서 액션의 클라이맥스까지, 직선으로 뻗은 일차방정식의 궤적을 그리며 분출하는 긴장의 에너지가 바로 이 영화 최고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더하여 좁은 앰뷸런스 안이라는 한정된 영화적 공간은 긴장의 에너지들을 시각적으로 응집시켜 폭발력을 배가시켜 주고, 폭우 속의 고립이라는 설정은 그 누구도 탈출 불가능해 보이는 악화되는 상황을 지옥도(地獄道)의 한 장면으로 완성해 준다.

이 영화의 제목 ‘아귀’는 ‘몸은 태산만 하고 입은 바늘구멍만 하다. 그래서 늘 굶주린다’는 불교의 아귀(餓鬼), 즉 생전에 탐욕이 많았던 사람의 죽은 영혼을 일컫는 말에서 따왔다. 제목이 상징하듯이 이 영화는 탐욕에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들이 살게 되는 생지옥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장황한 서사 없이, 액션과 서스펜스라는 말초적인 영화적 쾌락에 기대어 재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탁월한 영화다.

사람도 등급을 매길 수 있나요? <일등급이다>(이정호 연출)

제목만 보면, 과도한 공부와 성적 지상주의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싼 비용으로 요양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매 환자를 연기하는 두 노인의 이야기다.

김 노인은 같이 사는 작은 아들이 빚 때문에 집 보증금을 빼야 하는 상황임을 알고 고민한다. 그러던 중에 친구처럼 지내는 이웃의 박 노인이 환자인 척 연기를 하여 치매 일등급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자신도 치매 환자를 연기하기로 한다. 그 이후로 김 노인은 매일 박 노인을 찾아가 치매 환자 연기를 전수받는다. 그리고 대망의 등급 심사일, 김 노인은 수치스러운 순간들을 견뎌내며 일등급 판정을 받는다.

어두운 사회적 이면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유쾌하고 따뜻한 기운과, 두 할아버지가 그들이 그토록 바랐던 요양원에 갈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영웅의 해피엔딩 스토리를 이 영화가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 속 웃음들과 해피엔딩이 자존감을 포기하고 수치와 부끄러움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상황을 필요조건으로 얻은 것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아이러니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등급이다>라는 단편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여기, 두 할아버지가 성취한 해피엔딩, 즉 삶을 향한 의지와 희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 노인의 눈가에 맺힌 작은 눈물이 큰 여운을 주는 것은, 바로 그 눈물이 살기 위해 자기를 버려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삶을 이어갈 방법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영웅이 흘리는 눈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편 외에도 엑소시즘에 새로운 해석을 더한 공포영화 <12번째 보조사제>,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남자가 자신의 성격으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사건 속에 휘말리는 코미디 영화 <개진상>, 이별을 눈앞에 둔 연인을 독특한 감수성으로 표현한 <만일의 세계> 등 60여 편의 단편영화가 앞서 소개한 VOD 서비스를 통해 9월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큰 영화가 던지는 충격파 속에서 더위를 잊는 피서에만 익숙했다면, 올해는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상상력이 넘치는 단편영화들을 골라보는 재미에 빠져 보시기 바란다.
 

 
 
성진수 (시릴라)
영화연구자,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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