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국회 앞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미사 강론 전문

▲ 상지종 신부가 15일 저녁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봉헌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조지혜 기자

우리는 지금 죽음의 어둠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서 슬프고 가슴 아픈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아이들과 가족들을 하루아침에 하늘로 떠나보낸 후 이 억울한 죽음들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피눈물로 호소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는 또한 희망의 잔치이기도 합니다. 진도 앞바다 깊숙이 가라앉은 죽음의 십자가를 넘어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질기게 피어나기 시작한 350만여 명의 부활의 노래를 목청껏 함께 부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금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런 삶을 살고 계시는 세월호 가족 여러분께서, 가슴 벅찬 희망의 발걸음을 먼저 힘차게 내딛으셨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 350만여 명의 서명 용지를 국회에 엄숙하게 전달한 것입니다.

어제 아침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유가족 참여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기자회견 말미에, 유가족 여러분께서 국민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리는 사진이었습니다.

무고한 30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람들의 가슴 찢는 참회의 큰절을 받으셔야 할 유가족 여러분께서 왜 국민들에게 큰절을 올려야 합니까? 도대체 무엇이 감사할 일입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서명에 동참한 것이 과연 감사받을 일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답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가족 여러분이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으로 전국을 누비시기 전에 먼저 나서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사진을 보면서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누구를 질책하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제의 한 사람으로서 제 마음 깊숙이 밀려드는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께 달려왔습니다. 그저 함께하고픈 마음에 열 일 제치고 이렇게 왔습니다.

지난 4월 16일 이후 슬픔과 분노 가운데 우리의 현실을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진도 앞바다에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사고입니다. 사고 직후 구조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며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사람도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참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둘 미흡하나마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단 사람도 구조하지 않았습니다. 참사를 넘어 학살이라는 표현조차 지나치지 않을 상황에 우리는 직면해 있습니다. 이 상황이 과연 사람이 주인인 세상과 어울립니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에 관한 모든 것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합니다. 책임자에게는 그가 누구이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할 정부 당국은 뜨뜻미지근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가족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관심을 받으셔야 할 분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길거리를 누비는 현실이 과연 정상입니까? 뒷짐 지고 있는 관계자들을 움직이기 위한 특별법 제정 서명을 받으러 지친 몸과 마음 억지로 추슬러 온 나라를 다녀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안산에서 팽목항, 팽목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만나는 대전까지 40여 일 800킬로미터 아이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들과 누나가 십자가를 지고 걸어야 하는 오늘 이 나라에서 과연 제대로 사람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아이들이 친구가 왜 죽었는지 철저히 밝혀달라며 안산에서 국회까지 1박2일 동안 미어지는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이 나라에 진정 내일의 꿈과 희망이 있는 것입니까?

세월호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이 절망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은 더 깊은 절망으로 우리를 이끌었습니다. 누군가 이 절망의 사슬을 끊어야 했습니다. 누군가 죽음을 넘어 생명을, 무기력함을 넘어 생기를, 패배를 넘어 승리를 장엄하게 선포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바로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 여러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자본과 권력이 인간에게, 인간 생명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기심에 죽어가던 양심을 일깨워 더불어 사는 참된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거대한 바위 같은 불의한 자본과 부패한 정치권력에 짓눌려 한없이 초라하게 근근이 살아가던 작은이들이 참으로 위대한 사람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수히 많은 작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곱게 엮어 커다란 힘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350만 명이라는 기적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손수 일구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자본과 권력을 탐닉하며 이웃의 삶과 죽음에 무관심했던 불의한 이들을 회개로 이끌 것이고, 이를 통해서 더 큰 기적을 낳을 것입니다.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생명이 맘껏 꽃피는 세상, 홀로가 아니라 함께 세상이라는 더 큰 기적을 말입니다.

세월호 가족 여러분, 고맙습니다. 어둠 가득한 세상에 빛을 나누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죽음의 기운을 몰아내고 생명을 기운을 북돋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끝없는 절망을 끊어버리고 희망으로 한 걸음 나아가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세월호 가족 여러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상지종 신부
(베르나르도)
의정부교구 성소국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