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동성당에서 만난 김학일 · 이호진 · 이아름 씨, “아이가 함께 걷는 것 같다”
천주교 정평위, 단원고 교사, 시민 참여도 이어져

세월호 유가족 도보순례단이 단원고를 출발한 지 나흘째인 11일 저녁.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 순례단이 차량으로 천안 원성동성당에 도착하자 본당 주임 박지목 신부와 수원교구 현정수 신부, 본당 신자 등이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한다. 가족들을 위한 먹을거리와 약품, 무릎 보호대 등 꼼꼼히 챙긴 물품 박스를 준비한 채였다.

원성동본당에 도착한 순례단은 3일간의 순례로 벌써 다리에 탈이 나고 야윈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더 밝았다. 본당 성모상 앞에서 주모경을 바치면서 순례단은 이날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 성당 마당에서 주모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례단 ⓒ정현진 기자

원성동성당에서 만난 김웅기 군 아버지 김학일 씨는 순례 3일째부터 웅기에 대한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면서, “웅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고, 같이 걷는 것 같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어제 저녁 공세리성당에서 묵었는데, 이전에 왔던 기억이 났어요. 웅기가 그렇게 가면서 나에게 많은 것을 찾아주고 갔습니다. 순례는 아이들에 대한 보속과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끝까지 갈 겁니다.” (김학일 씨)

김학일 씨는 만나는 시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면서, 힘들 때는 시민들의 응원 댓글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님 두 분과 아름 씨가 십자가로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 같다”는 메시지였다며 “그런 응원을 들으면 바로 힘이 난다. 여전히 고통은 남아 있고 몸도 힘들지만 이렇게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에 우리 웅기와 하느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애초 순례단은 걷다가 해가 저물면 인근 성당에서 묵겠다는 계획만 밝히고 길을 떠났지만, 갑작스러운 출발에 여의치 않아, 첫날에는 인근 모텔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측이 대전교구에 도움을 청했고, 충청 지역에 접어든 10일부터는 중간 휴식과 숙소를 모두 인근 성당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 대전교구 정평위원장 박상병 신부를 비롯한 정평위원들은 순례단이 충청 지역을 벗어날 예정인 15일까지 순서를 정해 동행하며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로 했다.

순례단은 처음 출발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다며 조용히 뒤를 따르는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날부터 이틀간 순례단을 따른 이장섭 씨는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지금은 훨씬 가까워지고 대화도 하게 됐다”면서 가족들의 얼굴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 걷는 동안 일행이 점점 늘어난다. 학생을 비롯한 일반 시민, 교구 신자들과 수도자, 사제들이 속속 순례에 동참한다. ⓒ순례단

길 가면서 만난 사람들 통해 공감의 힘 느낀다

“차를 타고 가다가 순례단을 본 어느 아주머니가 뛰어와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울먹입니다. 참사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한없이 미안해하죠. 또 어떤 이는 트럭에서 갑자기 내려서는 지갑에 있던 돈을 다 털어주고 갑니다.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면서. 또 어떤 날은 의료사고로 9살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찾아와서 위로를 합니다. 그럴 때 순례 가족들은 오히려 저분이 위로를 받아야 한다면서 보듬죠. 하나같이 평범한 소시민들이고, 그런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목격하게 됐어요.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요.”

이장섭 씨는 아산만 길을 걸을 때, 가족들이 한 번도 바다를 쳐다보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힘들어하지만, 길에서 만난 사연들이 공감과 위로가 되고 있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맞이하고 공감 중에 힘을 얻는 여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순례단의 목적은 오로지 팽목항까지 무사히 갔다가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것이라면서, “이들에게는 순례를 안전하게 마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순례를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유가족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순례에 동참하고 있는 대전교구 정평위원장 박상병 신부는 마침 순례 소식을 듣고 있던 참에 도움을 청하는 연락이 왔다면서, “거리 계산을 해서 적절한 인근 본당에 도움을 청했다. 연락을 돌린 지 몇 시간 만에 모든 숙소와 휴식처가 정해졌다. 흔쾌히 허락해준 본당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함께 걸으면서 다만 기도할 뿐이라면서, “아버님들의 마음을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은 가족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3일부터 이틀간 순례에 동행할 대전교구 정평위 정춘교 사무국장은 그동안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서명이나 촛불집회 밖에 없어서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면서, “이렇게나마 동참할 수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 끝까지 함께 항상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능하신 주님, 이번 순례 길에 저희 두 몸을 바칩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는 영령들이 하루 속히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주님께서 영혼들을 움직이소서.
팽목항이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부디 저희 두 사람의 정성을 받아주시고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살펴주십시오.
그분들은 이 나라의 주인이시며 미래의 권력이셨습니다.
그분들을 외면하시면
그분들의 처지가 너무나도 딱하지 않습니까.
주님, 다시 한 번 간절히 비오니 영령들을 움직이소서.
그리하여 하루 속히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분들을 살펴주소서.”

순례단의 하루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매일 아침 순례 시작 전 바치는 기도문에는 이들이 길을 걸으며 비는 염원이 모두 들어 있다. 도 경계를 넘을 때마다 이들의 손에는 깃발이 하나씩 늘어난다. 처음 출발할 때는 “하루 빨리 가족의 품으로”라는 깃발을 들었고, 충청도로 넘어가면서는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이 하나 더 늘었다.

하지만 항상 맨 앞에 세우는 것은 실종자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게 해달라는 바람이다. 공세리, 온양, 천안, 전의, 공주를 지난 순례단은 논산 등을 거쳐 오는 16일쯤 전라도로 넘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건강 상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일정은 변경될 수 있다. 또 지난 주말부터는 단원고 교사들이 순례에 동참했다. 단원고 교사들은 매 주말마다 순례 길을 함께 걸을 예정이다.

▲ 천안 원성동성당에 도착하자 포옹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이호진 씨 ⓒ정현진 기자

▲ 김학일 씨는 다리가 불편한 탓에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성당에 들어섰지만,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눴다. ⓒ정현진 기자

“저희는 후원금을 바라지 않습니다
말 한 마디, 물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한편, 세월호 가족 순례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후원을 받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애초 순례의 목적을 후원이나 홍보가 아니라 스스로의 회심과 속죄라고 정한 만큼, 물질적인 후원이 자칫 그 뜻을 왜곡시킬까 우려한 것이다.

“도와주시려는 분들의 순수한 마음은 너무나도 잘 알고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버지들의 순수한 사랑이 왜곡될까 걱정돼 후원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최고의 후원은 관심과 격려입니다.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시원한 물 한 통이면 저희들은 충분합니다.”

이승현 군의 누나 이아름 씨는 순례 일정을 알리는 페이스북(www.facebook.com/padre1909)을 통해서 순례의 목적은 아이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는 것과 진상규명이라면서, “걷고 있는 아버지들을 보신다면 창문을 내리고 잊지 않겠다고 말해 달라. 조금 더 사치스러운 후원을 바란다면, 시원한 생수 한 병이면 족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그동안 물심양면 도움을 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두 아버지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이들을 삼켜버린 거짓의 규명이라는 것과 잊지 않겠다는 목소리라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순례 가족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고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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