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시대적 한계와 종교간 협력을 통한 극복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는 지난 2월 5일 오후 3시 서대문 한백교회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어,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사태를 근원적으로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적대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가한 박준영 지국장(아시아가톨릭뉴스)의 견해는 특별히 가톨릭교회와 홀로코스트의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 그 요지를 정리해 보았다.  

-편집자.

유대인 대학살, 유럽 문명의 자부심에 상처 

홀로코스트, 그러니까 20세기 전반기에 독일의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을 겪은 뒤, 유럽인들은 이른바 이성과 합리주의를 구현했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자신의 문명, 유럽 문명의 정당성에 대해 회의하게 됐다. 20세기의 유대인 대학살이 여러 면에서 인류 초유의 인종 학살이었지만, 이미 구약 성경의 <에스델>서에서 크세르크세스 제국의 재상 하만이 제국의 행정력을 동원해 “전국의 유대인을 몰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인류 역사에서 특정 민족의 절멸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조직적 학살의 사례는 드물지 않았다. 이를테면 인디언 학살처럼. 

그럼에도 유대인 학살이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이 사건이 '문명화'된 유럽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오랜 세월 유럽 문명의 기둥 구실을 해온 그리스도교의 태도를 문제삼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 역사에서 그리스도교 국가에 의한 유대인 추방, 탄압의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십자군 원정 중에 유대인 마을에 대한 공격 사례도 적지 않았다. 1492년에 스페인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최종으로 축출한 지 겨우 몇 달 뒤에 유대인도 추방했다는 것은, 유대인 차별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한 사례다.

유대인은 하느님을 죽인 백성이라는 생각

"유대인은 악마"라고 설교한 성 크리소스토모 같은 이도 있지만, 이러한 과격한 주장이 교회의 공식 교의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유대인이 하느님을 죽였다는 생각을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왔고, 이 때문에 간헐적으로 폭력사태가 분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과거 그리스도교 교회가 쓰던 미사 전례문 가운데는 예수님이 죽은 성금요일 미사 때 '무지몽매한' 유대인의 회개를 비는 구절이 있었다.

이 구절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3~1965년)가 열린 뒤에 전례문에서는 없어졌으나, 지난 2007년 7월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과거의 트리엔트식 라틴어 미사를 '라틴 전례의 예외적 형태'로 인정하기로 한 뒤 다시 부각됐다. 베네딕토 16세가 이 조치를 취한 것은 라틴어 미사만 오직 유효한 미사라고 주장하며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비오 10세회'와 재일치를 추구하려는 뜻이었지, 이 구절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대인 단체들의 비판과 우려가 이어지자, 베네딕토 16세는 미국 방문 직전인 2008년 2월에 이 부분을 “유대인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주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밝혀 주시어 그들이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소서.”라고 다시 수정했다. 그리고 교황청에서 유대교 관계를 맡고 있는 교회일치평의회의 카스퍼 추기경은, "이 문장은 유대인의 개종을 촉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종말론적 차원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살에 대한 교회의 침묵 

한편 교황청이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묵과하거나 심지어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테면 크로아티아를 장악한 친 나치 우스타샤 정권은 현지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받았으며, 유대인뿐 아니라 집시와 세르비아인 학살로도 악명이 높았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대인 수용소에서 학살이 진행되는 사실을 교회가 알았으면서도 한 번도 공개적으로 이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이 점에서 교회가 나치에 소극적 협력을 했다는 비난을 받는다. 

가톨릭교회는 이에 대해 교황청이 바티칸은 물론 교황 별장인 카스텔 간돌포 등에 유대인의 피난을 허용해 최대 85만 명의 유대인을 구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한다. 또한 교황이 명백하게 히틀러를 비난할 경우 독일 자체를 비롯한 각지의 가톨릭 신자들이 위험에 빠질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정황도 설명한다. 실제로 1942년에 네덜란드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이 네덜란드 유대인의 강제 이송을 공개 비난한 “네덜란드 사건”에서 유트레히트의 가톨릭 주교만이 끝까지 비난을 포기하지 않자, 나치는 그동안 강제 이송 대상에서 제외했던 그리스도교 유대인을 이송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결국 교회를 침묵시켰다.

교회가 순교를 두려워해서야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순교 속에 커온 신앙 공동체다. 탄압이 두려워서 할 얘기를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정당성이 무너지지 않는가? 바로 이 점이 모든 제도화, 기득권화된 종교권력의 약점이다. 사실 당시 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지금처럼 '확고한 도덕의 성채'로 행동하기보다는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외교관'처럼 행동한 측면이 강하다. 실제 1914년에서 1978년에 걸친, 그러니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20세기 전쟁의 시대에, 5명의 교황이 모두 교황청 외교관 출신이었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나치 패망으로 대학살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뒤, 가톨릭교회는 친나치 혐의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대학살을 신학적 주제로 삼는 홀로코스트 신학은 주로 개신교에서 발전한다. 반면에 가톨릭교회는 스스로가 가해자로 규탄받으면서 스스로의 정화와 방어에 급급한 정도였다. “죄인”의 처지에서, 홀로코스트 신학이 지나친 이스라엘 미화로 나아가는 것이나 그 신학적, 이론적 한계를 지적할 입장은 아니었다. 

홀로코스트 신학, 유대인 문제에만 집착

홀로코스트 신학이 “유대인”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다른 모든 사물은 지평선 밑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승자'에게서 역사가 다시 쓰여질 때도 자주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 시대에 박해받은 종교로는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유대교도 박해받고 사자밥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서양사, 그러니까 그리스도교의 눈으로 쓴 역사는, 자신의 조상들이 받은 고통과 거룩한 순교만 기억할 뿐 유대교는 마치 이미 소멸된 것처럼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한편, 한국은 유럽과 달리 홀로코스트의 경험이 없지만, 자본주의적 성공을 추구하면서 이스라엘을 정신적 모델로 삼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으며, 특히 개신교에서는 개별 교회의 양적 성장 추구와 더불어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찬양과 지지로 연결됐다. 이것이 최근에는 이스라엘의 적대국들인 주변 이슬람국의 종교인 이슬람에 대한 적대적 태도로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역사적 순서로 봐서 위냐 아래냐의 차이만 있을 뿐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서로 신앙의 선조를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조손(祖孫) 종교'다. 그런데도 상당수 그리스도교인들이 아버지뻘인 유대교에 대해서는 스스로 적대감을 억제하고 오히려 친밀감을 대중적으로 설교하는 반면에, 자식뻘인 이슬람교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현실이다.

이것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홀로코스트 신학이 유대인 문제에만 집착하면서 대학살을 인류 보편의 종교적, 인간적 이해의 확장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또한 구미 자본 세력이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할 필요에서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면 대중의 종교적 미숙과 편견, 정보 부족을 악용하고 있다.

배타적 근본주의 극복하고 이슬람에 대한 정보 공유해야

가톨릭교회에서 유대인, 또는 유대교의 문제는 '타종교'의 하나로서, 종교 간 대화 차원에서 다뤄진다. 사실 배타적 근본주의는 어느 종교나 내부에 안고 있는 위험한 본능과 같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할 것 없이. 근본주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갖게 하지만, 공동체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면 그 집단의 정치적 오만이 극에 이르러 가장 큰 물리적 피해를 인류에게 입힌다.

이런 면에서 2000년에 걸쳐 성쇠를 몇 차례 거듭한 그리스도교는 내부의 배타적 근본주의를 극복한 경험이 가장 많은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내부의 긍정적 요소를 최대한 발굴, 성장시켜 스스로 내면의 비인도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아울러 타종교가 근본주의에 저항할 면역력을 키우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처럼 이슬람에 대한 접촉 자체가 적은 환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널리 제공, 교육하는 것이 시급하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문제 대응이다.

박준영/ 아시아가톨릭뉴스 한국지국장,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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