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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절망의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박태순 누님

한가위를 며칠 앞둔 9월 22일, 미루어두었던 취재를 위해 박태순 누님에게 전화를 했다.
"총무님, 웬일이에요?”
박태순 누님과 나는 인천교구 송림동본당에서 함께 사목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그게 벌써 오래 전 일이고 작년 2월에 이사해 같은 본당에 다니지도 않는데, 늘 총무님이라 부른다.

“어디세요? 오늘 송림동 갔다가 찾아뵈려고 하는데.”
“빈첸시오회에서 추석 맞아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조금씩 드리고 있어요.”

인천교구 송림동본당 관할 구역인 배다리에는 요즘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태순 누님은 그 처음의 물꼬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배다리는 옛날에 바닷물이 그곳까지 들어오고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있어서 붙어진 땅이름이다. 물론 지금은 매립과 개발 탓에 바다가 저만치 물러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솔빛마을 아파트 단지 조성 때 이미 공사가 끝난 제2 공사구간의 송현터널에서 내려다본 금창동 일대. 주민들의 반대운동으로 이제 제3구간에 이어 제1구간의 공사도 중지되어 있는 상태이다.


태순 누님이 운영해온 ‘박의상실’ 뒤편 안채로 가니, 유자차와 포도를 내놓는다. 먼저 전화 통화할 때 어딜 다녀오셨는지를 물었다.

“마흔둘밖에 안된 남자네 집. 아홉 살짜리 딸이랑 부인과 사는데, 술 먹고 넘어져 경추를 다쳐 전신마비야. 술도 좋아하던 사람이 아니었다는데 사고로 그리된 모양이야. 원래 집도 있고 사는 게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치료하느라 돈 다 날리고 지금은 3백만 원 보증금에 22만 원짜리 월세 방에 살아. 그래도 그 부인, 도망도 안 가고 남편이 불쌍하대. 착한 사람이지. 그리 되니 부모랑 형제들도 아는 체 안 한다나봐. 전세라도 얻어주었으면 좋겠는데, 사랑의 리퀘스트에 신청하면 도와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할 걸요.”
“내가 인터넷을 잘 못해서…….”

아마도 태순 누님은 자신이 직접 하지 못하면 누구에게 부탁해서라도 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다. 배다리 산업도로 반대 운동의 시작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산업도로가 나는 것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거나 체념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동네에 측량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띠었다. 그 사람에게 물으니 송도에서 청라까지 8차선 산업도로가 뚫리고 길옆으로는 울타리가 쳐진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송림로, 금곡로, 우각로, 길들이 둘로 나뉘니 동네도 둘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전혀 몰랐던 얘기는 아니지만 현실감 있게 다가오더라고. 지금도 기찻길 옆이라 시끄럽고 먼지가 많은데, 산업도로까지 생기면 사람 살 곳이 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태순 누님은 항암 치료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짧고 희다.
태순 누님은 1952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인천으로 이사왔다. 인천 토박이인 셈이다.
지금 살고 있는 창영동에서는 1976년 의상실을 개업하면서 살기 시작했고,
1978년 결혼한 다음에도 그곳에서 계속 살고 있다.

태순 누님은 같은 동네에 사는 ‘키 큰 경상도 아줌마’ 하유자 씨와 뭔가를 해보아야겠다는 뜻을 모았지만 막막했다. 우선 딸을 시켜 인터넷을 통해 인천시장에게 문의했다. 곧 검토 뒤 답변을 주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게 지난 2006년 7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일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오던 10월, 태순 누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유방암 진단. 12월에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가 이어졌다. 수술 뒤 치료를 끝내고 돌아와 확인하니 인천시장으로부터는 아무 답변이 없었다. 2차 문의를 했다. 그제야 답변이 왔다. 금곡동과 창영동에는 고가도로가 놓인다는 거였다. 1998년에 당시 시의원에게 들었던 것과 다른 얘기였다. 그때는 지상도로가 나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지상도로도 문제인데, 더구나 고가도로라니. 태순 누님은 북성동 고가도로 밑 동네와 사람들이 떠올랐다. 늘 그늘이 지고 소음과 먼지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상황.

"아프고 나니까 생각도 많이 달라졌어. 전에는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일에만 열심했는데, 아프고 나니까 더 환경을 생각하게 되더라고. 일부러 화단도 더 가꾸게 되고. 자연스럽게 산업도로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되었나봐."

그 뒤 헌책방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 씨를 찾아가 의논했고, 인천지역 시민사회, 문화운동 단체 사람들과 폭넓은 관계를 맺고 있던 곽현숙 씨가 나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동구 주민의 의견 요청”이라는 제목의 글을 써서 돌렸다.

   
처음 세 아줌마들이 만들어서 돌린 문건.
이 문건은 '스페이스 빔'이 펴낸 <탐사보고서 2007 인천 REPORT>에 실려 있다.


“…… 이곳 우각길과 금곡길은 굽이굽이 역사의 현장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인천세무서를 비롯하여 창영사회복지회간(100년 넘음), 동명초교(100년), 창영감리교회(70년), 영화초교·고교(100년 넘음), 창영초교(문화재, 100년), 인천양조장(80년)이 있고, 또한 배다리 길에 위치한 50여년 역사를 이어온 헌책방 거리는 인천 시민의 학구열에 대응한 지역으로서 학문을 추구하는 이들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배다리 지하길은 공예를 연구하는 이들이 수년을 애쓰며 터전을 가꾸어가고 있으며, 중앙로는 한복점과 이불점의 거리로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오랜 전통의 시장이며 동인천과 금곡로, 우각로, 송림로로 이어집니다.

개설되는 이 도로로 인해 어린이, 노약자, 모든 이의 위험성이 도래되는 어려운 상황이 발발할 수 있다는 점을 숙지하시어 만일에 대처하는 강구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각로, 금곡로가 갈라지는 것은 문화의 기상이 서려 있는 용의 허리를 끊어 놓는 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

태순 누님이 다른 동네로 이사 간 나에게 이 문서를 전하며 도움을 요청한 때도 이때였다. 나는 세 아줌마의 힘으로 산업도로 건설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서를 지역 시민사회단체에 전달해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달라고 하고는 곧 잊고 말았다. 하지만 세 아줌마의 노력은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중구·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 대책위원회’를 만들어냈다. 또한 배다리는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배다리를 문화의 거리로 지켜야 한다는 뜻에 함께 하는 문화 예술인과 단체들이 배다리로 모여들고 있다.

인천작가회의도 사무실을 배다리로 옮기는가 하면, 문예지 <작가들> 2007년 가을호에는 특집으로 “작가들, 도시공간 속을 거닐다 - 시와 산문으로 보는 배다리”를 실었다. 문화예술공간 '스페이스 빔'은 지난 9월 8일, 인천양조장 자리로 사무실을 옮겨 9월 30일까지 특별 기획전을 열고 있다. '헌책방 마니아'로 <모든 책은 헌책이다>의 저자인 최종규 씨도 이곳으로 이사와 사진책 도서관 '함께 살기'를 열었다. 세 아줌마 가운데 한 명인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도 ‘작은 책 시가 있는 배다리 길’이란 전시관을 열어 인천과 관련된 시집과 문학 서적들을 전시하고 있고, 진즉 이 지역에 들어와 있던 문화운동 단체인 ‘퍼포먼스 반지하’는 지난 5월에 ‘기억과 새로운 풍경’이란 이름으로 공방을 열었다,

   
배다리 지키기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아예 인천양조장 자리로 자리를 옮긴 스페이스 빔. 이밖에도 많은 인천작가회의 등 인천지역의 문화 예술 단체들이 배다리 지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몇 주 전, 태순 누님과 함께 가수 김정식 형님을 만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태순 누님은 정식 형님에게 배다리 싸움에서 부를 노래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정식 형님은 이미 만든 곡 가운데 도종환 시에 곡을 붙인 ‘담쟁이’가 좋을 것 같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노랫말도 적어주고 노래도 불러주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공사가 이미 끝난 2구간 입구에 주민대책위 사무실인 콘테이너 박스가 놓여 있다.
그 옆 벽에는 대책위가 내건 현수막들이 있고, 담쟁이가 벽을 덮고 있다.

암은 끊임없이 자기를 증식한다. 그러면서 중심부터 썩어 들어간다. 인간이 벌이고 있는 개발도 똑같다. 끊임없이 자연과 사람의 삶을 파괴하면서 결국 자멸의 길로 멈춤 없이 달려간다. 암을 이겨낸 태순 누님은 이제 또 다른 암인 개발과 맞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배다리를 지키려는 착한 사람들과 함께 개발이라는 우리 사회의 암도 이겨낼 거다. 담쟁이가 절망의 벽을 오르고 올라 결국 그 벽 전체를 덮어버리는 것처럼.

/박영대 2007.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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