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군과 김웅기 군 가족, “세월호를 잊지 마세요”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 거쳐 8월 15일 교황 집전 미사까지

▲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정현진 기자

“다녀오겠습니다.”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2학년 8반 고(故)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와 누나 이아름 씨, 그리고 2학년 4반 고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가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배웅을 받으며 도보 순례 길에 나섰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84일 만인 8일 오후 4시 안산 단원고 교실에서 아들의 자리를 찾아 인사를 마친 이들은 학교 앞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그리고 8월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까지 여정을 시작했다. 이들이 걷는 거리는 40여 일간 800킬로미터, 약 1천 900리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고, 아이들을 만날 때, 아버지들이 이런 노력이라도 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간절히 바라는 것은 11명의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오는 것, 그리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 씨는 이번 순례를 위해 특별히 만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걷는다. “우리 자신들에게도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 어른으로서 아빠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이라는 이호진 씨는 “신앙인으로서 예수의 골고타 길을 체험하며, 신앙을 돌아보기 위한 것도 이 순례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호진 씨는 800킬로미터의 길을 차근차근 한발 한발 걸어가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하고 신앙도 돌이켜볼 것이라면서, 원 없이 걷고 원 없이 울고 싶다고도 했다. 이승현 군의 누나인 이아름 씨는 이번 순례의 기록을 맡았다. 그는 “시민들이 하루라도 더 희생자들을 기억하도록 하고 싶다”면서, 힘들면 동생을 떠올리며 견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의 마지막 고통을 나도 알지 못합니다. 가슴에 묻는다는 것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이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걷겠습니다.”

▲ 단원고로 돌아온 학생들과 희생자들의 후배, 선배들은 부모님들이 지고 갈 깃대와 십자가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 ⓒ정현진 기자

이호진 씨의 순례 제안에 동참한 김학일(루도비코) 씨는 김웅기 군의 아버지다. 그는 “우리 아이와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학일 씨는 “이 길에 성령이 임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빵점 신앙인, 빵점 아빠였던 내가 순례를 통해 회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들의 순례 길을 위해 기도하러 찾아온 현우석 신부(의정부교구)는 출발에 앞서 집전한 말씀 전례에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잃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11명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이 길에 올랐다”며 ”이 세 분은 희생자들의 아픔과 살아남은 이의 고통을 지고 가실 것이며, 그 안에서 땀과 피의 여정을 하길 것이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호진 씨는 무사히 순례를 마치라는 단원고 학생들의 인사를 들으며, “20년, 30년 후에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정부가 되고 권력이 되었을 때,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걷겠다”고 답했다.

이어 국민들을 향해 호소했다. 이호진 씨는 “여전히 11명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유족의 뜻이 하늘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 순례 길에 몸을 바친다”면서 “무릎을 꿇고 빌겠다. 세월호를 잊지 말고 실종자들과 그 가족들을 살펴 달라. 국민인 여러분이 잊는다면,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너무 처절하지 않은가. 11명의 실종자를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세 사람은 아들과 남동생의 사진을 가슴에 걸고 진도 팽목항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뙤약볕도 태풍도 두렵지 않다고 했다. 길을 걷다가 쉴 때가 오면 인근 성당에 도움을 청할 예정이다. 김학일 씨는 성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회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 순례가 개인의 변화, 세상의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이들의 첫 발걸음은 아이들의 교실에서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김웅기 군의 책상 앞에서 아버지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정현진 기자

▲ 현우석 신부는 이들의 여정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안수로 축복했다. ⓒ정현진 기자

▲ 이들은 떠나기에 앞서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여전히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과 그 가족을 살펴주십시오.” ⓒ정현진 기자

▲ 이들의 순례 여정을 응원하기 위해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이 달려왔다. 이들은 순례를 떠나는 이들에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과 축복의 성가를 들려줬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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