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김현규 감독, 2013년작

25분짜리 짧은 단편 영화를 보고 오래 생각에 잠겼다(실은 여전히 생각 중이다). 생소한 감수성을 가진 영화였다. 굉장히 우스운데 표정 관리 안 되는 기분이었다. 친구란 무엇이고 아내란 무엇인가? 대체, 정말, 어떻게 하는 게 제일 잘하는 처신인가? 어떤 게 진짜 우정이고 선의일까? 친구를 위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 영화는 간단한데 영화 뒤의 감상은 대단히 복잡하다.

<자네 아내와 여행을 가고 싶네>(2013)는 제12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 수상작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이다(이 영화는 포털에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이 재기발랄하다 못해 발칙한 영화를 찍은 김현규 감독의 연출 노트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가.”

 
정말 못 받아들일 일인가

성우(배성우 분)와 동식(김희창 분)은 오랜 친구다. 별안간 성우가 누워있다는 병원에서 보호자를 찾는 전화가 동식에게 걸려온다. 정신없이 찾아가보니 담당 의사는 성우가 간암 말기라고 한다. 수술도 치료도 거의 불가능하다며 남은 시간이 한 달 남짓이란다. 동식은 성우를 붙들고 “아이고, 불쌍한 놈” 하며 울다가 제 집으로 데려간다. 중산층 아파트 거실에는 동식의 아내가 차려놓은 저녁상이 놓여 있다. 셋이 밥상을 마주한 일도 다반사였던 듯 친숙한 분위기다.

동식은 밥이고 뭐고 꺼이꺼이 울며 성우를 걱정하고, 성우는 친구 아내가 만든 요리를 마치 오래 굶다 집에 온 아이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동식은 소주만 들이켜는데 동식의 아내가 집어주는 잡채를 먹으며 성우는 좋아 죽겠다는 식의 행복한 표정이다. 마침내 동식이 묻는다. “너 소원이 뭐냐?” 진지한 표정으로 봐서는 친구를 위해 간이든 뭐든 내줄 듯하다. 성우는 망설이다 내지른다. “수진 씨랑 여행 가고 싶어.” 그동안 배경처럼, 거실의 가구 일부처럼 앉아 있던 동식의 아내가 갑자기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웃는다. “수진이? 나도 수진인데.”

그렇다! 성우가 말한 수진 씨는 바로 동식의 아내 수진(김현주 분)이었다. 성우는 이제 해묵은 비밀을 새삼 일깨운다. 대학 신입생 시절 수진을 먼저 본 것도, 먼저 좋아한 것도, 먼저 고백하려던 것도 자신이었다고. 그런데 동식에게 선수를 뺏겼고, 둘이 사귄다는 소리에 군대에 가버렸던 과거를 말이다. 성우는 혼나는 아이처럼 무릎을 꿇고 사정하고, 동식은 길길이 날뛰고, 그처럼 위한다던 (아픈) 친구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난리를 친다.

다음날 아침, 진짜 반전은 수진의 태도다. 여행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처럼 큰 결정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버리고는 남편 앞에서 보란 듯이 가방을 싼다. 그 전에 남편의 해장국도 시원하게 끓여둔 똑소리 나는 살림꾼이, “나 갔다 올게”라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서자 동식은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그때 성우가 좋아하는 거 알았냐고 묻자 “그럼 그걸 모르겠어?” 하질 않나, 왜 알고도 가만있었냐 물으니 “고백도 안 했는데 뭘 아는 체 해?”라고 반문하는 솜씨나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녀는 성우와 기차를 탄다.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지막을 앞둔 사람에 대한 예의인지, 자기를 첫사랑이라고 하는 남자에 대한 일종의 보답인지 모를 여행을 수진은 별 고민도 없이 결정해 버린다. 그리고 관객은 느낀다. 그녀는 남편 동식을 사랑한다. 아마 오래 전 대학 시절 성우가 먼저 고백했더라도, 그녀의 선택은 동식이었을지 모른다. 수진이 동식과 연애한 건 그저 ‘간발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기차 안에서는 앞에 있는 성우에게 최대한 집중한다.

태연하게 여행을 떠난 수진과 성우는 회상에 잠긴다. 성우는 시를 사랑하던 스무 살의 수진을 떠올리며 그녀를 어느 순간 ‘여인’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 지점부터 수진은 ‘아줌마’ 티를 걷어내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아름다워지기 시작한다.

애가 타는 건 동식이다. 회사도 팽개치고 두 사람의 여행을 미행한다. 그 와중에 수진은 꼬박꼬박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행적을 알려준다. 참 웃기는 여행이다. 게다가 누가 뭐래도 이 부부는 참 ‘건강한’ 사이다. 어쨌든 동식은 남대천까지 따라가 유채 밭에 두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지나쳐 혼자 바다를 보며 술을 마신다. 노을 진 해변 모래사장에는 아내 수진의 무릎을 베고 누운 친구가 보인다. 셋이 나란히 지는 해를 바라본다. 성우는 동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선택, 결정하고 감당하면 되는 것 아닐까

자네 아내와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고작’ 여행 한 번만 가겠다는데, 이걸 받아들인다는 게 정말이지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감히 이런 부탁을 하는 미친놈이 친구라니, 열이 받아서 팔짝팔짝 뛸 지경이다.

그렇다. 이거 정말 골 때리는 위기 상황이다. 친구가 못미덥거나(실은 못미덥다) 아내가 의심스럽다거나(실은 의심쩍다) 스스로가 의처증 환자처럼 여겨져서가 아니다(실은 그렇다). 왠지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동식의 마음은 관객도 다 안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말이 안 된다.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라. 이 제안을 흔쾌히 들어줄 사람(그런 미친놈)이 어디 있는지!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머릿속에 일종의 ‘각’이 생기는 걸 느꼈다. 감독이 의도한 건 뭔지, 세상의 통념대로라면 어떻게 전개될지, 심지어 ‘19금’을 바라는 야한 상상까지 하고 있는 내 다양한 생각의 변주가 수없이 겹쳐졌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영화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고작 25분 동안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진지한 성찰을 하고 말았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등장하고 두 남자 모두 그 여자를 좋아한다는, 일종의 삼각관계 설정으로부터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도출됐을까. 이 뻔뻔한 제안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세련된 관계 설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뭔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설정은 뻔하더라도 과정은 얼마든지 달리 갈 수 있다. 이야기와 이야기, 관계와 관계 사이의 틈과 ‘허’는 의외로 무궁무진할 수 있다. 어쩌면 성우의 모든 스토리는 ‘날조’일 수도 있다. ‘자네 아내’와 여행 한 번 가보려고 쌩쇼를 한 건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가 거대한 농담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뭐 어쩔 것인가. 우정도 여전하고, 사랑도 여전한 것을. 셋이 앉아 있는 풍경은 더없이 평화롭고 그런 공존을 만들어낸 감독의 다음 작품들이 마냥 궁금하고 기대되는 것을.
 

 
 

김원 (로사)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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