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이야기]

사진/한상봉


모처럼 가족과 지인들이 뭉쳐 가까운 대모산을 찾아 겨울나무들을 실컷 보았다. 어느 덧 꽃눈과 잎눈이 조금 볼록해진 느낌이 들었다. 부지런히 봄맞이 준비에 바쁜 나무들 속에서 설 연휴동안 지방에 내려가 시부모님들을 뵙고 동서들과 설날을 보내며 부딪친 에피소드들을 쏟아놓아 산행은 마치 이야기잔치 같았다.

여동생의 시댁에선 이번에 시아버지의 형님댁과 산송(山訟)문제가 일어나 명절이 온통 이전 세대들인 시부모님과 큰댁의 어른들 사이에 일어난 애증으로 집안이 들끓었다고 한다.

이미 돌아가신 시아버지는 위로 형님 한 분뿐인 단촐한 가족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 시조부모님들은 두 아들을 모두 교육시킬 수가 없자, 형님을 교육시키고 아래 동생은 농사를 거들거나 외지(外地)에 나가 공사판을 돌며 돈을 벌어 집안을 건사하는 일을 맡겼다고 한다. 그래서 형님은 교육을 받고 근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종가집의 살림을 맡으셨다.

학교마당에는 전혀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동생은 농사일을 마치면 타지의 공사판을 다니며 돈을 모아 형님을 교육시켰고, 알뜰히 모아 자기 소유의 전답을 마련하여 혼인을 하곤 8남매를 낳아 그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느라 또 다시 농토에 몸을 묻으며 거기서 나온 알곡으로 가정을 지켜냈다고 한다.

먼저 죽어야 선산에 묻힌다?

그러던 어느 해, 두 어른은 그들이 일가를 이루고 잘 살게 된 건 조상들이 돌보신 덕이라 여기고, 자그만 선산을 하나 마련해 떨어져있던 선대(先代)의 산소를 이장하였다고 한다. 지금 여동생의 시아버지와 큰시아버지 두 분은 반반으로 부담하여 마련하신 선산에 묻히시어 쉬고 계시다. 그런데 작은 선산이다 보니 자식 대에 이르러 산송 문제가 터진 것이다. 4대조 선대의 조상들을 모두 이장하여 모시고 부모님들을 선산에 모시다 보니 작은 선산은 자리 부족을 염려하기에 이르렀고 게다가 두 집안의 자녀들은 모두 8남매 9남매를 두다 보니 종가댁에서 먼저 부득이 선산에는 종가집 식구들만 모셔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댁의 자녀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조선땅에서 만주까지 몸 하나를 믿고 의지하며 일군 농토와 선산임을 들었던 터라,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큰시아버지는 동생이 공사판을 전전하며 벌어들인 돈으로 교육의 혜택을 받아 시골에서 존경받으며 살다 돌아가셨지만, 작은댁의 아버지는 일자무식한 상태에서 집을 마련하여 가정을 일구고 처자식을 먹이고 교육시켰으며 형님의 요구에 선선히 선산 마련 비용의 반을 감당하였다는 것이다. 선산은 어쩌면 그들 아버지의 몫이 되어야만 공평한 처사가 아니냐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종가로서 큰댁이 선산을 지키고 조상들을 모셔야 낯이 서는 거라며 집안사람들 사이에 험악한 말들이 오가게 되었다. 설 연휴 내내 서로의 감정에 깊은 골을 파온 두 집안은 이제 올 추석에는 같이 성묘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한편, 두 집안 남매들이 언성을 높이는 동안 여동생을 비롯한 이 집안의 며느리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며 나름대로 묘안을 찾아냈는데 그 답은 "양쪽 집안 누구든 선착순으로 선산에 묻힌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며느리들 결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선산에 한 평 자신의 묘자리를 차지하려면 경쟁하듯 먼저 죽어야만 하는 모순을 품고 있는 점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우리는 정월대보름을 앞두고 대모산 언저리에 아직도 남아있는 산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텃밭에서 가꾸어 말려놓은 나물을 샀다. 무시래기, 토란대 말린 것 등등. 할머니들이 동동주를 잔으로 팔고 있어, 우리는 한 잔씩 마시고 배추잎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며 또 하나의 산송이야기를 들었다.

묘자리를 뇌물로 주겠다니

구청에 다니는 지인 B씨는 어느 해 대홍수로 공원묘지가 산사태로 뒤집히는 혼란이 일었을 때, 묘적부(墓籍簿)를 관리하는 직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관이 아예 물에 휩쓸려간 경우도 있고 모든 게 뒤엉켜 복잡한 상황이라 묘지관리소는 대공사를 해야했는데, 이런 지경에서 우리의 지인 B씨는 묘지관리소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부동산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하면 해당관청의 공무원이 눈을 감아줘야 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묘지라고 예외는 아니었던가 보다. 묘지관리소 사람들의 제안은 이러했다. 홍수와 산사태로 발생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인 B씨가 그들에게 협조해주면, 좋은 곳으로 묘자리를 하나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싯가로 치면 5,6백만원 하는 묘자리였으니 그들은 나름대로 성의있는(?) 뇌물을 마련했다고 보여지는데 그 뇌물이 다름 아닌 묘자리였으니 아무리 뇌물에 눈이 먼 공무원이라도 선뜻 눈을 감아주기 어려운 일이었다며 웃었다.

달과 별이 아직까지는 어느 강대국의 소유가 아니니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 프롤로그에서 평사리의 당골네는 최참판댁 굿을 하는데 최참판네에게 토지를 뺏기고 죽어간 이들의 혼백이 무당의 입을 빌려 최참판댁에 맺힌 원한을 풀어놓는다. 보리고개를 넘느라 얻어다 먹은 장리쌀에 이자가 붙고 그 이자에 또 이자가 붙어 결국 최참판네 마름들은 그들의 토지를 빼앗아 갔다. 혼백들은 동서남북 끝을 모르고 넓어져가는 최참판네 토지에서 나오는 소출을 먹을 입이 끊길 것이라며 최참판댁을 저주한다.

국방력과 경제력, 문화의 힘에서 우수한 제국들이 무너지는 과정에는 어김없이 먼저 내부의 힘에 의해서 멸망의 징후가 드러났다. 내부에서 일던 파괴의 에너지는 대토지소유로 인한 제국 구성원의 결속력 약화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너와 나, 우리 집과 이웃 간에 쌓여가는 정(情)이 메마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이웃이 죽어가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죄의식 소멸의 싸이코 패스적 기질이 성행하였고 그러한 기질로 인해 대토지소유라는 괴물이 탄생했던 것이다.

묘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되새기며 겨울나무 사이로 둥실 떠오른 대보름 달구경을 했다. 이태백이 놀던 달,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표현하던 월(月)선녀, 달하 노피곰 도다샤 멀리곰 비취오시랴 며 노래하던 촌부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달은 먼 옛날부터 만인의 연인으로 모든 이들의 사랑과 기원을 받고 있다. 이 매력적인 달과 별이 아직까지는 어느 강대국의 소유가 아니니 마음을 붙이며 꿈을 꾼다. 비록 지상에는 나의 집을 지니지 못했지만 충만한 정월 대보름달에 내 영혼의 집을 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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