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에 대한 옹호와 공유 사상은 교회의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6월 29일 이탈리아 일간지 <일 메사제로>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에게 가치를 두고 있으며, 복음의 중심은 가난한 사람”이라면서 “공산주의자들이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표절했다”고 발언했다. 구체적 예로 교황은 산상설교에 나오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이라는 구절을 들었다.

교황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해 11월 26일 발표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발표 이후 일부 언론에서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공산주의가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영감을 얻었을 뿐이라고 반박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줄곧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강력히 비판해 왔으며,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신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금융자본주의를 “새로운 우상”이라고 지목했다. 특히 국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경제 권력은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러한 판단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바로 ‘복음적 요청’ 때문임을 강조한 것이다. 교황의 발언이 공산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비판과 닮은 점이 있다면, 공산주의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려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배운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교황 발언의 취지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옹호할 때마다 독재정권과 부자들은 교회에 ‘공산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 혐의를 덧씌우곤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던 교황 요한 23세는 어떠한가? 교황이 되기 전 이탈리아 베르가모 교구에서 테데스키 주교의 비서로 사제 생활을 시작한 안젤로 론칼리 신부(요한 23세)는 라니카 제련소 노동자들이 파업했을 때, 교구장과 함께 노동자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고, 교구 신문을 통해 파업 기금을 모아주었다.

그러자 우익 성향의 신문 <페르세베란차>는 “주교의 자선금은 파업에 대한 축성이며 공공연한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강복”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론칼리 신부는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노동헌장>에서 노조 활동을 옹호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정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교회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답했다. 즉,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은 ‘권리를 박탈당한 힘없고 박해받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항의했다.

▲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
브라질 교회의 옹호자이며 해방신학자였던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1909~1999)는 어떠한가. 카마라 대주교는 브라질 동북부의 빈민 지역인 레시페-올린다 대교구에서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보내고, 교구에서 운영하는 레시페 신학교를 해방신학의 요람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에게 따라붙은 호칭은 ‘가난한 이들의 형제’였지만, 다른 많은 이들은 ‘공산주의자’로 지목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올랐지만, 군부독재에 의해 카마라 대주교의 강론은 금지되었고, 레시페 지역에서 군인들은 총질을 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가난한가 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가 죽고 나서, 3년 만인 2002년 평소 카마라 대주교를 존경했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가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해 브라질 사상 최초로 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 전체가 예언적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목소리 없는 이들에게 주님의 목소리를 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시면서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라고 당신의 사명을 선언하신 주님처럼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교회의 사명이었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극성을 부리던 라틴 아메리카 군부독재 세력은 심지어 “애국자가 되려면 사제를 죽여라”는 구호마저 만들었다.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그들에게는 ‘공산주의’ 강령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페니 러녹스가 집필한 <민중의 외침>에는 로메로 대주교의 회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예수회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발언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주 가까운 시일 안에 성경과 복음이 우리나라 영토 안에서는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깊이 우려한다. 다른 아무것도 없이 오직 속박만이 다가올 것이다. 성경의 모든 페이지들이 체제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죄악을 반대한다. 예수께서 국경을 가로지르신다 해도 …… 저들은 그분을 체포할 것이다. 저들은 그분을 여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헌법을 어기고 전복활동을 했다고 하여, 또는 혁명가, 외국 출신의 유태인,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이상야릇한 사상의 조작자, 다시 말해서 소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기소할 것이다. 저들은 그분을 다시 십자가형에 처할 것이다.”

▲ Communism in the Bible, Jose Miranda, Marykno11, Orbis Books, 1982
“모든 재화는 만인을 위한 공동의 소유”라는 가톨릭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은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을 비롯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과 많은 사회교리 문헌에서 쉼 없이 전하는 말이다. 한편 해방신학자 가운데 호세 미란다는 아예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란다는 “어떤 그리스도인이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할 수 있지만 공산주의에 반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산주의 역사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유물론 철학이 개입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면서, “초대 그리스도교와 그 후 18세기 동안 공산주의 이념은 어떤 종류의 유물론 없이도 존속했다”고 말했다.

미란다는 사도행전에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사도 2,44)은 “우리의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무한한 존엄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실현될 수 없다”면서, 하느님 없이 실패한 공산주의의 증거로 ‘국가자본주의’였던 소련을 예로 들었다. 미란다는 “성령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르치듯이 개인의 이익과 이득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면서 공산주의를 무신론이나 유물론과 직결시키는 것을 반대했다. 미란다는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성령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을 더 중시한다는 점을 고의적으로 무시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수에 의해 유일한 것으로 확립되고 우리에게 남겨진 기준은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시게 해 주었다.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에도 내게 입혀주었다. 병들었을 때에 나를 찾아왔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내게로 와 주었다.’(마태 25,35-36)는 것이다. 이것이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두는 태도라면, 자칭 공식적인 영성주의자들은 에둘러 말하기를 멈추고 비난의 화살을 예수 자신에게 돌려야 마땅하다.”

미란다는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공동체가 ‘공동소유’를 주장했으며, 복음서는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3)고 말한 사실을 인용하며, 초대교회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했더라도 그 규범적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자들과 부유한 교회를 곤란하게 만들어 온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는 복음서의 구절처럼, 탐욕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구원은 없다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이다. 결국 ‘가난한 이를 편드는 선택’이나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나 공산주의 사상 이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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