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 28장]

야훼, 나의 반석이여 이 몸이 당신께 부르짖사오니, 귀를 막지 마소서. 당신께서 외면하시면, 이 몸은 깊은 구렁에 떨어지는 사람과 다름없사옵니다.
당신의 지성소로 두 손을 들어 올릴 때, 살려 달라 애원할 때, 내 소리를 들어주소서.
악인들과 더불어, 죄인들과 더불어 이 몸을 끌어내지 마소서. 입으로는 이웃에게 상냥하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엉큼한 생각을 품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행실 따라, 그들이 저지른 죄악 따라, 그들의 소행 따라 마땅히 갚으소서.
야훼께서 하신 일, 손수 하신 일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짓부수어 주소서!

나를 어여삐 보시고 내 기도 들어주신 야훼여, 찬미받으소서.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방패, 나는 진심으로 그분을 믿고, 믿어 도움 받은 것, 내 마음 기뻐 뛰놀며 감사하리라.
야훼, 당신 백성의 힘이시며, 손수 세우신 왕을 건지시고 지키시는 분이여,
당신의 백성을 건지시고 당신의 유산에 복을 내리소서. 언제까지나 메고 다니며 보살피소서. (시편 28장)

영국의 대처 총리는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자본주의의 본질을 언급했다고 한다. 과연 대안은 없는 것인가. 다른 세상, 다른 공기는 없는 건가. 우리들은 어두운 군사독재 시절 노래하였다. 압제와 멍에를 벗어던지려 외쳐 불렀다.

“내 백성 애굽땅에서 해방시키라. 저 심한 압제 밑에서 해방시키라. 가라, 모세! 너 가서 파라오 왕에게 이 말 전하라. 해방시키라. 네 원수 대적 못하리라, 해방시키라. 저 가나안 복지 얻으리라. 해방시키라. 거친 광야 걱정 말아라. 해방시키라. 가슴 깊이 확신가지라. 해방시키라. 저 모세 크게 외쳤네. 해방시키라. 거역하면 징벌 받으리라. 해방시키라. 이 멍에 모두 벗도록 해방시키라. 주 예수 안에서 자유토록 해방시키라. 가라 모세! 너 가서 파라오 왕에게 이 말 전하라. 해방시키라.” (흑인 영가 ‘가라 모세’)

ⓒ임의진
이제는 천민 자본주의라는 적그리스도, 악의 수렁에서 다시 이 노래를 불러 외치고 싶다. 밤거리의 욕정과 바닷가의 슬픈 무덤에 무릎 꿇고, 비굴하게 살 수만은 없는 노릇. 그들은 “대안은 없다. 가만히 있으라!” 하지만, 우리는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대안을 찾아 일어나고, 대안을 찾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

붉은 양파 자루그물에 갇힌 것처럼 당신의 얼굴은 피곤하고 지친 홍안이지만, 마당귀 돌멩이들이 들고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앞서 외치고 일어서야 하리라. 오직 정의, 오직 사랑, 오직 나눔, 오직 믿음을 품고 외치는 우리들의 부르짖는 소리, 우리들의 소망을 주님 외면하지 않으시리라.

‘부르다’, ‘부르짖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카라’다. 카라는 초대하다, 기원하다, 부르짖다 등 여러 모로 쓰인다. 성경에 전체 90번 사용된 이 동사가 시편에 무려 47번. 시편은 한마디로 부르짖는 노래, 목이 쉴 때까지 우러러 외치는 노래다.

시편의 시인이 부르짖고 외치듯 예수님도 갈릴래아에서 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회개하라.” (마르 1,15)

이것은 곧 민중의 소리이고 민중의 선전포고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하느님이 직접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영토 개념의 땅이나 민족 개념의 국가가 아니라 주권이 하느님에게 있음을 가리킴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곧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식민 체제, 성전 지배 체제에 불응하겠다는 명확한 선언이다.

여기서 먼저, 하느님의 나라란 민중의 나라라는 뜻이고, 하느님의 소유란 곧 민중의 소유라는 이스라엘의 전통사상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착취와 억압의 체제에 대한 예수의 저항과 부르짖음은 마침내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한 조치에 직면하게 된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에 저항하는 사람에게만 가해지는 법 집행이었다. 정치범이 아니라면 예수를 높이 매달아 만방에 사례를 삼으며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지배 체제인 로마 군사문화, 세계자본주의, 매판 성전주의에 저항한 예수는 밥상 공동체를 통해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을 극복하려 시도했고, 선한 이들의 행진을 통해 철갑을 두른 군대 행진과 제국 군대의 열병식을 희화화하였다. 또한 명령이 전부인 권력에 반하며 사랑의 설교와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나의 힘, 나의 방패인 주님께 의지하는 자. 다소곳 모여 축복의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과 주님은 함께하신다. 누군가의 간절한 꿈을 뚫고 들어가 해방의 새날을 선물해 주시는 주님.

입만 살아있고 거짓된 행실을 하는 불의한 자들은 강력한 하느님의 현존 앞에 고개를 숙이고 냉큼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시편 8편에 “야훼 우리 주여, 당신의 이름이 온 땅에 얼마나 강력한지요! 야흐웨 아도네누 맛디르 쉬므카 브콜하레츠!” 노래하였듯 강력한 주님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부르짖으며 대망하여야 마땅하다.

무지개 앞을 서성거리는 자여! 물을 기다리는 욕조처럼 당신은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가. 주님의 강력한 붙드심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고자 분투하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어디에 무엇하고 있는가.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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